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유, 참으로 눈물겹고 안타까운 희생들에 기초
김상수의 '세평'
이 한 장의 사진, 5.18 광주를 상징하는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이 사진이 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사진에서 보여주고 있는 폭력이, 같은 세대 같은 또래의 갈등과 반목으로 조작되고 작위적인 정치 폭력에 의해 희생당하고 있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반란은 나라를 지키라는 군복무의 원칙을 저버리고 자국의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하도록 사주한 반란군 수괴 전두환의 사병(私兵)으로 전락시켜버린 기괴한 상황의 가해자로,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 젊은이는 전두환 신군부 폭압에 맞서서 거리로 뛰쳐나와 반란군의 특수제작 쇠몽둥이에 머리를 강타 당하는 끔찍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점이다.
41년이 지난 2021년 오늘, 당시의 저 두 젊은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니, 저 한 장의 사진으로 찍힌 그 순간 직후 두 청년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부당한 군사반란 폭력에 동원된 병사, 전두환 폭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청년, 저들의 운명은 이후 어떻게 변화를 일으켰을까?
무엇보다도 폭력을 조종하고 사주한 반란군 수괴 전두환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말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이 또 나에게 다가온 이유는 이 사진을 찍은 사진 기자의 ‘행동’에도 있다.
아주 가까이 현장으로 육박해 근접해서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면 찍을 수 없는 사진이다. 설사 비스듬히 높은 장소에서 거리를 두어 망원렌즈를 사용해 포착된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저 사진을 찍은 사진 기자의 심리 상태는 병사가 치켜들고 청년의 머리를 향해 내려치는 쇠몽둥이가 결과하는 참혹한 현장의 그 순간에 기자도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980년 5.18 광주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저 모습과 같이 목숨을 걸고 카메라 셔트를 눌렀고 기사를 썼다. 같은 시간 서울에 있던 또 다른 기자들 중에는 반란군의 사주를 받고 폭력에 희생당하는 젊은이들을 거꾸로 ‘폭도’로 조작하고 있었다. 조선일보가 앞장섰던 ‘광주 폭도’ 운운 시커먼 대형 활자들은 대중의 눈과 귀를 완벽하게 가렸고 흑색선전에 앞장섰던 데스크 담당자들은 전두환에 스카웃되어 비서로 장관으로 국회의원으로 ‘개들의 인생’을 살았고 살고 있다.
저 사진을 찍은 1980년 5.18 당시 ‘전남매일신문’ 소속 나경택 사진 기자와 동료들은 광주의 비참과 처참을 사진으로 기사로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반란군의 횡포에 세상 밖으로 사실을 전달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사표를 썼다.
전남매일신문사장 귀하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 1980. 5. 20 전남매일신문기자 일동
41년이 지난 오늘, 어떤 기자 그 누구도 언론사 밖에 있는 힘이 강제해 기자의 글을 사전 검색하거나 삭제 검열하지 않는다. 쇠 몽둥이로 진압 군인에 머리를 맞고서도 폭력에 끝내는 맞섰던 분들, 목숨을 내건 취재로 사진을 찍고 기사를 쓴 선배들의 투쟁, 이들이 있었기에 기실 오늘 ‘언론의 자유’는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자유는 참으로 눈물겹고 안타까운 희생들에 기초한다.
※사진 촬영 - 나경택 전 연합뉴스 기자(1980년 5·18 당시 전남매일신문 소속)
/김상수(작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