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요동치는 호남 민심

이슈 분석

2021-06-14     김명성 논설위원

우리나라 헌정사상 첫 30대 0선.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선출은 정치권에 심상치 않은 변화를 예고한다. 여기에 최고위원도 초선, 40대, 여성의원들의 약진이 확 눈에 띈다. 큰 변화다.

그 서막은 한 달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1위 득표자가 김용민 의원이었다는 점에서 이미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수석최고위원이 된 김용민 의원도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 가운데 가장 젊은 40대 나이에 초선이다.

특정 인물이나 계파, 선수(選數)라는 관점에서 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 변화다. 어찌됐든 이런 흐름 속에 야권은 내년 정권교체에 자신감을 더 얻게 됐다. 양 당의 진용을 갖추기 위한 축제는 끝났다. 이제 내년 3월까지 이어지는 대선 레이스다. 누가 민심을 사로잡느냐 경쟁이 더 흥미로워진 이유다.

호남의 높은 정치의식...요동치는 표심

호남의 표심도 요동치고 있다. 흔히 국민의힘 불모지라고 깎아서 말하는 호남지역 당 지지율은 17.2%를 기록했다(한겨레 6월 7일자). 국민의힘 호남 지지율은 소속 의원들의 5·18 광주 민주화운동 41주년 방문효과도 있지만 호남을 꾸준히 공들인 결과다.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과 같은 진정성 있는 정치인들의 정성이 빚어낸 결실이다.

지난 5월 3주차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21.9%를 기록한 바 있다. 호남 표심이 흔들리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현상이다. 높은 정치의식 때문이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호남 전체 의석을 대부분 석권했던 민생당이 더불어민주당에 참패를 당했다. 지역 기반이 견고했던 정당이 지금은 현역의원이 없는 정당으로 사실상 궤멸된 상태다.

이는 지역 기반에 연연해하지 않는 호남지역 정치의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호남에 공을 들이고 진정성을 보이니 한 자릿수에 머무른 지지율이 두 자릿수로, 심지어 20%대까지 넘나들고 있다. 지역구도라는 도식을 탈각시킨,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야권의 유력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호남지역 민심도 요동치고 있다. 오마이뉴스-리얼미터 조사결과(6월 2주 정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윤석열 전 총장은 18.5%를 기록하고 있다. 1위인 이재명 지사 31.8%와 차이를 보이지만 이낙연(21.0%) ‧ 정세균(4.6%) 전 총리와 비교해서 오차 범위내 혼전이거나 크게 앞서고 있다. 역시 호남지역의 수준높은 정치의식을 반증한다. 즉 두 전직 총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호남연고의 잇점이 선호도 조사에서 작용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공수처 수사 착수, 위기 아닌 기회다

공수처(자료사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전 총장이 고발된 사건에 사건번호를 매기고 수사에 들어간 것을 놓고 말들이 많다. 윤 전 총장측은 공수처 고발 건에 대해 특별히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 시끄럽게 구는 쪽은 언론이다.

갖은 추측으로 수사 배경을 따지고 있다. 언론의 무게 추는 ‘해야 한다’는 쪽 보다는 ‘왜 해야만 하는가’로 기우는 것 같다. 언론이 너무 나서면서 본질이 가려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미 언론도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이름이 상징하듯 급격히 권위를 상실해가고 있다. 언론 개혁의 초점이 사주가 아닌 기자의 독립성에 모아지는 이유다. 언론의 혼(魂)인 저널리즘은 빠져나가고 언론인이 사주의 고용인일 뿐이라는 비판은 오래된 과거사다. 윤 전 총장이 이미 권위가 실추된 언론에 기대서는 안되는 이유다.

공수처가 입건한 사안은 윤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옵티머스 사건에 대한 부실수사로 직권남용 혐의, 또 검찰총장 시절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을 받는 검사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방해했다는 혐의다. 윤 전 총장측도 충분히 예상했을 법한 사안들이다. 여러 달 전에 고발된 사건들이고 특히 옵티머스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많다. 더욱이 국가기관에서 문제를 제기했지만 검찰 수사로 이어지지 않아 국민적인 궁금증이 증폭된 사안이 된지 오래다.

두 사건을 짤막하게 요약해보자. 서울중앙지검은 2018년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전파진흥원)으로부터 옵티머스 펀드에 사기성이 농후하다는 수사 의뢰서를 받았다. 그러나 무혐의 처분했다. 전파진흥원이 피해를 면했던 금액만해도 무려 750억 원에 달한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전 총장이었다. 이 사건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서울중앙지검이 2018년 전파진흥원의 수사 의뢰를 받고도 무혐의 처분한 데 대해 감찰을 진행하라’고 지시한 사안이기도 하다. 실제로 법무부가 옵티머스의 전 대표를 상대로 미국 당국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요청한 상태인 사실까지 국정감사장에서 밝혀졌다. 그리고 옵티머스 수사 의뢰 당시 정관계의 유력인사들 이름까지 어른거렸다.

한명숙 전 총리 모해 위증교사 의혹도 검찰에 진정서가 접수됐지만 수사와 기소에 이르지 못했다. 검찰조직내 임 모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이 해당 진정 사건을 조사하고 수사권을 얻기 위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요청했으나 뚜렷한 이유없이 거부당한 사건이다. 이 두 사안의 핵심은 수사를 하지 않았거나 방해했느냐,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는 사건들이었느냐 여부다.

감히 언론이 공수처 수사에 끼어들어 가타부타할 성격이 아니다. 그리고 정치권도 편들기는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너무나 중대하고 민감한 사안이다. 모두 윤 전 총장이 넘어야할 검증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

윤 전 총장에게는 혹독한 또 다른 계단이 놓여 있다. 부인과 장모가 관련된 사건이다. 장모의 사건은 피해자들의 절박한 호소가 이어지고 아예 입건조차 되지 않았었다. 검사들의 대표적인 기소독점 폐단으로 거론됐었다. 최근에야 뒤늦게 기소된 사건이다. 부인 사건은 누구든 의혹을 가질만하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에 수사 받던 업체들이 줄지어서 부인 회사에 특별한 협찬을 했다. 대가성 여부가 있었는지 따지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그 외에도 채널A 검언유착 사건에 개입했는지, 판사사찰 문건 작성에 개입했는지 의혹들을 씻고 가야한다. 최측근으로 불리는 한동훈의 휴대폰 논란도 훌훌 털고가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윤 전 총장은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이런 정도의 검증을 생각지 않을 윤 전 총장이 아닐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윤 전 총장의 행보는 철부지거나 오만이다. 공수처 수사가 위기가 아닌 기회라고 생각되는 것이 그렇다. 거듭 밝히거니와 언론이 나설 일이 결코 아니다. 언론은 검증해야 언론이지 감싸주려 한다면 그런 언론은 이미 언론이 아니다.

윤 전 총장은 당과 언론 뒤에 숨지말라

윤석열 전 검찰총장

국민의힘은 벌써부터 윤석열 죽이기, 신독재 플랜 운운하며 반발하고 있다. 제1야당의 유력주자이기에 제1야당에서 목소리를 높이는게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윤 전 총장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그저 당당하고 떳떳하게 해명하는 일뿐이다.

윤 전 총장의 재직기간에 우리 사회가 치른 비용이 너무 컸다. 특정인의 가족(조국)을 향한 고강도 수사, 그로인해 촉발된 검찰 개혁의 목소리, 그래서 첨예하게 맞서며 진행 중인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찰 기소권 제한 등은 단적인 사례다. 검찰 개혁에 관한 디테일은 현재 진행형이고 이대로라면 다음 정권까지 이어질 것이다. 물론 내년 3월 정권의 향방에 따라 검찰 개혁은 지속되거나 백지화 될 것이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서 검찰개혁이 과연 민생과 직결된 사안였는지도 판가름 날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이런 논란을 촉발시킨 당사자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다르다. 단순히 논란이 아닌 시대정신의 흐름으로 걸러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의 눈이 무섭다. 검찰의 수사와 판사의 재판이 갖는 권위마저도 예전과 같지 않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법률가들이 지켜내는 것은 기득권층의 이익과 기존 질서’(법률가들, 김두식 지음)라고 해석할 만큼 국민들이 성숙하다. 우리 사회가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더 나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지난 9일 우당 이회영 기념관 개관식에서 사실상 대선도전을 선언했다. 보수 신문 논설위원 출신의 공보담당도 내정했다. 호남은 윤 전 총장을 지켜보고 있다. 당당하고 떳떳한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의 재직기간을 기준으로 5년씩 나누어 시대를 분절해서 본다면, 대한민국의 향후 5년을 책임질 자리에 나설 사람으로서 당 뒤에 숨지 말아야한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자료사진)

호남 표심은 윤 전 총장의 검증 순간순간마다 요동칠 것이다. 지금부터 내년 3월까지의 대선 과정에서 호남의 표심이 명운을 결정할 수도 있다. 호남의 높은 정치의식은 우리나라 집단지성의 한 축을 형성한다. 그러기에 호남발(發) 순풍은 수도권으로 이어지고 전국적으로 빠른 확장성을 갖는다.

선거 때마다 정치권이 호남 민심을 잡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이 당 뒤에 숨어 검증을 회피한다면 거꾸로 호남발 역풍이 거세게 불 것이다. 집단지성이 실린 역풍의 무게는 걷잡을 수 없다. 역풍이 불면 자신이 검찰총장 재직기간에 쌓아둔 사회적 비용이 본인에게 채무로 돌아올 것이다. 일시에 몰리는 채무는 부도와 파산으로 이어진다. 호남발 순풍을 타느냐 역풍에 맞느냐는 오로지 윤 전 총장의 몫이다. 

/김명성(논설위원·전 KBS전주총국 보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