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거와 가루라와 가릉빈가

만언각비 -고샅의 지저깨비에서 천화(遷化)를 읽는다

2021-07-03     이강록 기자

솔거는 그림을 잘 그렸다. 경주 황룡사에 그렸다는 ‘노송도’. 얼마나 잘 그렸길래 애꿎은 새들만 목숨을 잃게 했을까.

“솔거는 신라 사람이다. 출신이 한미하여 그 족계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일찍이 황룡사의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렸는데 나무의 동체와 껍질, 가지와 잎의 구부러진 모습 등을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 등의 새들이 이따금 보고 날아들다 부딪쳐서 떨어지곤 했다. 세월이 오래돼 색이 어두워지자 절의 화승이 단청으로 고쳐 그렸는데 까마귀와 참새 등의 새들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또한 경주의 분황사 관음보살상과 진주 단속사의 유마상도 모두 그의 필적인데 세상에서는 신화(神畵)라고 전해진다” (「삼국사기」)

이 노송도는 흔적조차 사라지고 「삼국사기」 「동사유고」 「지봉유설」 등에 솔거에 대한 전설만 아련하게 전해 온다.

솔거 때문에 죽은 까마귀, 참새

신(神)이 그린 그림으로까지 떠받들어진 타고난 화가 솔거. 솔거는 그렸다 하면 ‘사물마다 신령한 기운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그런즉 덧칠한 스님은 그만 솔거의 ‘신령한 기운’을 없애버린 셈이었다. 그래서 새들은 더이상 날아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솔거가 아니었다면 애먼 까마귀, 솔개, 참새 등은 죽지 않았을 텐데.

며칠 전 한 지인(대학 명예교수)에게서 SNS 한 통이 날아왔다. 사진과 함께 온 내용은 이랬다.

           고샅길에 뒹구는 지저깨비.

“동네 고샅 길바닥에서 나뭇조각을 봤는데 마치 천화(遷化)중인듯 싶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범천(梵天)을 나는 상상 속의 새가 떠올랐습니다. 가루다였던가, 어느 항공사 이름에 있는. 피아골 연곡사 부도에 갇혔던 가루다가 훨훨 나는듯 싶었습니다.”

이분은 한낱 길바닥에 뒹구는 지저깨비에서 가루라(Garuda)를 본 것이다. 아다시피 그건 인도네시아 항공사 이름이기도 했다. 물론 그 새는 피아골에 있는 연곡사 동(東) 부도에도 새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의 절 부도에도 새겨져 있고 절집 두공 등에도 조각돼 있다. 벽에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져 있다.

나뭇조각이 길에 떨어져 부스러져가는 것을 ‘천화’로 읽어내다니 그분의 ‘보는 눈’이 여간 깊은 게 아니다. 국어사전을 보니 ‘천화’란 ‘1) 변하여 바뀌다. 2) 고승이 죽다. 이 세상의 교화를 마치고 다른 세상으로 교화를 옮기다.’ 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가장 멋진 죽음이라면 어떤 모습일까. 죽음의 흔적이 없는 것, 즉 ‘천화(遷化)’라고 한다. 천이화멸(遷移化滅)의 준말로서, 사람의 죽음을 말한다. 옛 고승들은 흔적없는 죽음을 천화라 하여 가장 멋진 죽음으로 여겼다. 이승의 움직임을 끝내고 다른 세상의 움직임으로 옮긴다는 의미로 전설적인 고승들의 죽음 형태라고 한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겨 간다? 얼마나 드라이하며 형이상학적인가. 죽음을 이처럼 건조하게 감정을 철저히 증발시킨 채 무념무상의 흔들림 없는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역시나 그래서다. 일반인들과 수도의 깊이와 무게가 한껏 다르기 때문이리라.

천화(遷化)중인 지저깨비에서 읽어낸 가루라(Garuda)

법정스님은 생전에 이 천화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무꾼도 안 다니는 길로 자기가 걸음을 옮길 수 있는 데까지 들어간다고. 그리고 쓰러지는 거야. 그래도 기운이 남아 있으면 나무 긁어서 깔고, 나무 긁어서 덮고, 그리고 눕는 거지. 완전 기진맥진 상태에서 그냥 그대로 가는 거야. 그러면 시체도 못 찾는 거지. 산속이니까 누가 찾을 수 있겠어. 그것이 가장 멋진 죽음이지. 흔적 없는 죽음, 중들이 꿈꾸는.”

법정스님은 생전에 또 다른 형태의 천화를 꿈꾸었는데 이 역시 ‘완벽한 천화’라고 할 수 있다.

“제주로 가는 밤배를 타고 가다가 아무도 몰래 어둡고 깊은 바다 한가운데서 그대로 낙하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게 곧 천화야.”

언젠가 법정 스님이 제주도에 한동안 가 있던 적이 있는데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주변 사람들이 혹시 스님이 그리하실까 싶어 얼른 가서 모셔왔다고 한다. 아마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면 스님께서 그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말년에 폐암을 앓았던 스님은 잠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는데 그때를 담은 사진을 보면 스님의 표정이 몹시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평소 ‘천화’를 꿈꾸었던 스님으로서는 병석에서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몹시도 부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연곡사 가릉빈가

가루라(迦樓羅)는 범어 Garuda의 음사로 금시조(金翅鳥)라고 부른다. 새의 머리 형상을 하거나 사람의 모습에 새의 부리 형태 입을 가진 형상이다. 인도 신화에 나오는 상상의 큰 새로 매우 사납고 용을 잡아먹고 산다고 한다. 양 날개를 펴면 336만리나 되고 날개는 금색이다. 대승경전에서는 천룡인부중의 하나이고, 밀교에서는 범천, 대자재천이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이 새의 모습을 빌어 나타났다고 한다. 축생도에 들어가 보시를 행한 공덕으로 모리에 여의주를 갖게 됐다고 한다.

익산 숭림사 보광전 내부의 포작 위에 있는 가루라와 판다라 용왕의 조각이 유명하다. 부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백제 금동대향로(1993년 부여 능산리사지 출토)의 정상부에 위치한 새도 금시조로 본다.(금시조의 목에는 여의주가 있다)

가릉빈가(迦陵頻伽)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왕사성 기원정사에서 사리불, 마하가섭 등 제자들과 대중들에게 설한 아미타경에 처음 등장한다.

부처님이 아미타 극락정토의 모습은 설하되, 그 곳에는 흰 고니와 공작과 앵무와 사리조(舍利鳥)와 가릉빈가와 공명조(共命鳥), 한 몸뚱이에 두 개의 머리가 달린 새와 같은 여러 새들이 밤낮으로 여러 때에 아름답고 온화한 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 새들은 모두 아미타불이 법음을 널리 펴기 위해 화현(化現)한 것이라 했다.

또한 그 국토의 중생들이 가릉빈가의 소리를 듣고 나서 모두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스님들을 생각한다고도 했다.

아름다운 가릉빈가 마음에 품는 이는 더 아름답다

《묘법연화경》에서는 부처님의 음성을 가릉빈가 음성에 비유하여 말했고, 후세 사람들은 가릉빈가를 미화하여 선조(仙鳥)·호성조(好聲鳥)·묘음조(妙音鳥)·미음조(美音鳥)·옥조(玉鳥)라고 불렀다. 다소 장황하지만 예쁜 새를 가리키는 이름들이다. 주로 소리가 예쁘다는 뜻이겠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 사람들은 가릉빈가를 음악신 또는 음악의 창시자로 믿고 있다. 이것은 인도 음악의 기원 전설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인도의 고대 전설에 따르면, 설산(雪山) 히말라야에 신기한 새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늘 무시카(Musikar)라고 불리는 악기를 연주하는데, 일곱 개 구멍마다 각기 다른 소리가 나고, 그 소리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랐다. 소리의 높낮이와 곡조의 조화가 미묘하여 환희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용주사 신중도 가루라.

천 년을 산다고 하는 가릉빈가는 수명을 다해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불을 피워 놓고 그 주위를 돌면서 각종 악곡을 연주하며 열락의 춤을 추다가 불 속에 뛰어들어 타 죽는다. 그러나 곧 따뜻한 재에서 한 개의 알이 생겨나 부화하여 과거의 환상적 생활을 계속하다가 또 불 속에 뛰어들어 타 죽는다. 이렇게 하면서 생사의 순환을 계속한다.

가릉빈가는 아름답다. 수도자가 목숨마저 내려놓을 때 진정한 깨달음을 얻듯이, 미성(美聲)은 소리의 떨림마저 거부할 때 또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공명(共鳴)에 장애란 없다. 그저 함께 느껴야 할 감성만 있을 따름이다. 감성이 없으면 공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감성〔상상력〕이 없으면 기쁨도 깨달음도 없다. 

위대한 가르침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깨우침을 얻는 과정에서 빛을 발한다. 가릉빈가는 본디 아름답다. 그러나 그걸 마음에 품어내는 이는 더 아름답다. 이것이 가릉빈가를 키운 붓다의 뜻이겠다. 또 그 새를 마음에 키운 자의 깨우침 아니겠는가. 감성인들 어떠며 오성인들 또 어떠랴.

고구려 평안북도 연변 서운사의 가릉빈가는 선연히 아름답다. 덕흥리 고분의 가릉빈가는 위엄있다.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 가릉빈가는 부드럽고 우아하다.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의 가릉빈가는 따사롭고 온화하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모탑 가릉빈가는 은은하고 그윽하다. 불국사 석가탑 상륜부 가릉빈가는 소박하다. 황해도 평산 출토 동종 가릉빈가는 어쩐지 무뚝뚝하고 무딘 듯한 인상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녁에, 김광섭)

연곡사 동부도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가? 모든 사람들이 끊임없이 성찰해보아야 할 영원한 숙제 아니던가.

이 숙제를 이산(怡山) 김광섭은 별과 나로 대응시켜 풀어보고자 했다. 인간은 땅위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인 까닭이다.

그것이 한국인의 가슴속에 그렇게도 오래오래 남아있는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마지막 그 시구이다. 그 시구가 화가와 만나면 한 폭의 그림이 되고, 극작가와 만나면 한편의 드라마가, 그리고 춤추는 무희와 만나면 노래와 춤이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만나서는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의 만남이 된다. 저렇게 많은 별 중의 하나와 마주 보듯이 우리는 지상의 별 하나와 만난다. 누가 먼저이고 누가 나중인지도 모르는 운명의 만남을….

이산은 인간의 절대고독감을 강조하면서 인간 존재의 숙명을 노래했다. 특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구절은 불교적 인연관과 윤회사상을 깨닫게 만든다. 여기에서 시인은 갈수록 물신화돼가는 각박한 인간사회라 하더라도 살아갈 희망과 가치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여운을 남겼다.

그래서일까. 서양화가 김환기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화제(畵題)로 1970년 대작을 그렸다. 또 이 시에 곡을 붙인 대중가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만들어져 애창되기도 했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이강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