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소수자가 되어본 적이 있나요?

백승종의 서평-'다정한 무관심'(한승혜 저)

2021-05-27     백승종 객원기자
'다정한 무관심'(한승혜, 사우, 2021)

“나와 다른 타인의 개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적당한 무관심의 사회. 그러면서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약자와 소수자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서로에게 다정한 사회.”

1.

저자 한승혜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가 책에서 말하는 “무관심”은 나와 남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말하는 것이지요. 액면 그대로 서로에게 무관심하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저자처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해서 따뜻한 시선을 가진 이는 드물어요. 그런 그가 왜, “무관심”이란 키워드를 가지고 나왔을까요?

2.

우리 사회를 휩쓰는 집단적 광기 때문이죠. 이 나라에서는 “집단적 정체성”에 함몰되기가 참 쉬워요. 어떨 때는 젠더를 중심으로, 또 어떨 때는 세대와 계층을 중심으로 진영논리가 난무하지요. 집단적 정체성이 뚜렷하다 못해서 우리 사회에 다양한 차별을 낳고 있습니다. 한승혜는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고 봅니다.

집단의 정체성이 강조될수록 큰 고통과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지요. 그들을 편들어줄 집단이 없으니까요. 소수자의 고통이 클 수밖에 없어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혐오”에 대한 성찰이라고 봐요.

사회적 소수자가 되어본 적이 있나요?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누구든 쓰라린 경험의 추억이 되살아날 것 같은데요. 대개는 그런 줄도 모르고 살기가 쉬워요. 저자 한승혜는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자신이 감수한 소수자의 고통을 생생히 떠올립니다.

다른 말로 하면, “대표성의 굴레”라고도 하겠지요. 소수자가 되고 보면 자기 혐오에 빠지기 쉬워요. 누가 뭐라고 비난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꾸만 “검열”하고 못살게 구는 나쁜 버릇이 생깁니다.

저도 살아오면서 이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공산당의 아들”이고, “전라도 새끼”이며, “한국 놈”인 데다가 “지방대학을 나온 애”거든요. 지금까지 한 번도 드러내놓고 불평한 적은 없으나, 제 삶을 어렵게 만든 혐오의 구렁텅이는 한두 개가 아니었어요. 여러분도 그렇고, 우리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한두 가지 마음의 상처는 누구라도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3.

사람들은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지마는 감히 대항하지 못합니다. 저자 한승혜가 말하듯, “저항한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저마다 숨을 죽이는 거지요.

한승혜 식의 해결책이 있어요. “개인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때까지 내 안에 없었던, “균형점”이라는 저울추가 생긴답니다. 타인의 생각을 편견 없이 바라보게 되는 것이고요, 마음의 여유를 회복하는 거지요. 그런 내적 여유가 있어야 의미 있는 연대도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인 듯합니다.

우리 대다수 인간은 그다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아요. 문제는 우리가 약한 사람들이라는 점에 있지요. 너무도 미약하기 때문에 자신의 신념을 제대로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요, “누군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믿을 수 있도록,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어떤 의지가 남아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떠들어서 알려줘야 한다.”라고 저자 한승혜가 강조합니다. 옳은 성찰이라고 생각합니다.

4.

갈등과 혐오가 난무하고, 그것을 왜곡하고 부풀리는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세상이죠. 집단과 집단의 갈등이 한없이 증폭되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는 또 청량제를 끊임없이 선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한승혜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지키는 일을 강조하는 거고요. 다시 말해서 저자가 굳이 ‘개인’으로 살 수 있는 길을 탐구하는 이유가 그 점에 있다고 봐요.

한 마디로, 이 책은 집단주의 정서에 빠진 우리 세상에 대한 격렬한 비판입니다. 모두가 개인주의자로 바뀌어야만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일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는 말입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심상하게 보아 넘길 구절이 아니지요.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아를 잃어버리고 집단에 의탁한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는 맹목적인 충성심을, 타 집단에는 격렬한 배척과 혐오감을 갖기 쉽다.”

5.

말로는 “개인주의자”가 되자고 하였지요. 그러나 저자가 내심 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바라는 것은 개성의 회복이고, 내적 성찰과 사회적 용기의 고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집단적 광기에서 벗어나 숨을 고르고, 깊은 성찰을 토대로 하여 “우애와 연대”의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저는 이 제안에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