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더불어 벗할까
백승종의 '역사칼럼'
1.
<<논어>>에서는 친구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지요. 누구나 아는 "지기(知己)"라는 표현도 있고,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기쁘지 아니한가(有朋...)"라는 구절도 있으니까요.
인생사는 참으로 다사다난합니다. 혼자서는 이 험로를 뚫고 나갈 수가 없어요.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할 친구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문제는 누구를 벗으로 삼을까 하는 것이지요. 조선 후기의 큰 스승 성호 이익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그분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실학자라서요. 어느 날 저는 성호가 어느 제자와 주고 받은 편지에서 마음에 드는 한 대목을 발견하고는 무릎을 쳤습니다.
2.
제자가 보낸 질문의 요지를 성호는 이렇게 소개합니다.
" 〈학이(學而)〉 제8장에 대해하여 그대는 묻기를, 《질서(疾書, 성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자기보다 나으면 가르침을 받기에 겨를이 없을 터이므로 그분을 벗으로 삼을 수 없다. 자기보다 못하다면 어떠한가. 내가 그이를 부지런히 가르쳐야 할 테니까 굳이 그를 벗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재주와 덕행이 나와 서로 같은 사람 밖에는 누구도 벗으로 사귈 수 없다는 뜻이 될 것 같습니다. 이 말씀에 문제가 없다고 보시는지요?"
3.
성호의 대답이 궁금합니다. 친구의 폭을 너무 좁게 잡지 않았는가를 묻는 제자의 질문에, 그는 과연 무어라고 대답할까요.
"내 책인 《질서》의 초본(草本)을 잘 살펴보면 한 조항이 더 있네.
다른 사람이 전체적으로는 나만 못해보이더라도, 만약에 나보다 나은 부분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내가 그를 벗으로 사귀어야 한다. 이러하므로 벗을 사귐에 있어 어찌 한계가 있겠는가.
다만 스스로 경고하노라. 말만 번지르하게 하는 이는 사절한다. 비위만 맞추기에 급급한 사람도 사절한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나보다 못한 이가 분명하므로 내가 배척하노라.
나는 그렇게 말하였다네. 그대는 다시 한 번 내 말의 뜻을 천천히 새겨보시면 어떠할지." (이익, <<성호전집>>, 제16권, <목사무에게 《논어질서》에 관하여 답함(答睦士懋 論語疾書問目)>)
3.
참, 성호 이익과 우정의 문제를 토론한 이는 사무(士懋)라는 자를 가진 목시경이었습니다. 영조 13년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학문이 출중한 선비였습니다.
성호의 가르침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두 가지 조건을 붙기는 했습니다만, 대개는 거기에 저촉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성호의 본지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나보다 뛰어난 점이 있을 터이니, 그를 친구로 사귀며 장점을 배우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한 세상을 함께 사는 우리는 모두 친구입니다. 누구나 부족한 부분은 있을 테지만 그것을 탓하기보다는, 상대방이 나보다 뛰어난 점을 발견하는 데 힘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서로 서로가 일깨워 주는 빛의 세상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호 이익에 관한 제 생각은 <조선의 아버지들>(사우, 2016; 세종 우수교양도서)과 <선비와 함께 춤을>(사우, 2018) 그리고 <중용, 조선을 바꾼 한권의 책>(사우, 2019; 세종 우수교양도서)에도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