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싸움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1-08-03     백승종 객원기자

조선의 당파 싸움은 곧 자리 싸움이었다. 한 당파가 정권을 쥐면 그들은 과거시험을 멋대로 어지럽혔다. 실학자 성호 이익의 분석이 매우 사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식당(植黨, 내 당을 심음)’이라고 하여 현명한지를 따지지 않고 우리 편을 무조건 합격시킨다. 청요직(淸要職)에도 몽땅 우리 편을 집어넣는데, ‘장세(張勢, 세력을 펼침)’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정승 자리는 셋인데 그 자리를 노리는 (두 당파의) 대광(大匡, 가령 대광보국숭록대부 같은 것)의 품계는 여섯이 가지게 된다. 

또, 판서의 자리는 여섯인데 그에 합당한 자헌대부의 품계는 (적어도) 열 명이 된다. 심지어 초헌(軺軒, 고관이 타는 수레)을 타고 비단옷을 입는 귀한 자리나 엄격하게 선발하는 대각(臺閣, 사헌부와 사간원) 자리도, 자릿수에 비하여 그 자리를 지망하는 사람이 적어도 두 배 이상이다. 이런 판국이라, 반대당의 공격이 진정되기가 무섭게 안에서 내분이 시작된다.”

이익의 설명이 명쾌하다. 서로 자리를 차지하여고 붕당마다 정쟁에 열을 올렸고,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그 당도 내홍에 빠진 것이다. 예외가 하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문제가 풀리겠는가? 당쟁을 막을 방법은 전혀 없을까.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도 나오기 마련이다. 이익은 이렇게 대답한다.

“과거시험 횟수를 줄여서 선비들이 난잡하게 굴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관리들의 근무평정(考課)도 엄격히 시행하여 무능한 이를 도태시키자. 그런 다음 관직을 아껴서 함부로 아무에게나 주지 말며, 승진에도 신중을 기하여 함부로 올리지도 말아야 한다.

일단 자리에 적합한 인재를 구하여 자리를 너무 빈번히 옮기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사적 이익이 나오는 구멍을 틀어막아 백성의 마음과 지향을 안정시킬 일이다. 이런 방법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하지 못하면 설사 때려죽인다고 위협하더라도 당파 싸움을 막지 못한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듯, 성호 이익은 당대의 평범한 선비들과는 달랐다. 그는 명분과 절의 따위의 도덕적 가치로 사회현상을 진단하지 않았다. 자기 당은 옳고 다른 당은 그르다는 단순한 입장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당파의 문제를 깊이 파헤쳤다.

벼슬이라고 하는 밥그릇, 즉 공급은 일정하지만 과거급제라고 하는 사회적 수요가 너무 커서 격렬하고 고질적인 당쟁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해부하였다.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혈전을 벌이는 세태가 안타깝다는 것이 이익의 객관적인 진단이었다.

지금의 한국사회도 비슷하다. 대기업의 취직자리 또는 누구나 선망하는 전문직은 수적으로 무척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취업일선에서는 수십, 수백만 명이 모두 그 자리를 얻고 싶어한다.

피를 말리는 극단적인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극소수의 사람들만 원하는 직업을 얻게 되고, 나머지는 잉여자원으로 취급된다. 이를 테면 ‘루저’가 되고 만다. 성호 이익은 문제의 근원을 과거시험의 제도적 약점에서 찾았다.

당나라 때 과거제도가 보편화되면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지식계층과는 거리가 먼 농민들까지도 생업을 포기하고 죽기 살기로 과거시험에 열을 올린 결과, 사회가 불안해지고 벼슬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문제는 과거시험을 통해서 과연 훌륭한 인재를 골라낼 수 있는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익은 다른 글에서도 거듭 강조하기를, 하루 이틀만 치르면 그만인 과거시험으로는 선비들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취업시험이나 각종의 임용고시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실력이 부족해도 운이 닿으면 쉽게 합격하기도 하고, 준비된 수험생이라도 조금만 실수하거나 시험운이 따르지 않아서 실패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젊은 시절 나는 십여 년 동안 유럽에서 살았다.

그곳에서는 대학입학 시험도 과열되는 법이 없었고, 취업시험이란 것은 아예 찾아보기 어려웠다. 1980년대 유럽에서는 취업의 문도 넓었던 데다,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어서 어느 분야든 경쟁이 별로 심하지 않았다. 수요와 공급은 경제학의 기본개념이다.

그와 같은 학술적 개념을 성호 이익은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으나 스스로 발견해냈다. <붕당을 논한다>에서 그가 내린 처방이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21세기의 한국사회는 인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선발하는 개방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더욱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누구라도 자신이 선 자리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