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를 죽도록 사랑했던 남자

신정일의 '길 위에서'

2021-07-07     신정일 객원기자

천하에 상남자가 어느 날 문득 산천을 노닐다가 아름답고 오묘한 풍경에 한 눈에 반해 자호를 지은 섬.

산죽이 많아서 죽도라 지은 그 섬을 오매불망 그리워하고 사랑해서 서실하나 짓고 오고 가면서 제자들을 가르쳤지. 

그러던 어느 해 가을 온 산천이 오색찬란하게 물들었을 때 조선 팔도를 뒤흔든 역모사건이 일어나 그 사내 이 섬에서 생을 마감했지. 

장렬하게 꽂아 논 칼에 목을 찔러 자해를 했다고도 하고 혹자는 때려 죽이고선 자살했다고 꾸며 의문사로 남은 이 사건을 '기축옥사'라고도 부르고 '정여립 모반사건'이라고도 부르지.

결국 이 나라에 거센 피바람이 일어나 알토란 같은 조선 선비 천 여명이 죽었고 그로부터 3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났지. 

얼마나 이 섬도 아닌 이장소를 사랑했으면 죽도선생이라는 자호를 짓고 발바닥이 닳도록 오고 가면서 불경스럽게 천하가 공공의 것이고 임금도 임금 같지 않으면 갈아치어야 한다고 말하며 신분차별이 없는 대동세삼을 만들자고 했던 세계 최초의 공화주의를 설파했던 그 사람. 

얼마나 이 섬 아닌 섬 죽도를 죽도록 사랑했으면 천하절경 이 죽도에서 생을 마감했을까. 

슬픔도 없이 반성도 없이 내리는 비. 비단강 금강이 아닌 황하가 되어 흐르는 금강 가에서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이라고 여기지 않고 가슴 에이는 그리움으로 바라보는 죽도. 

그리움이 깊으면 사링도 깊고 사랑도 심연처럼 깊으면 슬픔이 되어 흐르고 흘러 바다로 가는 것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깨달았지.  

그런데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장소에서 죽으면 여한이 없는 것이 아닐까?  

 /사진·글=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