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나이 잊고 시 창작 몰두하는 고하(古河) 최승범 시인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고하(古河) 최승범 전북대 명예교수

2020-05-16     전북의소리
고하 최승범 선생

구순 나이 잊고 시 창작 몰두하는 고하(古河) 최승범 명예교수

매일 문학관 출근해 자료정리·집필·사람들 만나며 규칙적 생활

동갑 아내 여읜 안타까움 달래려 영정으로나마 마주해

일림아/촛불을 꺼라/소박한 정원에 강물처럼 흐르는 푸른 달빛을 어서 우리 침실로 맞아 와야지…/유리창 하나도 없는 단조한 나의 방…/침실아―/그러나 푸른 달빛이 풍요히 흘러오면/너는 갑자기 바다가 될 수도 있겠지…/일림아/어서 촛불을 끄렴 <중략> 일림아/너와 나는 푸른 침실의 작은 배를 잡아타고/또/어디로 출발을 약속 하여야겠느냐? <신석정 ‘푸른 침실’ 중에서>

‘일림’은 신석정 시인의 맏따님 이름이다. 그 일림(一林)은 고하(古河) 최승범 시인(전북대 명예교수·고하문학관 관장)의 아내이기도 하다.

아내는 지난 날 때로는 묵은 사진첩을 꺼내놓고 ‘푸른 침실’을 읊조리기도 했다. 그 ‘일림’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지난 달 세상을 하직했다.

고하는 최근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자주 찾아보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아내를 떠나보냈다. 그래서 아직도 동갑인 아내를 먼저 여읜 안타까움이 응어리져 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집을 나올 때마다 영정사진으로나마 아내를 마주한다. 그것이 아내에 대한 고하의 가슴 짠한 잔정이다.

아내는 전주사범을 졸업해 초등교사로 재직했던 따뜻하고 정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래전 혈압 때문에 쓰러져 장기간 병원에 누워있어야 했다. 고하는 수시로 아내의 차도를 들여다보고 증세를 염려했다. 그러나 끝내는 떨쳐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코로나 십구만이/온누리에 번져//들끓는 판속이거니/한타령이거니//이 세상 망조이련가//적막공산/일레 <문학공간 4월호, ‘코로나 19’>

고하는 이처럼 당대의 아픔이자 재앙을 탄했다. 거기엔 정녕코 아내의 운명(殞命)도 예견했을까.

고하는 월간 『문학공간』에 매월 2편씩 시를 기고한다. 연재 타이틀 이름은 ‘시의 향기’. 지난 4월호에 83회 연재했으니 모두 166편의 시가 실린 것. 5월호에는 이미 시 2편 원고를 보냈으니 만 7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이어온 고정 연재 시편이다.

원로 시인으로서 이런 장기 연재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만큼 아흔 고령을 잊은, 시작(詩作)에 대한 엄청난 열정이자 끈기이다. 아니 열정과 끈기만으로 버틸 수 없으므로 시혼(詩魂)의 힘이다. 시혼이 없다면 이룰 수 없는 대단한 성과다. 이미 벌써 시집으로 묶었어도 여러 권의 분량이다. 『현대시조』에도 줄곧 작품을 쓰고 있다.

“읽다가 끝내면 똘똘 말아서 버리라지요. 그러면 되지 않아요. 그런 것을 거창하게 묶어본들 뭐 대단한 거 있겠어요.”

겸사겠지만 시집으로 펴내라는 권유에 고하는 그렇게 대꾸한다. 물론 거기에는 하드커버를 싫어하고 부피 큰 책 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취향도 깔려 있다.

‘삼사일언(三思一言) 한 마디 말하기 전에 세 번을 생각하고, 삼사일행(三思一行) 한 번 행동하기 전에 세 번을 생각하라’

고하는 삭녕최씨 가문의 큰 어른이신 태허정(太虛亭) 최항 할아버지(19대조)가 가훈처럼 내려주신 가르침을 늘 명심한다.

“나는 팩성(성미가 급함)이예요! 저 할아버지 생각할 때마다 그런 것이 없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밥 먹을 때 못마땅한 일 때문에 밥상을 손으로 내려치면 안식구가 깜짝 놀라고 그랬어요. 그런 것이 생각나고 그래서 지금도 마음에 걸려요.”

고하는 전주시 아중리 현대아파트 자택을 나서서 한옥마을 고하문학관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출퇴근한다.

“아침에 해를 등지고 집에서 나와 저녁 무렵 해를 등지고 집으로 향합니다.”

집에서 신일중학교까지는 건강을 위해 걷는다. 대략 3천5백보 거리다. 그 다음엔 택시로 문학관에 온다. 아침 8시 무렵 일찍 출근한다. 요즘에는 토요일 일요일에도 나온다. 집에 있으면 무료하다. 문학관에는 책이 있고 그림이 있고 자료가 있고 서신이 있다.

“문학관에 나와 배달될 책을 기다리며 차 한 잔 마시고 신문도 보고 이것저것 자료를 정리하다 보면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후배나 제자, 문인 등 심심찮게 나를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요.”

문학관에는 문학잡지, 동인지, 시집, 고서, 신문, 정기간행물, 저자들의 헌정본 등 수십 권의 책들이 쌓여 있다. 고하는 이것들을 살펴보고 정리하는데 여념이 없다.

1969년부터 발간된 『전북문학』 출간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올해로 출간 50년을 넘긴 『전북문학』은 전국을 비롯하여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문인들이 참여해 현재까지 286호가 발간됐다.

고하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도 고하로서는 뿌듯하다. 그래서 더더욱 소중하게 간수하려고 신경을 기울이던 차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공모한 ‘공공 도서관 주요 소장 자료 디지털화 지원 사업’에 선정돼 시름을 덜었다. 고하문학관 고문헌은 지난해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에 선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문가들이 내려와 2주간에 걸쳐 디지털화 작업을 마쳤다.

문화 예술분야의 이런저런 바지런한 활동으로 지난해 말에 고하는 전라북도 예술대상을 수상했다. 상에 욕심이 난다거나 이런 것은 없지만 내 나이에 상을 받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자못 흐뭇한 것은 사실이다. 노인에게 주는 격려와 응원이라 여긴다.

“나 자신이 많이 무뎌졌어요. 감각이네 정서네 이런 것들이 한참 둔해진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쓱 나서기도 그렇고 말하기도 그렇고 조심스럽지요.”

고하는 세월을 막으려 하지는 않겠으나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도 노년의 슬기라 여긴다. 그리고 낙관한다.

“내가 베푼 덕은 없어도 입은 덕은 많아요. 6·25네 뭐네 난리를 겪으면서도 그런 덕분에 여지껏 무탈하게 살고 있잖아요.” 

/이강록 <사람과 언론> 편집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