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조선총독 '전서', 완주 대아댐에도
[기획 특집] 미완의 친일 청산(23)
'미완의 친일청산' 완주군 두 번째 편으로 경천저수지 석판, 대아댐 사이토 총독 전서, 박기순 불망비를 차례로 소개한다.
일제 강점기 대규모 산미증식과 양곡 수탈을 위해 건설된 저수지와 댐 주변에 남아 있는 친일 잔재들이다.
완주 경천저수지 석판
완주군 화산면 성북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이다. 원래 완주군 운제리 옥포(玉包)에 해당하던 이 지역은 1933년 수리사업 개발에 따라 저수지가 되어 ‘경천저수지’로 불리게 되었다.
1934년 전라북도지사 고원훈(高元勳)이 저수지 수원 석판에 ‘옥포금성(玉浦金城)’을 새겨 이후 이 지역의 이름이 ‘옥포(玉浦)’가 되었다. 고원훈은 1932년 9월부터 1936년 5월까지 전라북도지사를 역임하였다.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완주 대아댐 사이토 총독 전서
완주 대아리저수지 사이토 총독 글씨는 1922년 대아댐 준공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가 쓴 글씨이다.
‘만불일 작불갈’(滿不溢 酌不竭)‘이라는 여섯 글자가 전서체로 각각 1m에 달하는 크기로 새겨 져있다. 이 뜻은 ‘가득차도 넘치지 않으며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다’로 구댐에 붙어 있던 것을 신댐이 완공될 때 떼어내 현재 위치로 옮겨 붙인 것이다.
현재 위치로 옮기기 위해 글씨를 떼어내면서 실수로 ’갈‘ 자가 떨어져 깨어졌는데 다시 이어져 붙이면서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
완주 박기순 불망비
완주군 용진면 봉서사(鳳棲寺) 인근에 위치한 박기순(朴基順, 1857~1935년) 불망비로 바위에 각인한 형태이다. 전면에는 ‘부경 박공기순 개선 불망비(副卿 朴公基順 改繕 不忘碑)’, 후면에는 ‘박기순(朴基順)’이 새겨져 있다.
박기순은 1906년 7월 시종원(侍從院) 부경(副卿)에 임명되었다. 전면에 새겨진 정보에 따르면 이 불망비는 다이쇼 5년(1916년) 7월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 박기순은 전주와 익산 일대에 광범위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각종 개발 과정에서 박기순과 그의 아들 박영철은 적극 앞장섰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일제 강점기 전북지역 개발이 조선인 자본가 박기순의 토지 자본 축적과 밀접하게 연관돼 이루어졌다. 이를 기반으로 박기순은 지역 유력자로 성장하게 됐다.
전북에서 성장한 박기순ㆍ박영철 일가의 자본축적 유형은 일제의 총독부에 밀착된 권력형, 지역형 자본 축적 구조가 복합적으로 연관됐다. 특히 삼남은행의 최대 주주와 최고 경영자를 맡았던 박기순과 그의 장남 박영철을 비롯하여 그 일족들이 대주주가 되어 경영권을 장악하고 세습적 가족 경영체제를 이었다.
※참고 자료 :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2020.12)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