정치 무림 열전(12)

정치 풍자 '콩트'

2021-08-27     조상식 객원기자

팔방풍우(八方風雨)

만천화우(滿天花雨). "세상에 베지 못할 것은 없다." 

장안의 무공비급 '성문기본검법'의 필살기는 팔방풍우(八方風雨)다. 여덟 곳의 방위를 비바람 몰아치듯 공격하는 검법 초식이다. '성문기본검법'과 쌍벽을 이루는 '기본암기(暗器)의 정석' 필살기는 만천화우(滿天花雨)다.

"세상에 뚫지 못할 곳은 없다."

하늘에 꽃비가 가득하다는 말처럼 무수한 암기를 날려 전방위 공격을 가하는 암기술이다. 둘 다 뽀다구는 그럴싸하나 삼류무사도 시전할 수 있는 하류무공이니 따릉이도 연성했으리라.

성취가 있었으니 바다 건너 천조국 하파도(下巴島)로 무공 수련을 다녀왔지 않겠나. 그래서일까. 강호행 10년을 한결같이 '팔방풍우', '만천화우'의 어지럽고 현란한 초식을 펼치나 허장성세에 불과하니 무림 고수들이 고개를 갸웃할 밖에.

파블로프가 길들인 개는 때가 되면 침을 흘린다. 어려서부터 혼줄 한 번 안나고 '오냐, 잘한다' 귀욤충만했던 아이는 자라서 남의 충고나 비판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참을 수 없는 분노충만으로 스스로를 망치기 쉽다. 침 흘리는 법만 배웠지 침 닦는 법을 배우지 못한 까닭이다.

미관말직(微官末職)

변변찮은 말단 관직 한 자리가 정파무림을 집어 삼키고 있다. 인사만사(人事萬事)는 무림강호의 케케묵은 이바구다. 촌철살인의 대가 제이피는 무림을 허업(虛業)이라 했다. 허니 인사허사(人事虛事)야말로 무림강호에는 깔맞춤하지 않겠나. 와이에스는 사투리를 장점으로 승화시킨 보기드문 고수다. 

"애무부(외무부) 장간(장관)은 애무나 잘 하시오."

듣기에 따라 거북살스러울 수 있겠으나 와이에스이니 걍 풉~이다. 정파무림 미관말직의 분란은 와이에스식 간강(관광)과 맛탱이의 상관(相關)이니 다르고 맞거나, 틀리고 같을 수 있다. 여기에 찰진 욕도 통 크게 이해하는 맛탱이스트의 오지랖도 얹혀 있다.

허나 간강과 맛탱이의 비무가 삿된 길로 빠지니 걷잡기 곤란한 지경이라. 전무(全無)냐, 전부(全部)냐의 막싸움은 잃을 게 적은 쪽이 승률이 높다. 헌데 묻고 따블로 가다니.

미관말직에 전부를 건 맛탱이스트의 저돌성에 강호가 깜놀이다. 맛탱이스트는 이무상의 회심의 한 수였으나 이제 말릴 수도 구경만 할 수도 없는 튀김 닭 놀이로 접어드니 환장할 노릇이리라.

초인(草人) 허본좌 

군웅이여 일어나 나를 따르라! 허본좌의 시대가 다가왔노라! 

허본좌의 출격은 개콘 부활의 서막과 다름없다. 역병에 지친 강호인들에게 단비같은 소식이라. 예고편 짤방은 안초딩을 향한 공개 프러포즈였으니. 역시나 웃으면 복이 온다는 강호인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당사자인 안초딩은 냉무였으나 강호인들은 '어쩌다 저 지경까지'를 읊조리며 혀를 찼다.

허본좌의 독문절기인 축지법과 공중부양을 보고자팠던 강호인들의 눈과 귀가 행주산성으로 쏠렸다. 드뎌 쨘하고 모습을 드러내니 얼척없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 퍼포먼스라. 기대했던 축지법과 공중부양을 백마로 마름질하는 허본좌의 잔머리에 강호인들이 배꼽을 잡았다.

무림지존에 등극하면 지전푼을 억수로 나눠주겠다는 달달한 이바구야 개콘 본능으로 듣고 웃기에 좋았더라. 허나 초인(超人) 시늉만큼은 이해불가라. 해독이 분분하자 상징암호 전문가인 거시기가 나서 풀이하니 강호인들이 무릎을 치며 파안대소했다.

'초인(超人)'으로 읽고 '초인(草人)'으로 쓰니 영락없더라. 초인(草人)이란 짚으로 사람 모양을 만들어 옷을 입히고 지전푼과 이름, 생년 등을 적어넣어 길가에 버림으로서 액막이 하는 데 썼으니. 허본좌의 숨은 뜻이 웃으며 역병을 이겨내자는 액막이에 있었다. 개콘이 사라진 강호에 허본좌의 등장으로 웃음기를 되찾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강호무사 분별법

일찌기 성골과 진골, 6두품의 구분이 있었다. 당금 무림에는 찐-진-친의 등급이 있다. 허나 내공과 무공 수위의 등급이 아닌 신분과 조공 내력에 따른 구분이니 삿되고 헛되다.

강호무사 분별은 협객(俠客)과 건달(乾達), 반건(半乾), 아치(蛾癡, 부나방처럼 어리석다는 뜻으로 지음), 레기(㾢己, 염병앓는 놈이란 뜻으로 지음)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협객은 의생의사(義生義死)다. 의리와 가오를 중시하며 의에 살고 의에 죽는다. 건달은 폼생폼사(폼生폼死)다. 가오와 품새를 중시하며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 반건은 폼생이사(폼生利死)다.

폼만 건달이고 이문利文이나 챙기는 얌체족이다. 아치는 이생이사(利生利死)다. 이문이 생기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하류 중에 하류 무사다. 레기는 탈골완생(脫骨完生)이다. 저만 살자고 뼈 빼고 다니는 자들로 기레기로도 불리우고 쓰레기로도 일컬어진다. 당금 무림의 협객은? 건달은? 반건은? 아치는? 레기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무림비사 '2'

불세출의 영웅 디제이의 추억이다. 무협풍을 잠시 접고 바람결 귀동냥 한 자락과 직접 겪은 일화를 소개한다.

#1.

디제이를 만나기 이전, 평생 양지만 쫓던 남도의 대형 교회 장로님이 계셨다. 지금의 구김에서 고위직을 겸했으니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으리라. 선거 때마다 이상 현상을 겪으니 그 원인을 알 수 없어 고민이 깊었다.

이상 현상이란 기표소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구김 고위직이니 당근 구김을 찍겠단 생각말곤 딴마음이 안든다. 헌데 기표소에 들어가 붓뚜껑을 짚는 순간 손끝이 파르르 떨리면서 애초 먹었던 마음과 달리 디제이 선생님 쪽에다 꾸~욱~누르게 되더란다.

어쩐지 양심(?)이 찔려 굳게 마음먹고 가도 도루묵이긴 마찬가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이러한 현상을 고민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성령이다. 하늘이 디제이를 내게 보내신 뜻"이다. 성령이 임하지 않고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라며 장로님은 전국을 돌며 간증같은 유세를 다녔고 그 해 겨울, 디제이는 평생소원 정권교체를 이뤘다.

#2.

1995년 지방선거 때다. 디제이가 호남 지원유세에 나섰다. 군산에 오셨을 때 강호 소졸이 우연찮게 선생님을 가까이서 뵐 수 있었다. 하필이면 화장실이다. 후보 유세가 한창일 때라 화장실은 텅비어 나홀로 짜내기 한 판하러 들어갔다.

지퍼를 내리고 힘을 주려는데 뒤이어 한 분이 소변을 보러 들어오셨다. 디제이다. 어린 마음에 알은 체도 못하고 소변은 지려, 누는 건지 마는 건지 머릿 속이 복잡할 때 선생님께서 바지춤을 추스리고 먼저 나가셨다.

먼 발치에서는 뵈었어도 이렇게 가까이서 뵙다니 꿈만 같았다. 싸는 둥 마는 둥 일처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기까지 족히 1~2분은 걸렸으리라. 화장실 문밖에 나서자 아니 글쎄, 디제이가 지팡이를 짚고 홀로이 서 계시는거다.

깜놀했지만 곧 눈치챘다. 날 기다리셨던거다. 악수를 건네며 "김대중 입니다" 인사를 하시니 머리가 하얘졌다. 거장의 품격은 거창한 게 아니다.

※위 ‘정치 무림 열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상의 인물들이다. 정치를 풍자한 콩트라는 점을 이해바라며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린다. 

/조상식(강호 소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