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해마다 축제일 줄 알았는데...
백승종의 '역사칼럼'
4월 27일에 남북 정상의 아름다웠던, 그날의 만남을 다시 떠올립니다.
1.
오늘은 2021년 4월 27일 화요일입니다. 어제 윤여정 선생이 75세의 나이로 오스카상(조연상)을 받았지요. 수상식장에서 하신 영어 인터뷰도 잘 보았고요, 뒤이어 우리 방송사와 가진 우리 말 인터뷰도 즐겁게 시청하였습니다. 저는 윤여정 선생 같은 분이 대통령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분의 시원한 성품이며, “최고가 아닌 모두가 최중(최고의 중간)으로 사는 세상”을 그리는 그의 인생 철학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솔직 담백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맛이, 윤 선생의 노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도 같고요. 어떤 무대에서도 당당한 그분의 태도가 멋졌습니다. 이런 분이 대통령을 했으면 남북 문제도 시원하게 풀렸을 것 같았어요. 무리한 말씀이겠지요.
2.
기억하실 줄 압니다. 3년 전 오늘, 2018년 4월 27일은 가슴 뜨거운 날이었어요. 그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역사적이고, 훌륭한 만남을 가졌지요. 여러분과 함께 그날의 추억을 되새기는 뜻에서 그때 제가 페북에 올린 짧은 글 하나를 올려 봅니다.
3.
(2018년 4월 27일 자 페북에 저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 김정은 위원장님!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외세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오늘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음을 천명하셨지요. 잘 하셨습니다.
자주적인 선택이 최상이라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우리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그 길을 걸었고,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과 태조 이성계를 통해 재입증된 일이었습니다.
여러 학문 분야는 물론 과학과 기술, 산업과 예술을 통해, 우리의 탁월한 능력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우리 시민은 높은 문화의식과 민주적 역량을 통해서 역사의 새길을 트곤 하였습니다.
이 땅의 시민들은 성별과 지역과 연령을 막론하고, 오늘 두 분이 합의하신 '전쟁의 종결', '평화시대의 도래'를 충심으로 환영하고 또 지지할 것입니다.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두 분, 오늘 정말 잘하셨습니다! 한반도 역사공동체가 두 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두 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4.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상찬(賞讚)에 보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기는커녕 남북 화해는 시간이 흐를수록 멀리 사라져 갔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남북문제를 풀어보려고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한 것은, 북한 측이었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감동적인 남북 정상의 해후가 있고서 1년 뒤 오늘, 즉 2019년 4월 27일에 저는 그 실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아시듯이 저는 한 사람의 볼품 없는 역사가입니다.
(2019년 4월 27일 자 제 페북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갔습니다.)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대화
(1) 여러 나라의 외신을 읽어보았습니다. 이번에 열린 러시아와 북한의 정상회담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무슨 결과를 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2) 한 마디로, 이렇다 할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겠지요. 북핵 문제의 핵심은 미국과 남북한이 당사자인데, 러시아가 무슨 결론을 낼 수가 있었겠습니까?
(3) 이번 만남은 한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6자 화담'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미국과의 직접적인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6자 회담'을 부활시키려고 하는 것이죠. 북한, 중국, 러시아의 단일한 입장을 내세워 미국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4) 러시아의 푸틴은 북핵 문제에 큰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또, 푸틴으로서는 북핵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남한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북한과 소련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고려할 때, 북핵 문제에 있어서 미국 편을 들 이유는 없다는 것이죠. 푸틴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핵 문제에 관하여 러시아도 할 말이 있다는 점을 미국 측에게 분명히 전하려는 것 같습니다.
(5) 김정은은 미국과의 대화가 사실상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한 채, 끝난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외교적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하지요.
때문에 '6자 회담'을 되살리려고 하는 모양새입니다. 아울러 미국의 제재에서 벗어나려면 러시아, 중국 등의 강력한 지원과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더욱 절감하고 있는 것이죠.
(6) 그럼 '6자 회담'은 성공할까요? 아마 별다른 성취가 없이 끝날 것입니다.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우리 측으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일단 대화의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1-2년을 끌고 간다면, 그동안 국제 정세에 긍정적인 변화가 올 수 있지요. 북한과 남한의 내부사정도 크게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7) 결론적으로, 북미 간의 직접적인 대화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긴 했으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일단 '6자 회담'의 틀을 복원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입니다.
( 김정은과의 회담을 뒤로 한 채 푸틴은 북경으로 날아갔습니다. '일대일로'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지요. 거기서 시진핑과 푸틴 사이에 모종의 조율이 있었을 것은 당연지사이죠. 이번에 블라디보스톡에서 김, 푸틴이 만난 것은, 일종의 '쉬어가기'였습니다. 북경에 가는 길에, 김정은과 푸틴이 하나의 공동의제를 만들어서 시진핑의 협조를 구한 것으로 보이니까요.
한반도는 아직 평화 분위기입니다. 이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대통령과 참모들은 더욱 폭넓고 깊이 있게 접근하기를 기대합니다.
5.
그런데요, 작년의 오늘과 올해 오늘은 말이죠, 남북대화의 진전에 관한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3년 전 우리는 해마다 4월 27일이 오면 축제 분위기 속에서 오늘을 기념할 줄로 믿었습니다.
2018년 4월 27일에 재개된 남북대화를 축하하면서 남북통일의 그 날을 향해 한발씩 앞으로 나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요? 언제까지 미국을 탓하고, 일본을 탓하고, 중국과 러시아 핑계를 댈 것인가요?
스마트 국가 대한민국이 아닙니까. 세계 9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나라, 세계 5-6위에 오른 군사 대국 대한민국 아닌가요. 그런 우리가 남의 간섭과 방해를 이유로 남북 간의 대화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요? 그럼 경제력 세계 10위 이하의 나라는 나라도 아니라는 말이 되는 것이겠지요. 말도 안 됩니다.
자국 정부의 능력 부족부터 비판하는 것이 순서에 맞습니다. 대통령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를 우리는 좀 자세히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박근혜 씨의 ‘잃어버린 7시간’만이 문제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실종에 대해서도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시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시민들 앞에 나오셔서 설명을 좀 해보십시오. 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제부터 남은 1년 동안에는 도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실지 말입니다. 실로 답답한 심정입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