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비하'논란 불구 '침묵'하는 전북 정치권

김명성의 '이슈 체크'

2021-07-12     김명성 논설위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죽창가 망언에도 보름이 다가도록 전북 정치권과 자치단체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 비난용으로 동원된 죽창가 망언이 마치 정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반외세 반봉건의 동학농민혁명을 국가기념일로 승화시킨 전북의 당찬 정신이 바닥에 나뒹굴고 만 셈이다. 성명서 한 장도 없는 전북 정치권의 무기력이 그대로 드러났다. 동학의 혼이 서려있는 해당 시·군의 단체장도, 도지사도 한마디 언급조차 없다. 동학농민혁명을 계승한다는 그 많은 단체들도 입을 닫고 있다. 어찌된 일인가.

윤석열 ‘죽창가’ 망언,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기자회견 모습(자료사진)

윤석열 전 총장은 출마선언에서 한국인의 반일감정과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를 죽창가에 빗대서 강도높게 비난했다. 문제가 된 발언의 요지는 이렇다.

“외교는 실용주의, 실사구시, 현실주의에 입각해야 하는데 이념 편향적 ‘죽창가’를 부르다가 여기까지 왔다. 지금 한-일 관계가 수교 이후 가장 열악해졌으며 회복이 불가능해질 정도까지 망가졌다.”

지금부터 2년 전, 일본은 일방적인 수출규제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대일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산업이었다. 사실상 기습적인 수출 중단 조치는 2018년 10월의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판결이 계기가 됐다. 한국의 대법원 판결이 이행되면 1965년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이 뒤흔들릴 것을 우려한 일본 아베 정부의 악수 중 악수였다.

우리나라 산업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른바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분야가 마비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부와 산업계의 노력으로 소부장 독립을 이뤄냈다. 실제로 올해 국내 소부장 100대 핵심 부품의 대일 의존도가 2년 전 31.4%에서 24.9%로 낮아졌다. 일본의 피해는 더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이 번져갔고 한국인의 일본 관광도 끊겼다. 타격을 입히려했던 우리나라의 소부장 산업은 자립을 이뤄갔고, 거꾸로 일본은 역풍을 맞았던 것이다.

KBS전주총국 5월 11일 보도(화면 캡쳐)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칼잡이로 불리는 검사로 줄곧 살아온 그에게서 높은 역사의식과 얽히고설킨 외교적 해법을 아직은 기대할 수 없음이 드러난 것일까.

고작 몇 달간의 과외수업으로는 개인의 지식수준과 철학의 깊이를 담보할 수는 없다. 한일 간에 풀리지 않고 있는 문제의 원인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 길들이기에 익숙한 일본의 대한(對韓) 외교라는 것. 지금의 분단이 전범국 일본이 아닌 이 땅에 그어진 선이라는 통한의 역사를 알 턱이 있겠나.

그 얄팍한 역사인식 수준이 무지한 역사관이 담긴 발언을 내뱉게 된 바탕이다. 그러기에 동학농민혁명 당시 수 십 만 명의 희생자들은 쓸데없이 죽창 들었다가 떼죽음 당한 집단으로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동학농민혁명 비하 방치, 전북정신 훼손 

전주MBC 2019년 2월 19일 보도(화면 캡쳐)

윤 전 총장이 비아냥거린 죽창가는 저항시인 김남주의 작품이고, 시대적 배경은 동학농민혁명이다. 윤 전 총장의 의도는 한·일 관계를 풀지 못하고 있는 현 정부를 탓하는데 있었지만 죽창 든 농민혁명군을 깎아내렸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전북 정치권은 한마디 따끔한 충고도 없다.

한 줄의 성명도 없다. 동학 발상지인 해당 시장·군수들도 덩달아 침묵하고 있다. 전북도민을 대표하는 도지사도 한마디 쓴 소리조차 없다. 동학농민혁명 유족들만 탄식하고 있을 뿐이다.

유족들은 문제의 발언이 식민지 원흉들에 폭탄을 던진 윤봉길 기념관에서 나왔다는 사실, 동학 선열의 명예를 짓밟을 발언일 수 있는데도 태연하게 발언한 윤 전 총장의 천박한 역사인식 수준, 상식을 벗어난 망언에 항의조차 못하는 전북 정치권에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동학선열을 깎아내리는 망언에 침묵하는 것은 결국 동조하고 있는 셈이라고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윤석열 망언 후 동학농민혁명 유족들만 ‘부글부글’

KBS전주총국 5월 11일 보도(화면 캡쳐)

힘없는 유족들만 속이 끓고 있음에도 정작 이를 대변할 정치권과 단체장이 외면하는 이유는 몇 가지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그들에겐 동학농민혁명이 단순히 선거용 이벤트였다는 것이다. 국가 기념일로 끌어 올린 노력도 결국 선거 공보물에 한 줄 남기는 기록용일 것이리라.

실제로 동학농민혁명이 명예를 되찾게 된 특별법은 2004년에 마련됐음에도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기까지는 그 뒤로 무려 15년이 소요되었다. 그 기나긴 허송세월은 정치인과 자치단체장의 알력으로 얼룩졌다. 그들의 공로 세우기 싸움이 국가 기념일 지정을 늦추게 했다. 결국 특별법 성취는 유족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이뤄졌지만 기념일 제정은 정치인과 단체장들에 의해 저지당한 셈이다.

망언에 대응을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과거사일 뿐이라는 안일한 역사인식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E.H Carr)라는 말이 있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일이지만 과거에 그치지 않고 현재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이 담겨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풀어나갈 열쇠가 될 수 있다. 과거의 일을 과거의 시각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는 뜻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분명 과거의 일이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을 초토화시켜 자국에 길들이려는 한 일본, 그리고 구체적으로 한·일 관계의 악화원인을 문재인 정권에 돌림으로써 총선에서 보수정권(현 국민의힘)에 승리를 안겨 주려한 일본의 속셈. 이는 경제적 공세로 정권 교체를 기도한 명백한 침공이었다.

을사늑약이 오늘날 재현될 뻔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죽창은 현대판 동학농민혁명이고 관련 산업의 자립과 여당(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승리는 성공한 혁명으로 기록된다. 에드워드 카(E.H Carr)의 경고를 전북의 정치권은 새겨들어야 한다. 이렇듯 동학농민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윤석열 부친, 일본 문부성 장학생 출신’ 논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촉발시킨 죽창가 파문은 거꾸로 본인 부친의 친일 논란을 일으켰다. 윤 전 총장 부친은 한·일 협정에 반대 여론이 거센 1960대에 일본 문부성 장학생 1호로 유학을 다녀온 사실이 공개돼 인터넷 상에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밝힌 '열림공감TV'는 “당시 반일 국민여론 속에 문부성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왔다는 점에서 친일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일 협정에 반대한 입장이라면 일본에서 장학생으로 받았을 리 없다는 주장이다.

윤 전 총장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출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으로 또 다시 구설에 올랐다. ‘과거에는 크게 문제를 안 삼았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볼 문제가 아니다’고 말한 것이다.

죽창가 망언으로 동학농민혁명을 깎아내리더니 이제 일본 극우주의자나 내뱉을 수 있는 원전 오염수 방출 두둔 발언까지 나왔다. 대선 유력주자로서 자질이 의심받게 된 것이다.

입 다문 지역 국회의원들·자치단체장들, 지방의회가 나서야

새전북신문 5월 12일 1면 기사.

동학농민혁명 정신이 정수를 이룬 전북정신의 현주소가 궁금하다. 뒤늦게 고향을 찾은 국회의원에게 기대할 바는 요원하다. 공무원 출신들로 넘쳐나는 단체장들도 입바른 소리할 배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뉴시스 5월 11일 기사(홈페이지 캡쳐)

결국 지방자치를 성실하게 일궈가고 있는 지방의회에 기대해보면 어떨까. 전북도의회와 14개 시군의회는 준엄하게 꾸짖어라. 잘못된 역사관을 깨우쳐줘야 한다. 성명서를 채택하고 질의서도 보내라. 윤 전 총장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라. 동학농민혁명의 선열을 대리해 엄하게 회초리를 들어라.

국민들에게도 전북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알려라. 무장에서, 백산에서, 황토현에서, 원평과 삼례에서 지축을 흔들었던 죽창을 다시 높이 들어라. 정치인들이 정신 바짝 차리도록 죽창가의 왜곡된 발언을 지적해야 한다.

윤석열 전 총장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질타하고 이를 방치하는 도지사, 시장·군수들의 게으름을 일깨워야 한다. 변방으로 움츠러들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도 경고음을 내주어야 한다. 공허한 ‘전북 몫 찾기’보다는 당장의 불의적 상황에 의분(義憤)을 드러내야 한다.

동학혁명의 선열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는 사실을 안팎으로 알리는 게 후손의 당연한 도리이다. 지방의회에 기대해본다. 

/김명성 논설위원(전 KBS전주방송총국 보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