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경찰제 출발부터 ‘삐걱’, 위원장 자격 논란...무엇이 문제?
[뉴스 큐레이션] 2021년 6월 4일
전국 각 지역에서 일제히 실시되는 자치경찰제가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7월 1일부터 전면 시행되는 자치경찰제가 지방자치제 시행 30년 만에 이룬 지방분권의 취지에 맞는 성과로 반기는 시각도 있지만 벌써부터 ‘무늬만 자치경찰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출발부터 삐걱거리는 자치경찰제, 무엇이 문제이고 대안은 없는지, 각 지역별 자치경찰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 구성에서부터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과 과제 등을 진단해 보았다.
6월 1일부터 자치경찰제가 시범 운영된 초대 자치경찰위원회 구성 인원의 면면이 지역별로 공개되고 있다.
특히 위원장이 누구냐에 관심이 비등하다. 초대 위원장이 누구냐에 따라 자치경찰이 인사권자인 광역단체장으로부터 독립된 중립성을 유지하며 경찰과 주민들 간의 거리가 가까워져 치안 유지에 효율적인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들의 여론을 수렴해 자치경찰위원회를 구성하는 지역이 있으나 일부 지역은 도지사나 시장의 선거를 도운 측근 인물들이 위원 또는 위원장으로 포진돼 벌써부터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자치경찰제 본질 훼손, 전북도 자치경찰위원회 구성 문제 규탄” 왜?
전북지역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전북도는 향후 3년 간 도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경찰 사무를 지휘·감독하는 자치경찰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7명의 위원들 중 도지사 추천 1명과 전북도의회 추천 2명, 전북도교육감 추천 1명, 국가경찰위원회 추천 1명, 위원추천위원회 추천 2명으로 구성을 마무리했다.
또한 전북도는 자치경찰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전북도 행정·정무부지사를 지내고 새만금위원회 민간위원장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맡고 있는 이형규 씨를 내정했다.
그러나 초대 전북자치경찰위원회 구성이 시민들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는 비판이 시민사회단체들에서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전북여성단체연합은 지난달 27일 성명을 내고 “현재 추천된 자치경찰위원 7명에 대한 검증 절차를 거쳐 임명 계획을 가지고 있는 전라북도는 지방자치경찰위원회에 인권 전문가를 포함한 여성위원을 확대하여 위원 구성에서의 성 평등성을 확보하고 여성의 사안 및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여성단체연합은 “여성과 인권 분야에서 전문적이고 젠더 감수성을 가진 조례제정이 요구되는 상황인 만큼 여성 폭력을 상담하는 현장 단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전달했다”며 “하지만 전북도는 이렇다 할 답변도 없이 일방적으로 조례를 통과시켰고 추천된 자치경찰 위원 7명 중 1명만이 여성으로 구성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성단체연합은 “이는 전북지역 여성단체 및 여성 폭력 관련 기관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으로 전북도가 젠더적 요구와 민주적인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성명에서 비난했다.
이어 (사)인권누리(대표 송년홍 신부)도 31일 성명을 내고 “전북자치경찰위원회의 추천과 구성은 자치경찰제 본래의 목적과 취지를 무시한 행정조직으로 강한 유감과 함께 최소한의 법적 조건을 준수하지 못한 전라북도와 전라북도의회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위원회 구성, 인권·여성 소외...경찰청법 위반”
인권누리는 “먼저 위원회는 경찰법을 명백히 위반하고 위원을 구성했다”며 “경찰법 제19조는 ‘시ㆍ도 자치경찰위원회의 구성에서 총 7명 중 특정 성(性)이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아니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위원 중 1명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임명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위원회는 남성 6명, 여성 1명으로 구성했다”고 지적했다.
인권누리는 또한 “구성한 위원 중에는 인권전문가가 전혀 없어 자치경찰제 위원 구성을 명시한 경찰법 제19조를 무시했다”며 “자치경찰위원회 구성에 대한 법률의 취지인 '도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주민자치, 지방분권, 도민의 인권보호를 근간으로 하여 자치경찰의 인권 전문성과 민주적 통제 확보‘와 도민들의 실질적 참여가 보장되지 않은 위원회 구성”이라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초대 자치경찰위원장에 대한 자격과 전문성·중립성이 도마에 올랐다.
인권누리는 성명에서 “전북도가 자치경찰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한 이형규 전주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전북도 행정·정무부지사와 행정공제회 이사장, 새만금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한 퇴직 공무원 출신”이라며 “자치경찰위원회는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 도지사로부터 독립해 인사, 예산, 장비 등에 대한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운영을 지원하며 중요 사건 사고 및 현안을 점검하는 등 자치경찰 사무를 지휘,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임을 강조했다.
“도지사 보좌 인물 위원장 내정, 중립·독립성 의문”
따라서 “독립적인 운영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성명은 “전북도는 도지사가 위원장으로 지사를 보좌한 퇴직 공무원을 내정한 것은 자지경찰제 본질을 무력화시키는 행태이며 자치경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적인 운영 및 역할을 훼손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인권누리는 “현행 자치경찰제도는 조직과 관련하여 도지사의 인사권과 자치경찰 전담인력의 제한, 도경찰청장 임용 시 도지사와 협의하는 등 실질적인 지휘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안도 없는 무늬만 자치경찰제인 내용으로 가득하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자치경찰의 기본 취지인 주민의 참여와 민주적 통제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전혀 없다”는 인원누리의 지적이 뼈아프다. 인권누리는 사회적 약자와 시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2013년 3월 창립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이처럼 경찰은 국가경찰, 수사경찰, 자치경찰로 분화되어 이제부터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본래의 자치경찰제가 정착되기에는 아직도 많은 난관이 놓여 있다.
특히 지방분권, 주민자치 차원에서 바람직한 자치경찰제는 정치적 중립성과 민주성 통제를 근거로 모든 경찰 사무를 자치화하고 국가경찰 사무는 별도로 한정하여 운영해야 함에도 시작부터 불협화음이 새나오고 있어 우려된다.
무엇보다 도지사나 광역시장 소속 하에 직무상 독립기관으로서 자치경찰을 두어 위원회가 자치경찰을 관리하고, 도나 시 경찰청장이 집행을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함에도 측근 인사가 위원장을 맡거나 공무원 출신이라는 점에서 독립성에 대한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광주·울산시 시민운동가 위원장으로 내정, 시민단체들 반겨...다른 지역과 대조
이 때문에 현재의 자치경찰제의 시범 운영과 전면 실시는 시민들이 요구하는 민주적 경찰자치의 실현과 거대 경찰권으로부터의 인권 보호라는 자치경찰제의 도입 취지를 실현하기 어려운 제도적 한계와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히려 자치경찰 사무의 지휘·감독이라는 중대한 사무를 수행해야 할 위원회가 실질적으로 행정과 경찰의 주민 밀착형 통제 수단이 되지 않도록 시민들의 참여와 민주적 절차가 별도로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몇몇 지역들은 도지사나 광역시장 측근 또는 후원회장을 역임한 인사를 자치경찰위원장으로 임명하여 강한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전북도는 도지사를 보좌한 행정 및 정무부지사 출신을 위원장으로 내정한 것은 자치경찰제의 취지를 무시한 것이라는 따가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광주시와 울산시처럼 시민운동가를 위원장으로 내정한 곳도 있다. 울산지역 시민들은 이에 대해 무척 고무된 분위기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전국 자치경찰위원장에 시민단체 인사가 임명된 곳은 울산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시민사회 출신 인사가 위원장이 됨으로써 주민치안·자치분권 측면에서 자치경찰제 취지에 보다 충실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경찰 중심이 아닌 주민치안·자치분권 중심의 사례를 만들어 안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며 "울산자치경찰위원회가 이런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충남도, 시작부터 위원장 사표...시작부터 ‘눈총’
그런가하면 충남도에서는 초대 자치경찰위원장으로 임명된 대학 교수 출신의 위원장이 파출소에서 폭언을 하는 등 소란을 피워 공무를 방해한 혐의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지난달 31일 사표가 수리돼 본격적인 자체경찰제가 출범도 하기 전에 홍역을 치르는 곳도 있다.
3년 임기, 정무직 1급의 차관급인 자치경찰위원장은 앞으로 각 지역의 생활 안전, 여성·청소년·아동, 교통 등 주민생활과 밀접한 자치경찰 사무를 지휘·감독하게 된다.
현재까지 파악된 전국의 각 자치경찰위원장의 구성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전남 : 조만형 위원장(동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출신)
광주 : 김태봉 위원장(광주YMCA 이사장, 광주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남대 법학대학원 교수 출신)
대전 : 강영욱 위원장(대전일보 대표, 한밭대학교 공공행정학과 초빙교수 출신)
세종 : 김상봉 위원장(고려대 정부행정학부 교수 출신)
충북 : 남기헌 위원장(충청대 교수 출신)
인천 : 이병록 위원장(안전행정부 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 출신)
부산 : 정용환 위원장(경찰서장 출신)
울산 : 김태근 위원장(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 출신)
대구 : 최철영 위원장(대구시민센터 이사장, 대구대 법학부 교수 출신)
경북 : 이순동 위원장(전 대구지법 판사, 영남대 법학전문대학권 교수 출신)
경남 : 김현태 위원장(창원대 총장 출신)
강원 : 송승철 위원장(강원도립대 총장 출신)
제주 : 김용구 위원장(제주도 기획조정실장 출신)
시민 인권보호 위해 제대로 된 자치경찰제 정착하도록 감시·견제 필요
이처럼 다양한 경력의 소지자들이 초대 자치경찰의 수장을 맡았다. 그러나 자치경찰위원장이 자치경찰제의 취지에 맞게, 시민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시민 권익을 보호하는데 적극 앞장설 수 있는 인물은 과연 얼마나 될지 미지수다.
따라서 앞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누구보다 시민들이 눈을 더욱 크게 뜨고 감시하며 올바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경찰은 일본 제국주의와 군사독재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정치 권력의 강화와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전락한 아픈 과거가 있다. 이제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범죄를 예방하며, 시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제대로 된 자치경찰제가 정착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경찰 서비스를 제공하여 시민이 선임한 자치경찰, 시민이 참여 운영하는 민주적 생활 경찰로 자리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단체와 지역언론의 감시, 견제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