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모험에서

[김명주의 영화속으로] 닥터 두리틀

2021-04-18     김명주 시민기자

돈 많은 부자에서 동물 부자로

‘아이언 맨’으로 유명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마블 시리즈 하차 이후 처음으로 참여한 작품이라고 해서 주목 받은 영화 닥터 두리틀(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 점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마블 시리즈를 크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에 로다주의 행보보다는 사람과 동물이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내게 더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나름대로 흔하게 등장하는 이야기 소재이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마법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영화 정보에서 출연진들을 보면 엄청나게 화려한 라인업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 출연이다 보니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각 배우들의 팬이라면, “아, 이 목소리 누구야!”라며 맞추는 재미도 있겠지만, 정보를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해당 동물의 캐릭터에만 충분히 몰입해서 즐길 수 있었다. 북극곰, 앵무새, 타조, 개, 오리, 고릴라, 기린, 청설모, 호랑이 등 개성 강한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재미는 그야말로 쏠쏠했다. 메이킹 필름 중 하나인 ‘오디션에서 생긴 일’은 특히나 엄마미소로 볼 수 있으니 강추!

아동 영화? 글쎄

연초에 개봉한 전체 관람가 영화이기도 하고, 동물들이 잔뜩 나오는 데다 전개가 매끄럽지 못한 점 등을 들어 ‘유치한 아동용 영화’라는 평을 많이 보았다. 분명 아쉬운 점이 있는 영화지만(맥이 정말 뚝뚝 끊기긴 한다. 편집상의 문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댓글에 완전히 공감하진 않았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를 볼 때도 그랬지만, 전체 관람가의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인생의 진리를 종종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고편만 보고 가벼운 가족 판타지 영화 정도로 생각하고 갔었지만, 도입부에서 그런 내 예상은 와장창 무너졌다.

동물들과 소통하며 그들을 치료해주던 닥터 두리틀에 대한 부분은 예고편 그대로였지만, 사랑하는 릴리를 바다에서 잃고 성문을 굳게 닫은 채 세상과 단절한 그의 모습이 유독 묵직하게 내 가슴에 닿아 왔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상실로 마음의 문을 굳게 닫는 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단단하게 빗장을 걸고, 어둠 속에서 나 자신을 방관하며, 먼지처럼 한없이 가라앉고야 마는.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아니게 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누군가가 날 구원해주기를 바라는 그 이중적인 마음 한가운데 서서 갈팡질팡하는 나 자신을 이미지로 구현해낸 장면을 목도하는 것 같았다. 사실 이 세상에 아프지 않고, 상처받지 않은 이는 없다는 것과,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보통은 같은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지만) 치유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는 순간이었다.

인생은 결국 모험

어느 날 여왕이 독살 위험에 처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인물로 두리틀이 발탁된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자신과 동물 친구들의 공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에덴 나무 열매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두리틀. 그리고 그의 조수를 자처하며 모험에 함께 한 소년 스터빈스를 보면서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 사냥꾼 집안이지만, 총을 쏴서 동물을 죽이는 것보다는 그를 살리고 아끼는 것에 더 관심 있는 스터빈스가 두리틀을 만나 고민에 빠지는 모습은 흡사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이게 정말 내가 가야 할 길이 맞는 것일까? 나는 내게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일까? 어떤 게 정답이지? 옳은 것은 무엇이고, 의무는 무엇이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모든 것이 일치할 수는 있을까? 혹은 일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결국 스터빈스는 기린에게 매달려 배를 쫓아가고, 높은 다리에서 뛰어내려 모험을 떠나는 배에 안착하고야 만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해 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냐?’는 말이다.(이 말에 꼭 결혼이 따라붙더라고;) 왜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제3자가 단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삶은 한 번 뿐이고, 선택에 시간제한이 있다면, 두 가지를 동시에 겪는다는 것은 모순인데, 후회할지 안 할지 그것도 남의 인생을 어찌 판단하는 것인가?) 무언가를 안 한 현재의 상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내게 자꾸 무언가를 해서 후회할 것을 강요하는지도 이해가 안 갔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릴 때, 단순한 것처럼 보여도 짧은 시간 내에 수많은 저울질이 머릿속을 오갈 것이다.

‘후회’라는 말은 일종의 기회비용을 나타내는 것일 테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얻는 것과 잃는 것, 장단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을 단지 부정적인 측면에만 집중하여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라고 이미 확정한 상태에서, 그렇다면 무엇을 안 해 본 것보다는 ‘경험’해본 것이 낫지 않겠냐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은 아닐지.

이렇게 말하면, 모험을 떠나기로 한 두리틀이나 스터빈스와 반대되는 의견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생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모험이며, 무엇을 하기로 하든, 하지 않기로 하든, 양쪽 다 내 선택이고 결정이라는 것이다. 가업을 이어받아 사냥꾼이 될 수도 있고,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이를 만나 알 수 없는 모험을 떠날 수도 있다.

연인을 잃고 칩거하며 은둔형 외톨이로 남을 수도 있고, 울며 겨자 먹기로 모험을 떠날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사실 사냥꾼이 되거나 꽁꽁 숨어 혼자 지내는 것보다는 모험을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거나 권장할 만한 선택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게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지를 고를까? 별다른 고민 없이 당연히 모험을 떠나지, 라고 답변할 수 있을까?

릴리를 사랑한 두리틀이 도리어 그녀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며 아이러니를 말할 때, 장인 라술리가 말한다. ‘아이러니’란 지금 당장이라도 너를 죽이고 싶어서 온 몸이 떨릴 지경이지만,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보다 더 크기에 널 살려서 보내주는 것이라고. 내 안에 모순된 두 가지의 감정, 혹은 두려움과 공포라는 부정적 감정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현재 내가 마주한 상황 속에서 그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고 책임이자, 권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두리틀이 고릴라 치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용기는 두려움을 모르는 게 아니야. 무서워해도 괜찮아.

유대계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강제수용소 생활을 겪고 발간한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한 가지는 당신의 행동에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지막 자유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모험 속에서 나의 배는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가? 항구에 잠시 정박할 수도 있고, 더 먼 바다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더 이상의 항해를 멈추고, 육지에 나의 둥지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눈앞에 놓인 모든 선택지 중 어떤 것을 고를 것인지는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다. 

/김명주/<사람과 언론> 제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