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계몽주의와 유교의 차이
백승종의 '역사칼럼'
동서양의 철인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선비들은 개인과 사회의 도덕심을 배양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도덕보다는 인간의 권리를 강조했다.
그들은 인간의 쾌락 또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인간은 누구나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바, 이것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천부의 권리라는 확신이었다. 선비들은 끝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는 더욱 놀라운 점이 있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 이상,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그들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인간은 자유방임을 통해서 더욱 완전한 행복에 도달한다”라고도 말했다.
선비들은 성선설을 강력히 주장하면서도 전혀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이 타락하지 않도록 더욱더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인간이 사심(私心)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촉구했던 것이다.
조선 선비들의 입장에서 보면, 개인이 노골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상업에 종사한다면 그것은 죄악이었다. 하지만 서양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다. 그들은 부르주아지의 재부(財富)를 죄악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개인의 부(富)를 함부로 비판하지도 않았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타도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절대왕정이었다. 왜 그럴까. 절대왕정의 이름으로 인간의 본성을 해치는 비정상적 질서를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절대군주들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유럽의 왕들은 기독교 교리를 악용해서 인간의 자연권을 부정했다.
그러므로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절대왕정의 토대인 낡은 헌법을 개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주력했다. 그들은 과학과 산업의 발달을 고무적인 사회 변화로 받아들였다. 그 바탕 위에서 그들은 기득권층의 권력기반을 무너뜨리려 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부르주아의 사유재산권을 강화하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17세기 이후 조선과 중국에서도 낡은 제도를 개혁하자는 선비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그들은 감히 왕정의 타파를 주장하지는 못했다. 선비들은 왕정 자체를 부정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정에 널리 퍼진 부정부패의 풍조를 제거하는 데 개혁의 초점을 맞추었다.
선비들은 서구의 계몽주의자들이 선호한 자유방임적 관점을 조금도 공감하지 못했다. 재산권의 자유를 주장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재산권의 통제를 주문했다. 선비들은 실학자건 양명학자건 누구나 극히 보수적이었다. 그들은 유교적 사회질서를 강화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나는 선비와 계몽주의 사상가들 가운데서 누가 옳았고, 누가 글렀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존재했다는 명백한 사실을 환기하고 싶다.
※출처: 백승종, <신사와 선비>(사우, 2018)
사족:
우리는 현실이 답답할 때마다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을 소환합니다. 묵자와 노자 등 유교가 외면한 사상가들을 애서 부르기도 합니다. 얼마든지 이해가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에서 되살리려는 그분들은 과연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였던 분들인가요? 부분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도 있을 테지만, 근본적으로는 '그것이 아니었다'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저로서는.
역사에서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뜻은, 희미한 기억 속에서 뚜렷한 빛을 찾는다는 것일 텐데요. 그때 다르고 지금 다르기 때문에 해석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각을 세워서 말씀드리면, 역사의 가르침은 전면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약용이든 정조든 심지어 세종과 이순신이라도,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그분들이 다 옳았던 것도 아니지요. 그분들의 생각과 행위를 지금 여기에 그대로 대입하면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분들에 대한 칭찬도 비판도 실은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양자 택일에 너무나도 익숙합니다. 적극적인 흠모와 찬양 아니면 전격적인 거부와 폄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가장 쉽고 편안한 방법이긴 하지만, 공정하지도 않고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겠지요.
우리 역사를 존중하고 깊이 사랑하면서도 함부로 왜곡하지 않기란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날마다 역사를 다루는 제게는, 진실과 왜곡 사이에서 균형점을 발견하기가 늘 어렵습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