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록이냐 사망이냐

만언각비(7)

2020-05-19     이강록

죽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옛날에는 생전의 신분에 따라 죽음을 호칭하는 등급이 달랐다. 이름 하여 사지오등(死之五等)이 그것이다.

이르건대 왕이 죽으면 붕(崩), 제후가 죽으면 훙(薨), 대부가 죽으면 졸(卒), 선비가 죽으면 불록(不祿), 서인이 죽으면 사(死)였다. 예기(禮記) '곡례'(曲禮)편에 나온다. 선비의 경우 녹을 받지 않고 죽는다는 표현은 꽤 그럴싸하다.

천자의 나라 고려 때까지는 임금의 서거는 붕(崩) ‧ 붕어(崩御)였다. 그러나 명의 제후였던 이성계부터는 ‘붕’을 쓰지 못했다. 고려사에 고려 임금 서거도 붕을 쓰지 않았다. 고려사 ‧ 고려사열전을 조선이 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는 사망이 자주 쓰인다. 사망은 흔히 수사 조서나 법원 판결 등에서처럼 죽음을 느낌이나 감정의 개입 없이 지극히 단순화해서 표현하는 경우에 쓰인다. 또 법률상 자연인이 일반적 권리능력을 상실하고 재산상 권리나 의무의 상속이 시작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고인의 행적이나 일생을 묘사할 때는 사망이란 표현을 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신분이나 죽음의 성격, 사회적 의미 등을 감안해 갖가지 표현이 동원된다. 특히 시대별, 신분 계층별, 종교별로 이루 헤아리기 복잡할 만큼 여러 가지로 나뉘어 쓰인다. 지난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도 일부 언론이 처음에는 사망이란 단어를 쓰다가 뒤늦게 서거라는 표현으로 고쳤던 적이 있다. 퍽이나 의도적이었지만 언론의 오만과 횡포가 지나친 사례다.

오늘날 죽음의 호칭은 여러 갈래로 변모했다.

통상 보서(譜書)나 전기(傳記), 행장(行狀), 비문(碑文)에 가장 흔하게 쓰는 표현이 졸(卒)이다. 졸대신 몰(歿 ‧ 沒)을 쓰기도 한다.

졸이나 몰보다 약간 높임말로 별세(別世 세상을 떠남), 기세(棄世 세상을 버림, 웃어른이 돌아가심을 이름), 하세(下世 세상을 하직함), 작고(作故 고인이 됨), 영면(永眠 영원히 잠듦),장서(長逝 영영 감), 운명(殞命 목숨이 끊어짐)이 있다. 또 노인이 병 없이 곱게 죽음을 뜻하는 선화(仙化)라는 표현도 있다.

이보다 존대하는 말로 별세의 경칭인 서세(逝世), 작고의 경칭인 서거(逝去), 영면, 장서의 경칭인 영서(永逝)가 있다. 선화의 경칭으로는 선서(仙逝)라고 한다.

주로 부고에 쓰이는 타계(他界)는 인간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간다는 뜻이며 故 천상병 시인이 썼던 시 제목 귀천(歸天)처럼 혼백이 하늘로 돌아간다는 뜻을 담는 표현도 있다.

사망의 존칭으로 연세(捐世 세상을 버림)가 있으며 그저 명목(瞑目 눈을 감음)이라고도 한다.

단순히 ‘삶을 마치다’는 뜻으로 종(終)이란 표현도 등장한다. 서경(書經)에서 ‘군자의 죽음은 종(君子曰終)’이라고 했고 ‘소인의 죽음은 사(小人曰死)’라고 했다. 대개 천수를 다 누린 경우 종이란 표현을 쓴다. 가톨릭에서 쓰는 선종(善終)이나 오복 가운데 하나인 고종(考終), 고종명(考終命)이 그런 뜻으로 쓰인 경우다.

종과는 반대로 젊어서 일찍 죽으면 요(夭)를 쓴다. 요절(夭折), 요상(夭殤), 요서(夭逝), 요찰(夭札), 요함(夭陷), 요혼(夭昏)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요혼은 태어나서 이름도 짓기 전에 죽은 경우를 말한다. 장정이 되기 전에 죽은 경우(未二十而死)에는 요상을 쓴다. 특히 현인(賢人)이나 가인(佳人)의 요절은 옥절(玉折)이라고 한다. 보옥(寶玉)이 부서진다는 뜻이다. 그것도 모자랄만큼 안타깝다면 옥최(玉摧)를 동원한다.

명예나 충절을 위해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뜻으로 옥쇄(玉碎)가 사용되기도 한다. 옥쇄 대신에 산화(散華)라는 표현도 쓰이는데 말 그대로 꽃처럼 흩어진다는 뜻이다. 전장에서 장렬한 죽음을 일컫는다.

황제의 죽음을 崩御(붕어)라고 하는데 대한제국 시절 고종과 순종 황제가 해당된다. 같은 경우에 다른 말로는 붕조(崩殂), 상빈(上賓), 안가(晏駕)라고 한다.

국왕이 세상을 뜬 때는 승하(昇遐)와 훙어(薨御)를 주로 쓴다. 이밖에도 등가(登假), 등하(登遐), 예척(禮陟), 척방(陟方), 선어(仙馭)라는 용어도 쓰인다. 조종(祖宗) 이외의 임금, 이를테면 연산군, 광해군 등에는 조락(殂落)이라고 표현한다. 대원군, 대군 등 왕공 귀인의 죽음은 薨逝(훙서), 薨去(훙거)라고 한다.

나라와 민족, 그밖에 종교나 절의 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경우에는 ‘순(殉)’을 쓴다. 하여 순국(殉國), 순절(殉節 충절을 지키다 귀하게 죽음), 순교(殉敎 종교를 위해 죽음), 순도(殉道 정의나 도의를 위해 목숨을 바침), 순애(殉愛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림), 순직(殉職 직무를 수행하다 죽음), 순사(殉死 죽은 왕이나 남편, 아내를 따라 죽음) 등의 표현이 나온다.

절명(絶命)이란 표현은 선비나 지사가 목숨을 끊는 경우에 사용된다. 매천 황현이나 면암 최익현의 절명시는 고개를 우러르게 만든다.

종교별로도 죽음의 표현은 각각 다르다. 제각기 해당 종교의 세계관이나 우주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불교는 입멸(入滅), 입적(入寂), 열반(涅槃), 적멸(寂滅), 원적(圓寂), 시적(示寂)이라는 용어를 쓴다. 대개가 모든 번뇌를 벗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밖에도 장왕(長往), 시멸(示滅), 귀진(歸眞)이란 표현도 동원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기독교에서는 소천(召天), 즉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말이 쓰인다. 천주교에서는 선종이 사용된다.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로 말 그대로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마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천도교에서는 환원(還元), 즉 ‘우주의 성령 속에는 무궁한 영적 실재가 있으며 그것이 세상에 나왔다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도교에서는 등선(登仙)이란 표현이 등장하는데 우화등선(羽化登仙)의 준말이다.

객지에서 죽으면 객사, 물에 빠져 죽으면 익사, 떨어져 죽으면 실족사, 우연한 사고로 죽으면 횡사, 이렇듯 상황별로 ‘사’자가 들어간 것이면 대개 일반인을 두고 쓰는 경우이다.

그밖에 눈을 감다, 숨을 거두다, 목숨을 버렸다, 세상을 뜨다, 유명(幽明)을 달리 하다, 세상을 하직하다 등은 한자투를 우리말로 풀어쓴 경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데도 자살(自殺 스스로 자기 생명을 끊음)이나 자결(自決 스스로 결정함), 자진(自盡 강압에 의하여 목숨을 끊음) 등 뉘앙스가 저마다 다르다. 사거(死去 죽어서 세상을 떠남)냐 서거(逝去 사거의 높임말)냐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표현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니 고인의 행적이나 격에 맞게 적절히 쓰지 않으면 오히려 죽음을 욕되게 하기 십상이다. 죽음을 놓고도 이런 저런 표현들이 맞서는 게 현실이다. 하여 죽음에 대한 호칭을 살펴봤다.  

/이강록 <사람과 언론> 편집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