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과학과 예술 소양 키우면 삶, 더없이 풍요
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어린이·청소년 책을 내보고 싶다. 일주일에 3~4일은 도서관에 들르는데, 한번 가면 한 시간 정도는 그쪽 섹션을 기웃거린다. 기막힌 책들이 많다.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까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풍부한 삽화를 곁들여 이해를 돕는다.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유사 과학이나 자의식 과잉의 개똥철학 책이 별로 없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 실제로 잘 모르는 분야를 공부할 때는 이쪽 책들을 잔뜩 빌려와 읽고 나서 성인 대상 책을 읽으면 훨씬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 짓는 일도 많다.
꿈꿀자유에서는 거의 혼자서 컨텐츠를 생산한다. 컨텐츠 생산 방식은 두 가지, 번역과 편집이다. 다른 분이 쓴 책이나 복간서를 작업할 때도 반드시 편집은 내 손으로 한다. 1년은 52주, 주말은 쉬고 7주 정도는 논다면 일하는 날 수는 5x45=225일이다. 번역은 하루 5쪽, 편집은 하루 10쪽 정도 한다고 치면 연간 1125쪽을 번역하고, 2250쪽을 편집한다. 250~300쪽짜리 책으로 치면 연간 4권의 역서와 8권의 복간서 등 12권을 내게 된다. 물론 이렇게 물흐르듯 일이 풀리지는 않지만...
앞으로 20년간 일을 한다면 1년에 4권을 어떤 책으로 채워야 할까? 감염병 시리즈 1권, 장애에 관한 책 1권, 꼭 내고 싶은 책 1권(주로 음악이나 의학의 역사가 될 것이다) 하면 1권이 남는다. 물론 다른 출판사의 의뢰를 받지만, 의뢰가 없을 수도 있고 청소년 책은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지는 않으니 포트폴리오를 구성해보면 어떨까?
사실 한 권(이라지만 세트라서 두 권)을 염두에 두고 판권을 협상 중이다. 그런데 변수가 등장했다. 책 크기도 크고, 아름다운 그림을 살려야 하니 당연히 양장에 풀컬러이고 종이도 좀 좋은 걸 써야 하는데, 최근 종이값이 너무 올라 제작비가 생각보다 많이 든다는 것. 제작비만큼 책값을 더 받아야겠지만, 어린이·청소년 책은 가격 저항선이 있다고 한다. 그 돈이면 마음에 두고 있는 책을 너댓권은 낼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어린 나이에 과학과 예술에 대한 소양을 키우면 삶이 더없이 풍요로워진다. 소아과 의사 출신이라 그런지 책으로 어린 독자들을 만나고,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거꾸로 생각하면 혼자 꾸려가는 주제에 모르는 분야에 뛰어들어 조금 안정된 회사를 다시 어려운 지경에 몰아넣을 것 같기도 하고... 나이를 먹긴 먹었다. 예전 같으면 저질러 놓고 봤을 텐데 말이지.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 그냥 써본다. (사진은 재미있게 읽은 청소년 소설 <Ghost>)
/강병철(소아과 전문의·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