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은 어디로 가나?
백승종의 '역사칼럼'
현재 국제적으로 가장 큰 이슈는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변화가 아닐까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오래전부터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이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이란 동부 및 인도(파키스탄)과 떼려야 뗄 수가 없어요. 그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은 강대국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으로 봅니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 영국 및 독일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서 사실상 아프가니스탄을 간접적으로 지배하였어요. 친서방 정권을 세우고, 현지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경찰과 군인을 훈련하고 장비도 지급했습니다.
많은 돈을 쏟아부었으나, 서방세계의 아프가니스탄 정책은 보기 좋게 실패했습니다. 미국 등이 자국의 병력을 철수하자 이슬람주의자들인 탈레반이 작전을 시작했고요, 그런지 10일도 지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을 몽땅 장악하였으니까요. 탈레반의 위력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정확히는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점령한 셈인데요, 전 세계 이슬람세력이 매우 고무되어 있습니다. 알카에다를 비롯하여 ‘이슬람 국가(IS)’, 모잠비크와 시리아의 이슬람세력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 대도시에서 지하조직으로 존재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만세를 부른다고 봐야지요.
특히 아프가니스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알카에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환희에 들떠있을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전사들은 용맹합니다. 그들은 1989년에 소련이 혼란에 빠지자 빈손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미국과 서방 주요 국가까지도 쫓아낸 것입니다.
세계 최강의 국가들을 연달아 물리친 셈이라,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세력이 앞으로는 더욱더 대담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측됩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쫓겨난 것은 그 당시의 국제 정세와도 관계가 깊습니다. 개방과 개혁 바람으로 동구 여러 나라가 심하게 흔들렸으니까요. 그럼 미국은 또 왜 실패하였을까요.
앞으로 차분한 분석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옳은 것 같아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파벌도 복잡하지만요, 알카에다와의 관계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답니다. 양자는 얼핏 보아도 중층적인 관계인데요, 알고 보면 그래도 우호적인 관계를 더욱더 강화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그들 외에도 호전적인 이슬람세력이 한둘이 아니랍니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면서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대한 적대감을 공유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 점을 미국의 정보기관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세상일을 다 아는 것 같아도, 헛다리를 짚을 때가 정말 많습니다!
2011년 미국은 알카에다를 공격해 오사마 빈 라덴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 뒤 알카에다 조직은 이집트 출신의 아이만 알 자와히리(Ayman al-Zawahiri)가 이끌고 있지요. 자와히리는 서방세계를 직접 공격하는 대신에 지리적으로 가까이에 있는 적을 무찌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대요.
국제적인 테러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희석하는 가운데 이슬람 세계를 하나로 통일할 꿈을 가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탈레반과 더욱더 긴밀하게 협력한 것일 테고요. 미국 등 서방세계가 아프가니스탄에 파고든 것은, 2001년의 ‘9.11’테러의 결과였어요.
그때 미국에 대한 공격을 편 것이 알카에다였고,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던 탈레반과 함께 모든 일을 준비했다고 보았으니까요. 2001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자연히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 아래 들어갔습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을 때부터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강화하려고 현지에서 일부 세력을 키워온 터였습니다.
그래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직접 개입하기 전에는 친미 세력이 탈레반의 정권 수립을 막지 못했어요.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지역에서 전폭적인 지지와 환영을 받았거든요. 그들이 정점에 도달한 것은 아마 1999년경이었다고 봅니다. 탈레반은 이슬람 교리를 따라 엄격한 통제사회를 만들려고 했어요. 서방세계의 눈으로 보면 여성을 억압하고,
소수 민족을 심하게 차별하고 민주적인 정치세력을 탄압한 거였지요.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은 지난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 친서방 정권을 유지하려고 많은 애를 썼지요. 그러나 해마다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에 비하면 성과는 미약했고요. 미국의 인내심은 차츰 한계에 도달하였어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작년에 미군 철수를 결정하였습니다.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알카에다 등 일체의 테러리스트를 훈련하지 말며, 이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지도 않고 일꾼을 모집하지 않겠다고 약속만 하면 미국 군대를 빼겠다는 약속을 탈레반과 했어요.
결과적으로 지난 5월,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미국 대표단의 잘마이 칼릴자드(Zalmay Khalilzad)는 미국 의회에 긍정적인 보고서를 제출했어요. 일종의 요식행위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미국도 영국이나 독일도 다들 서둘러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고 싶었으니까요. 각국 군대는 아프가니스탄을 급히 떠났어요.
탈레반은 미국의 허수아비 정부를 일거에 무너뜨린 것이고요. 말로야 “개방적이고 화해를 추구하는 이슬람 정부”를 세운다고 하지요. 그들은 곧 수도 카불에 있는 대통령궁에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The 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을 선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국호는 과거에 탈레반 정권이 사용하던 것이라서 미국이 강력하게 반대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비호 아래 권력을 누리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탈레반이 수도에 입성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망명길에 올랐어요. 무책임한 정치가란 늘 이런 것이지요. 아프가니스탄의 내무부 고위 관리의 말로는, 가니가 타지키스탄을 향해서 떠났다고 합니다.
탈레반 측에서도 가니 전 대통령의 행방을 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으로, 20년에 걸친 친서방 국가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에서 막을 내린 것 같아요. 현재 카불 국제공항은 군용 비행기만 이착륙이 허용되고 있답니다. 서방과 밀접한 기득권층은 서둘러 망명길에 올랐고, 어쩔 수 없이 현지에 남은 중산층은 현금 인출기에 줄을 선 채 돈을 챙기기에 바쁘다고 합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 나라를 떠나기에 앞서 중요한 기밀문서를 불태우기에 바쁘고, 그동안 자신들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데리고 귀국하려고 비행기 편을 알아보고 있답니다. 외세의 앞잡이들은 이런 식으로라도 퇴로가 보장되기 마련입니다. 그 맛에 주구(走狗) 노릇을 기꺼이 하는 것이지요.
탈레반은 국제 사회에 좋은 이미지를 각인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번에는 여성을 혹독하게 차별하지도 않을 것이고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한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이 지켜질지도 의문이지마는 대부분의 평범한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은 탈레반의 재집권을 환영하는 것으로 보여요.
외세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인데요. 그것이 무척 어려운 일일 텐데요, 아무쪼록 잘 하기를 바랍니다. 전쟁과 폐허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의 아프가니스탄이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