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오목대와 만경대

신정일의 '길 위에서'

2021-08-15     신정일 객원기자

'만경대(萬景臺)' 

고덕산(高德山) 북록(北麓)에 있다. 돌 봉우리가 우뚝 솟아 마치 층운(層雲)을 이룬 듯이 보이는데, 그 위에 수십 명이 앉을 만하다. 사면으로 수목이 울창하며 석벽(石壁)은 그림 같이 아름답다.

서쪽으로 군산도(群山島)를 바라보며 북쪽으로는 기준성(箕準城)과 통한다. 동남쪽으로는 태산(太山)을 지고 있는데 기상이 천태만상이다.

옛 기록에 실린 이 만경대에서 고려 말의 문장가인 정몽주(鄭夢周)가 시 한 편을 남겼고, 그 시가 지금도 만경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천인(千仞) 높은 산에 비낀 돌길을, 올라오니 품은 감회 이길 길이 없구나. 청산이 멀리 희미하게 보이니 부여국(扶餘國)이요, 황엽이 휘날리니 백제성(百濟城)이라. 9월 높은 바람은 나그네를 슬프게 하고, 백년 호기는 서생(書生)을 그릇치게 하누나. 하늘 가로 해가 져서 푸른 구름이 모이니, 고개 들어 하염없이 옥경(玉京)을 바라보네.”

포은(圃隱) 정몽주가 이 시를 남긴 이유를 전주사람들은 아래와 같이 알고 있다. 고려 말에 이성계(李成桂) 장군이 지금의 남원시 운봉면(雲峰面) 황산에서 왜구들을 크게 물리친 일이 있었다.

그 전투가 유명한 이성계 장군의 황산대첩(荒山大捷)이다. 왜구들을 무찌른 이성계가 전주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오목대(梧木臺)에서 전승의 기념으로 큰 잔치를 베풀면서 고려를 엎고 조선을 개국할 뜻을 피력하며 대풍가를 불렀다고 한다.

이때 종사관으로 함께 참석했던 정몽주가 말을 달려 남고산 만경대에 올라 당시 서울인 개경(開京)을 바라보며 지은 시(詩)가 지금도 돌벽에 그대로 남아 있어 보는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고 하지만 태조 이성계가 양광, 전라 경상도로 순찰사가 되어 왜구를 무질렀던 때가 1380년이었는데 정몽주가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이성계가 무사했을 리가 있었겠는가?

다만 나라가 자꾸 황혼녘에 접어드는 것을 느낀 정몽주가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생각하며 지은 시가 조선시대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덧붙인 결과일 것이다. 죽은 사람들은 말이 없는데, 산 사람들이 이 말 저말들을 하고 있으니... 

/사진·글=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