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에 '이건희 미술관' 건립...열흘만에 '엇박', 왜?

[뉴스 큐레이션] 2021년 5월 20일(목)

2021-05-20     박주현 기자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남긴 2만여 점의 미술품을 전시할 이른바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놓고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너도 나도 유치하겠다며 과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판국에 전북도와 새만금개발청이 이건희 미술관 새만금 유치와 관련해 벌이는 해프닝이 가관이다. 이에 더해 막무가내로 유치를 부추기는 지역언론의 보도 행태 또한 신중하지 못하다는 따가운 비판이 일고 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일찌감치 군불부터 지피고 나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더구나 전국 지자체들 가운데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나선 지역은 20여 곳에 달할 정도로 유치 경쟁이 뜨겁다.

아직 공식적인 가이드 라인이 정해진 것이 없는데 유치전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각 지자체들이 삼성 또는 고 이건희 회장과 인연을 내세워 무조건 유치하겠다며 선언부터 하고 보는 식이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의 경우 경기도를 비롯해 용인·수원·평택·오산시가 유치전에 뛰어들었으며 영남권의 경우 부산시, 대구시, 경북도, 경주시, 창원시, 진주시, 의령군 등이며 세종시와 여수시도 가세했다. 

여기에 최근 '새만금에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하겠다'는 보도가 나와 20여 곳에 달하는 지역이 경쟁 대열에 뛰어든 모양새다. 

전국 20여 곳 '이건희 미술관' 건립 유치 경쟁 ‘과열’ 

고 이건희 미술관 건립 유치 경쟁 관련 기사들(포털 '다음' 캡쳐)

특히 경기도가 광역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이건희 컬렉션 전용관'을 경기 북부에 건립해 줄 것을 정부에 공식 건의하고 나서면서 유치전을 확산시켰다. 

이에 대구시와 경북도의 경우도 결코 질 수 없다는 태세다. ‘이건희 컬렉션’을 전시할 가칭 ‘이건희 미술관’을 대구에 유치하는 데 양 지자체가 협력하기로 했다. 

"'고 이 회의장의 출신지인데다 삼성의 모태지역'이란 점을 내세워 양 지자체가 합세해 유치전에 나서면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대구·경북은 다른 지역보다 유리할 수 있고 건립 후 상징성도 배가 될 것으로 잔뜩 기대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전북지역에서도 유치전에 나서 눈길을 끈다. 특히 전북도민일보는 지난 7일 "새만금에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이란 기획 기사를 시작으로 10일 ‘‘이건희 컬렉션’ 새만금에 모아 국가적 위상 높이자‘의 기사를 연속으로 내보냈다.

전북도민일보 5월 7일 1면 기사

신문은 첫 번째 기사에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기증한 미술품 ‘이건희 컬렉션’에 전국 각 지역의 관심이 높은 가운데 전북지역에서도 새만금을 활용한 미술관 설립 여론이 형성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며 “광활한 새만금을 세계적 문화관광 자원으로 개발할 필요성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이야말로 큰 그림을 그려야 할 적기가 아니냐는 여론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고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신문은 두 번째 기사에서도 “새만금개발청과 전북도가 광활한 미래의 땅 새만금에 고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컬렉션을 한 데 모을 미술관을 유치해 글로벌 랜드마크로 구축하는 방안을 본격 추진키로 했다”며 “전북도는 무궁무진한 문화예술적 자원을 보유한 지역적 특성과 미래 발전 가능성이 내재돼 있는 새만금이 국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고 이건희 회장을 기리는 미술관 건립의 최적지로 평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전북도는 새만금의 잠재력을 내세워 이건희 미술관 총력 유치에 나선다는 구상”이라며 아예 유치전에 뛰어든 것으로 기정사실화했다.

열심히 군불 지피던 전북도민일보, 열흘 지나 '엇박자' 보도 왜?

전북도민일보 고 이건희 미술관 유치 관련 기사 모음(홈페이지 캡쳐)

그러더니 열흘이 지나 '엇박자가 난다'는 기사가 나왔다. 신문은 18일 ‘새만금개발청-전북도, 이건희 미술관 유치 엇박자’란 기사에서 “벌써 새만금개발청과 전북도가 고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엇박자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새만금개발청은 ‘정부의 이건희 컬렉션 공간 조성 계획을 기회로 삼아 새만금에 미술관을 설립하자’는 반면 전북도는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 타 시·도와 경쟁해야하는 이건희 미술관과 별개로 국립미술관을 설립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7일과 10일 보도했던 내용들과는 전혀 딴판이다. “전국 곳곳에서 지자체를 중심으로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위한 전략 모색에 한목소리를 내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라는 기사는 “새만금개발청은 늦게나마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전북도에도 협조를 구했으나 전북도 내부에서는 미온적 반응만 보인 채 시간만 끄는 모양새”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신중하지 못한, 즉흥적인 발상이자 '탁상 행정의 전형'이란 비판을 받을 만하다. 각 지역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이미 경기도는 지난 14일 중첩규제로 어려움을 겪어 온 경기 북부 주민을 위해 미군 반환 공여지에 국가 문화시설을 조성하자는 내용을 담은 '이건희 컬렉션 전용관 유치 건의문'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는 건의문에서 '특별한 희생에 대한 특별한 보상'을 강조하고,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국토균형발전 정책에서 소외되고 역차별 받은 경기 북부를 위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입장을 전달했다.

이건희 회장 출생지 대구·경북 합심 유치...각 지자체들 너도나도 유치전 ‘가관’

세계일보 5월 17일 기사(홈페이지 캡쳐)

이에 앞서 수원시는 삼성 본사와 이 회장 묘소가 있다는 점을 내세워 일찌감치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희망했다. 또 용인시는 호암미술관과 삼성 반도체 공장이 위치해 있다는 점을 내세워 유치에 나섰다. 인근 평택시도 삼성 반도체 공장 등의 연고를 이유로 '최적지'라는 주장을 펼치고 나섰다.

여기에 오산시도 내삼미동 공유지를 조성 부지로 결정하고, 인천 국제공항과 약 1시간 거리에 있어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다는 장점을 들어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경남 진주시는 100억원에 달하는 건립 비용까지 부담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부산시도 건립 부지까지 공개하는 등 적극적인 공약까지 내세우고 있다.

게다가 대구시와 경북도는 이 회장의 출생지이자 삼성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의 출발지가 대구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유치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창원·의령 등 경남지역도 문화시설의 수도권 편중 문제를 지적하며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삼성, 새만금에 대규모 투자 약속 철회' 벌써 잊었나? 

이처럼 전국 지자체들이 건립 비용 등의 공약까지 내세워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이건희 미술관 신드롬이 각 지자체에 광풍처럼 불고 있다. 더욱이 전북은 삼성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데도 광활한 새만금에 유치하겠다는 황당한 발상을 제기하면서 빈축을 사는 형국이다. 

지역언론도 그렇고 새만금개발청, 전북도 역시 신중하지 못한 발상에 비난이 일고 있다. 더욱이 아직 이건희 미술관 건립에 관한 정부 방침이 구체화되지 않는 사업에 대한 지나친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도민들 사이에서는 “지난 김완주 도지사 시절, 삼성이 새만금에 거액을 투자할 것처럼 도민들을 속인 사례를 벌써 잊은 모양”이라며 “또 다시 삼성을 앞세워 도민들을 기망하거나 우롱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