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형 ‘소 브루셀라병’, 왜 백신 접종 못하게 하나?
[기획 연재] 소 브루셀라 백신의 감춰진 진실(10)
200여 마리 한우 살처분...농가들 쑥대밭 ‘처참’
"브루셀라병에 감염된 한우 농가에서는 음성이든 양성이든 6개월 미만인 소들은 권고 도태하도록 규정이 돼 있어요. 그런 어린 소들을 도태(안락사)시키는 장면을 보면 주인 마음은 어떻겠어요?...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한우 농가에 브루셀라병이 감염돼 권고 처분된 어린 소들의 사진이 충격적이다. “우려했던 소 브루셀라병이 우리 농장에도 찾아왔다”며 지난 4월 26일 본보에 억울한 사연을 제보했던 경남 밀양의 한우 농가 주인 장 모씨는 브루셀라병 확산으로 마을 주변 농장에서 200여 마리의 한우가 살처분 돼 쑥대밭이 됐다고 14일 하소연했다.
특히 브루셀라병에 감염된 한우 농가에서 어린 소들이 집단으로 처분되는 처참한 장면의 사진들에서는 검게 타들어가는 농민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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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가축전염병인 소 브루셀라병이 전 지역으로 확산돼 농가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당국은 사후 약방문식의 땜질 처방에 급급하고 있어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농가들은 정부 차원의 브루셀라병 예방 백신 접종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지자체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 당국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최근 브루셀라병에 감염돼 농가에서 많은 소들이 살처분 처리된 밀양을 비롯해 전남 무안 등의 축산 밀집지역에는 브루셀라병이 계속 확산돼 농가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브루셀라병 확산 피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예방 대책은?
전염성이 강한 소 브루셀라병으로 대부분 축산 주변 농가들은 반복되는 피해를 입고 있지만 예방 대책은 막막한 실정이다.
최근 경남 밀양의 소 브루셀라병 감염률은 0.58%로 경남 평균 0.03%와 전국 평균 0.01%보다 높은 수준이어서 피해 농가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근본적인 방역을 위해 백신 접종 대책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보상 외엔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답답함과 불안감이 교차되고 있다"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밀양 외에도 전국 한우 농가들이 겪고 있는 같은 상황이다.
피해 농가 농민들은 "막상 피해 당사자가 되어 보니까 눈을 뜨고 소를 바라볼 수 없는 지경“이라며 ”오래전부터 백신을 접종했더라면 이런 피해를 보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감염되면 살처분 대상이 되며, 나머지 사육하고 있는 소들도 도축 대상이 되는 브루셀라병은 지난해 10월 말 기준 국내 105개 농가의 소 650여 마리가 감염돼 처분됐다.
처분에 따른 피해 농가에 대한 보상액은 시세의 80% 수준이지만 한번 피해를 입은 농가는 다시 소를 사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정부가 근절 의지를 갖고 예방 백신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밀양 외에도 최근에는 전북 장수와 전남 무안 등 일부지역에서 브루셀라병이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뚜렷한 근절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어 농가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우 농가들은 “브루셀라병이 발병하는 농가 대부분에 권고 도태를 하고 농장을 비우게 되는데 그럴 경우 농장을 정상화하기까지 10년도 넘게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땜질식의 처방 정책이 아니라 브루셀라병을 근절하기 위해 검사 대상을 확대하거나 발생 지역에 대한 백신 접종을 허용함으로써 정부 당국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소 브루셀라병 근본 예방 위한 백신 접종 허용해야"
그러나 이와 관련해 방역당국은 백신 접종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농수축산신문은 지난 5월 25일 ‘밀양·무안 일부 지역 소브루셀라병 여전…근절대책 절실’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 방역관계자는 ‘브루셀라 백신 접종과 관련해서는 세계동물보건기구(OIE) 등 국제적 기준에 따라 백신 접종을 할 상황은 아니다’고 못 박았다”고 밝혀 당국의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이와 관련해 농민신문은 5월 21일 ‘후진국형 소 브루셀라병 확산…근절 대책 세워야’란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가 소 브루셀라병 근절을 위해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기사에서 “브루셀라병은 소·염소·돼지 등에 발생하는 세균성 전염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소에 나타나며, 브루셀라병에 걸리면 소 암컷에 불임증과 임신 후반기 유산·사산, 수컷엔 고환염이 발생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후진국일수록 발생률이 높은데 국내에서도 아직까지 브루셀라병이 근절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기사는 “소 브루셀라병이 사라지기는커녕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 기미를 보이는 것은 우선 발생 농가들이 예방적 살처분에 미온적인 것이 주요인으로 지목된다”며 “2종 법정가축전염병인 브루셀라병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등 1종 법정가축전염병과 달리 예방적 살처분 대상이 아니라 양성 판정을 받은 개체만 살처분하고, 해당 개체와 동거하던 개체는 사육농가에 도축을 권고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후진국형 소 브루셀라병 확산, 근절 대책 왜 못 내놓나?
그러면서 “이때 살처분 보상금은 1회 발견 때엔 시세의 80%, 5년 내 2회 발생 땐 60%, 3회 발생 때 30% 수준이고, 4회 발생 때는 지급되지 않는다”는 기사는 “권고 도축 때는 시세와의 차액만 보전하는데 수차례 개량을 거친 암소도 시세 산정 때 일반 고기소로 취급하고 있으며, 고병원성 AI와 달리 인접농장의 예방조치에 대해서는 보상금이 없다”고 덧붙여 보도했다.
기사는 대안책으로 “브루셀라병 발생을 막기 위한 백신 도입이 필요하다”며 “전문가들 가운데도 양성 개체 색출·살처분과 더불어 백신 접종 등 추가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백병걸 전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초대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장)는 “브루셀라병은 주로 후진국에서 발생하는 병이지만 뉴질랜드 등 축산 선진국에서는 효과적인 백신 정책으로 근절에 성공했다”면서 “브루셀라병은 발생률이 낮다고 위험성까지 작은 것은 아닌 만큼 이제라도 예방 백신 정책을 도입해 브루셀라병의 뿌리를 뽑지 않으면 계속 발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