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전 피맺힌 광주의 외침...박관현 열사 연설 '주목'
뉴스 분석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어느새 올해로 41주년을 맞는다. 올해는 특히 대선과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정치인들의 관심과 행렬이 언론에 자주 띈다.
일부 정치인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자신들의 정치적 입신양명을 위해 생색내기 방문 또는 정치적 발언 등으로 이미지 정치에 몰두함으로써 빈축을 사고 있다.
이런 가운데 1980년 당시 전남대 방송국 학생 기자가 녹음한 테이프에 담긴 육성 연설 내용이 공개돼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테이프에 담긴 당시 상황과 육성들이 방송에 공개되자 다시 SNS를 통해 널리 공유되며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고 박관현 열사의 피맺힌 절규가 5·18 광주항쟁 41주년을 앞두고 가슴 뭉클하게 한다. 녹음 테이프 육성은 광주MBC와 목포MBC에서 중요 의제로 다뤄져 지역에서 주목을 끌었다.
특히 당시 육성을 방송한 내용이 다시 유튜브 동영상으로 공유되는 등 SNS 상에서 많은 관심과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고 박관현 열사 육성, 강한 호소력 군중 압도...김대중 전 대통령 연설 연상케
광주MBC 5월 14일 보도(유튜브 동영상)
광주MBC는 지난 14일 '박관현 전남대 학생회장 연설육성 전문 공개'란 제목의 기사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갈망했고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물러나지 않으면 온 몸으로 저항하겠다는 비장한 의지를 밝혔다"며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민족민주성회'를 조명했다.
기사는 "한 남성이 대학생과 시민들 앞에서 비장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다"며 1980년 5월 14일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 열사의 음성을 다음과 같이 공개했다.
"노예와 같이 굴종 거리며 얽매여 살아야 하는 우리 국민이 이제는 민주화 시대를 맞이하여서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대세를 그르칠 수 없어 다 같이 동참하자고 한 데 대해서 누가 반대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시위 주도자이자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였던 박관현 열사의 육성은 마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육성 연설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호소력이 강하고 대중을 압도했다. 인상 깊은 강인한 연설력이 육성 녹음에서 지금도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의 희생과 투쟁으로 얻어지게 됐는지 '울림'
민족민주성회가 진행된 첫날, 고 박관현 열사의 시국선언문은 전남대 주최로 여섯 개 대학이 공동 작성한 선언문으로 당시 전두환의 정권 찬탈을 예견했던 것으로 보도됐다. 방송은 당시 박 열사의 생생한 음성을 다시 들려주었다.
"우리는 유신 잔당의 국민주권 찬탈 음모를 분쇄하고자 우리 대학인의 민주역량을 총 집결하여 반민주 반민족 세력과의 성전을 엄숙히 선포한다"
기사는 "이어 농촌경제 개혁을 위한 투쟁, 노동3권 보장, 비상계엄령 해제 등 15개의 강령을 발표했다"고 밝히며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실추된 군의 명예와 정치적 중립이 지켜져야 한다"는 박 열사의 호소력 짙은 음성을 공개했다.
"노력이 저지 당할 경우 온 몸으로 투쟁하겠다"고 강조한 대목은 지금도 가슴 뭉클하게 한다. 그러나 "박관현 회장의 연설 나흘 뒤 계엄군은 총칼로 광주 시민들을 무참히 찔렀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짓밟았다"고 기사는 전했다.
이어 기사는 "41년 만에 세상에 나온 박관현 회장의 육성은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의 희생과 투쟁으로 얻어지게 됐는지 현재의 우리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고 덧붙여 강조했다.
목포MBC 5월 14일 보도(유튜브 동영상)
테이프 2개에 2시간 분량으로 녹음, 당시 광주 상황 생생하게 전달
이날 목포MBC도 '박관현 전남대 회장 육성 전문공개'의 기사에서 "41년 만에 공개된 박관현 전남대 회장의 육성은 말 그대로 피맺힌 절규였다"며 육성을 공개했다.
앞서 13일 서울MBC는 '계엄군 투입 직전 평화롭던 광주…41년 전 외침'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1980년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광주의 목소리를 역시 이 녹음 테이프 육성으로 전했다.
MBC는 기사는 "전두환 신군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거칠지만 강렬한 그의 음성은 결연했다"며 "세상에 다시 나온 육성 테이프가 남겨진 과제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 육성은 당시 전남대 방송국의 학생 기자가 녹음했고, 4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존재가 드러났다.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이 시작되기 며칠 전, 테이프 2개에 2시간 분량으로 녹음된 이 사료는 당시 광주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조규백 당시 학생기자는 방송과 인터뷰에서 "제가 군대 가기 전에 (누군가에게) 맡겼고 그 후 행방이 묘연해졌고 한 친구가 소지하고 있다가 이것을 반드시 찾아줘야겠다 해서 지난 5월 5일 직접 가서 받아 왔다"고 밝혔다.
4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흡한 5·18 진상 규명
방송을 통해 세상에 다시 나온 육성 테이프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비극으로 남아 있는 5·18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벌써 41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가슴 아픈 것은 당시 무차별하게 학살당한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에 대한 정확한 진상 규명이 안 되고, 죄에 대한 단죄가 안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용서와 화해도 안 되고 미완으로 남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5·18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고 박관현 열사의 절규가 지금도 귓전을 맴돌며 피를 끓게 하는 5월 18일이 다시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4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우리는 지금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날의 광주학살 책임 규명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