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날의 그림일기

이화구의 '생각 줍기'

2021-06-20     이화구 객원기자

지난주 수요일 코로나 백신주사를 맞고 열흘이 지나 오늘은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에 인근 와룡산에 있는 원각사를 다녀왔다. 내가 살고 있는 구로구는 평지라 산다운 높고 험한 산이 없어 유명한 사찰 하나 없는 곳이다.

와룡산도 말이 산이지 해발 100m 수준의 낮은 산으로 산자락에 원각사라는 꽤 오래된 사찰이 있으나 허가를 받지 못해서 그런지 아직도 대웅전에 단청을 하지 못해 사찰 같은 분위를 풍기지 않는 절이다. 

와룡산 입구에는 조성을 잘 해놓은 주말농장이 있는데 계절이 여름으로 들어서는 문턱이라 그런지 온통 연초록 초록세상이었다. 특히 초여름 따가운 햇살을 받고 피어난 접시꽃은 둥근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지나는 나그네를 반기고 있었다.

전설이 없는 꽃은 없는 것 같다. 접시꽃도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어느 교사가 쓴 시집이란 것이 알려지면서 초유의 판매기록을 세우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사랑과 이별의 슬픔을 절실하게 표현하여 인구에 널리 회자되었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많은 관객을 끌어 모으기도 하였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지만 꽃대가 유난히 긴 접시꽃은 다른 꽃들에 비해 비바람에 더 흔들리며 피었을 거 같아 애처롭지만 뜨거운 햇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자연에 피는 모든 꽃들은 비바람에 흔들리지만 제자리로 돌아와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우며 때론 비에 젖기도 하지만 꽃향기를 잃지는 않는다.

또한 꽃대가 길어 꽃들이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며 꽃을 피운 접시꽃을 보고 조선시대 벼슬도 아래 단계부터 위로 차례로 차근차근 올라 훌륭한 관리가 되라는 의미에서 과거에 급제한 유생들에게 임금이 하사하던 ‘어사화’라는 꽃을 접시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 부모님들이 집안 마당에 자식들의 성공을 바라며 접시꽃을 많이 심었다고 한다. 

나야 이제 출세할 나이도 지났고 출세할 일도 없지만 세상사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고 잠시 일상을 떠나 스트레스를 던져버리자고 초여름의 문턱을 넘어 연초록 숲의 나라로 떠난 산책길이라 그런지 참 좋았던 것 같다. 

/이화구(금융인ㆍCPA 국제공인회계사ㆍ임실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