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장님께!
특별 기고
“이제라도 지방자치시대에 걸맞게 순리대로 인사체계를 갖추십시오. 가장 후진적이고 권위주의적 KBS의 인사 관행을 즉시 끊어내십시오. 방송의 공정성 논란은 단 한 번도 지역국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역국은 여전히 건강합니다. 지역국 인사 관행의 혁신으로 KBS의 새 지평을 열어가길 바랍니다.”
공영방송 KBS 지역총국 보도국과 본사 등에서 30여년을 근무하다 퇴직한 전직 방송인이 보내온 글이다. KBS 전주방송총국에서 보도국 기자로 출발해 보도국장과 방송문화사업국장 등을 거쳐 지난해 정년 퇴임한 김명성 전 국장은 <전북의소리>에 보내온 기고의 글에서 “지방분권을 상징하는 지방의회 출범 30년, 지방자치단체장 직선 26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의 대표적 공영방송이 방송분권을 향한 발걸음도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낙하산 인사를 통한 지역국 장악과 순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랜 세월 근무했던 방송사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와 조언, KBS 지역국의 발전 방안 등을 제시한 전직 KBS 국장이 보내온 ‘KBS 사장님께!’란 제목의 글 전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KBS 경영 쇄신, 인사에 해답이 있습니다, 지역국 책임자는 지역국 구성원에게..."
저는 지난해 KBS 전주방송총국에서 퇴직한 김명성입니다.
각설하고, 지역국 회생 비법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아는 해법입니다. 다만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무소신이 해법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지역국 책임자 인사, 지역국 자체 발탁하십시오. 그러면 사장께서 걱정하시는 경영난, 적어도 지역국 경영난은 모두 해결됩니다. 확실합니다. 그 해법은 KBS 조직원이라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사장이 본사 직원들의 눈치 때문에 차마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관행에 묻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왜 지역국 직원들의 눈치는 안봅니까? 왜 관행을 깰 결단은 내리지 못합니까?
"낙하산 인사, 이제 그만 합시다"
언론개혁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공영언론 사장의 이사 선임에 대한 국민 참여 보장과 징벌적 손해 배상제 법안 마련, 사주가 아닌 언론인들을 위한 편집권 독립, 지역 언론을 위한 공적 재원 등이 그것입니다. 4가지로 압축되는 언론개혁 현안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숙원입니다.
그러나 정작 KBS 내부적으로도 불편한 숙제가 있습니다. 누구도 꺼내지 않으려 합니다. 본사는 기득권 때문에, 지역국은 본사-지역국 간에 순치된 식민적 관행 때문입니다. 바로 지역국 책임자의 낙하산 인사입니다. 법적 근거는 없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창립 이래 지금껏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의도 본사의 주요 보직은 부지기수입니다. 어떤 직종이라도 사장의 의지만 있다면 그 많은 주요 보직에 배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지역총국과 지역국장 자리는 낙하산을 서로 타려는 꽃보직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역국은 제작비 버느라 전쟁 중인데, 정작 지역총국-지역국 책임자는 1~2년 잠시 쉬러 낙하산 타고 내려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경영난으로 프로그램 질이 갈수록 떨어지고 지역국 프로그램의 질은 말할 나위없이 나락에 빠져드는데 지역국 경영의 최선봉장이 되어야할 지역국 책임자 보직이 본사 직원들의 ‘쉼터’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전리품 인사, 전면 재고하십시오"
지역국 책임자 낙하산 인사는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가리지 않고 굳어진 관행입니다. 그리고 보수정권 하에서는 방송을 통해 이뤄지는 정권 보위 공로로, 진보정권에서도 역시 전리품으로서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국 낙하산 인사 체계는 ‘여의도적 가치관’을 중계하여 재생산함으로써 지역국 구성원의 순수한 자발성을 본사에 대한 식민지적 근성으로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도록 짜여 있습니다.
KBS는 전 국민으로부터 소중한 수신료를 받아내면서 지역국 경영은 가장 후진적으로 방치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법적 근거없이, 관행이라는 이유로 인사를 통해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KBS는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경영에 관한 최고 의결기관으로 이사회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KBS 이사회 역시 중앙에서 활동하는 인사로 구성돼 있으며 지역국 대표성은 아예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따금 지방대 출신 학계 인사가 전체 지역국의 대표성을 지닌 인사로 편법적으로 충원되고 있습니다. KBS 출신의 내부인사도 예외없이 여의도 인사뿐입니다. 지역국의 목소리는 누가 대신해서 냅니까?
"이벤트 인사, 진정성이 없습니다"
양승동 사장님의 취임 당시, 세군데 권역별로 지역국 출신 지역국 책임자를 과감하게 발탁했습니다. 아는 사람은 이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측했습니다. 이벤트성 인사일 뿐이라고.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예측이 빗나가지 않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분위기 쇄신 차원의 깜짝 인사로 지역국 구성원들의 호응을 잠시 얻고, 나중에 정치권에 대한 답변용 자료 확보라는 차원에 그쳤을 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지역국 책임자 지역국 자체 발탁 인사를 크게 홍보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차피 굳어지면 안 되는 이벤트성의 1회용 인사니까요. 이후로도 간간히 한 두곳 발탁하는 정도로 지역국 구성원들을 순치시키고 있습니다.
지방분권을 상징하는 지방의회 출범 30년, 지방자치단체장 직선 26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의 대표적 공영방송이 방송분권을 향한 발걸음도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낙하산 인사를 통한 지역국 장악과 순치 때문입니다.
지역국 책임자(지역총국장, 지역국장) 인사를 이제라도 정상화시켜 주십시오. 자체 발탁을 통한 지역국 인사 쇄신은 ‘지역국의 경영 쇄신’을 즉각 이룰 수 있습니다. 지역국 경영 쇄신은 KBS 전체 경영쇄신의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경영으로 망가진 본사가 지역국의 경영을 논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향후 경영쇄신을 이룰 지역국으로부터 벤치마킹하십시오. 지역국의 자체 발탁 인사가 쇄신을 가져올 것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입니다.
"KBS 인사, 이제 순리대로 하세요"
지역총국장 자리 9개, 지역국장 자리 9개, 합하여 겨우 열 여덟개 자리입니다. 지역국 자체 발탁 인사를 즉각 시행하십시오. 사고 지역국은 당연히 본사에서 관리하십시오. 그러나 사고가 수습되면 즉시 지역국에 인사를 되돌리십시오.
지역국 책임자가 되기 위한 훈련은 지역국-본사간 순환 인사를 통해 익히면 됩니다. 또 지역국 책임자 발탁은 본사 사장 선출 방식을 따르도록 하십시오. 지역의 작은 축제가 되도록 하십시오. 지역민으로부터 검증을 받도록 하십시오. 외부 인사도 참여할 수 있도록 활짝 문을 여십시오.
아마 내부 인사가 될 수밖에 없겠지만 국민의 방송에서 지역국 책임자를 지역민까지 개방한다면 얼마나 참신합니까. 지역국 책임자는 철저히 경영자여야 합니다. 내부 출신이라면 당연히 공영방송인으로서 자질이 인정되겠지요.
외부인이라면 경영과 제작의 분리 방식으로 제도화하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방송법 개정, 제정이 필요하다면 지역구 국회의원중 반대자는 없을 것입니다. 지방분권시대 명분과 실질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지방자치시대에 걸맞는 인사 체계를 갖추십시오"
지역국은 제작비를 버느라 전쟁입니다. 이런 전쟁터에 낙하산 인사, 전리품 인사, 이벤트 인사라니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그러다보니 책임자와 지역국 구성원간 소통이 끊기고, 군림하는 책임자로 인해 제작 자율성이 저해되고 지역국 구성원의 자발성마저 떨어뜨리기에 이릅니다. 여의도 출신의 책임자가 지역국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이야기는 몇몇 사례를 빼고는 별로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지방자치시대에 걸맞게 순리대로 인사 체계를 갖추십시오. 가장 후진적이고 권위주의적 KBS의 인사 관행을 즉시 끊어내십시오. 방송의 공정성 논란은 단 한 번도 지역국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역국은 여전히 건강합니다. 지역국 인사 관행의 혁신으로 KBS의 새 지평을 열어가길 바랍니다.
※2021년 6월. 전북 전주에서 퇴직자의 작은 충고의 글 올립니다.
/김명성(전 KBS 전주방송총국 보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