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기 ‘눈물 한 방울’...처음보다 나중이 좋았더라
궁핍하고 혼곤한 시대, 지친 시민들을 위한 앤솔로지(3)
#우리나라에서 가장 값비싼 눈물
다산 정약용이 ‘죽란시사(竹欄詩社)’라는 선비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어느 날, 그 모임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값비싼 눈물을 흘린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중 한 선비가 고려말 문장가 ‘이색’의 눈물을 꼽았다.
이색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은둔생활을 했다. 아들은 무고로 형을 받고 죽었다. 68세 되는 어느 날 고향 여주로 갔다.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들이 찾아왔다. 이색은 제자들에게 함께 산에 놀이를 가자고 하고,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실컷 울고 싶었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러고는 지난날의 서럽고 힘든 일을 이야기하면서 하루종일 통곡을 했다. 산을 내려오면서 지은 시가 이렇다.
“소리를 안 내려니 가슴이 답답하고/ 소리를 내려 하니 남의 귀 무섭구나/ 이래도 아니 되고 저래도 아니 되니/ 에라 산속 깊이 들어가/ 종일토록 울어 나 볼까?”
일종의 서러움의 눈물이다. 망국의 한을 달래려 꾹꾹 눌러 참았을 서러움과 통절함,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러움의 눈물이 아닌, 남을 위해 울어주는 눈물이다. 이 눈물은 같이 아파하는 눈물이요, 함께 마음을 나누는 눈물이다. 이 눈물은 그냥 눈물로 멈추지 않는다.
마음에 감동을 주고 속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즉 어려움에 처한 사람, 불쌍한 사람을 향한 동정심과 무엇인가를 나누려고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너니나니 할것 없이 모두가 공황(恐慌) 또는 아노미에 빠져있어 함께 울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낙타의 눈물
낙타가 눈물을 흘린다는 걸 아는가. 살펴 보자. 낙타의 성격은 특이한 점이 있다. 실제로 낙타 중에는 모성애가 없는 낙타들이 있다고 한다. 새끼가 굶주려 죽게 생겼는데도 젖을 물리지 않고 가까이 오면 발로 차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낙타들도 제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정을 들여 키우게 할 수 있는 놀라운 비법이 전해온다. 바로 몽골 사람들이 터득한 독특한 방법이다.
몽골사람들은 매정한 어미 낙타를 다스리기 위해 마두금(馬頭琴)이라는 현악기 연주와 함께 노래를 들려준다. 마두금을 잘 다루는 악사를 초대한 다음 낙타를 앞에 두고 마을 사람들이 연주회를 연다.
이때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로 그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인 할머니가 나선다. 이 할머니는 자식 손자를 많이 키워 본 사람이어서 마치 자장가처럼 다정다감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구슬픈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아름다운 선율과 구슬픈 노래를 들은 낙타는 눈에 눈물방울이 맺히며 이내 눈물을 흘린다. 이 낙타는 모성애를 되찾아 제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정을 들여 잘 키우는 어미낙타로 되돌아온다. 이러한 장면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TV로 방송되기도 했다.
#코로나19 시기 ‘눈물 한 방울’
암 투병 중인 노(老)학자가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발톱을 깎다가 눈물 한 방울을 툭, 떨어뜨렸다. 멍들고 이지러져 사라지다시피 한 새끼발톱, 그 가여운 발가락을 보고 있자니 회한이 밀려왔다.
“이 무거운 몸뚱이를 짊어지고 80년을 달려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느냐. 나는 왜 이제야 너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냐.”
‘디지로그’ ‘생명자본’ 등 혼돈의 시대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해온 이 석학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인류가 절망과 공포에 휩싸여 있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화두가 ‘눈물 한 방울’이라고 했다. 이 노학자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다.
“우리는 피 흘린 혁명도 경험해봤고, 땀 흘려 경제도 부흥해봤어요. 딱 하나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눈물, 즉 박애예요. 날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 흘리는 눈물.
인류는 이미 피의 논리, 땀의 논리를 가지고는 생존해갈 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어요. 대한민국만 해도 적폐 청산으로, 전염병으로, 남북 문제로 나라가 엉망이 됐지만 독재를 이기는 건 주먹이 아니라 보자기였듯이 우리에겐 어느 때보다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절실합니다.”
프랑스 학자이자 마르크시스트인 자크 아탈리는 “코로나 팬데믹을 부른 것이 이기적 생존 경제라면 이제 인류는 이타적 생명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령은 그보다 10년을 앞서 ‘생명이 자본이다’ ‘정보화 다음은 생명화 시대’라고 선언했다.
“나는 눈물 없는 자유와 평등이 인류의 문명을 초토화시켰다고 봐요. 우리는 자유를 외치지만 코로나19는 인간이 한낱 짐승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줬지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릴 보고 비웃어요. ‘너희들은 짐승이야. 까불지마. 나만도 못해. 난 반생명 반물질인데도 너희들이 나한테 지잖아? 인간의 위대한 문명이 한낱 미물에 의해 티끌처럼 사라지잖아?’ 하고 말이죠.”
이어령은 오늘의 재앙을 끝내는 길은, 오직 인간만이 흘릴 수 있는 눈물 한 방울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눈물을 갈구하는지는 최근의 트로트 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고 했다.
“다이아몬드나 하라리 같은 지식인들이 외치는 백마디 말이 트로트 한 곡이 주는 위로를 당하지 못해요. 가수의 노래를 듣고 우는 객석의 청중을 보고 시청자가 다시 울지요. ‘아직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하는 안도감에…. 분노와 증오, 저주의 말이 넘쳐나는 시대, 누군가는 바보 소리를 들을지라도 날카롭게 찔리고 베인 상처를 어루만져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어령은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과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화두는 ‘눈물 한방울’ 이라고 했다.
#처음보다 나중이 좋았더라
날마다 날마다/ 우리들 하루하루는/ 눈물과 한숨과 땀방울/ 절름발이의 언덕// 언덕 너머 들판 넘어/ 강물을 건너/ 갑시다 갑시다/ 어서 갑시다// 저 너머 흰 구름/ 꽃으로 피어나는 곳/ 꽃 보러 갑시다/ 미소 보러 갑시다// 아닙니다 우리가/ 꽃이 되러 갑시다/ 미소 되러 갑시다/ 어서 같이 갑시다. (나태주, ‘아제아제’)
아! 왜 우리의 낙토는 저 쪽 언덕에(彼岸)에 있다더냐. 이쪽 언덕은 이다지도 아픔 속에 신음하고 ‘네가 많으니 내가 적으니’ 해가며 다툼질인데. 그래도 그 언덕을 향해 쫓아가지 않을 수는 없구나. 그래! 정신 차리고 기운 내서 다가가 보자꾸나.
그리하여 ‘처음보다 나중이 좋았더라’고 말하자꾸나. 이웃들이여!
꽃 장엄이란 말/ 가슴이 벅찹니다// 꽃송이 하나하나가/ 세상이요 우주라지요//아, 아, 아,/ 그만 가슴이 열려// 나도 한 송이 꽃으로 팡!/ 터지고 싶습니다. (나태주, ‘화엄’)
마침내 환난과 파국을 딛고 일어서서 끝내 진리를 깨치고 평화를 누리는 날, 우리는 웃으며 노래 부르리라. 반드시 그러리라.
/이강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