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중심지까지 스며든 '친일'
[기획 특집] 미완의 친일 청산(17)
동학농민혁명 중심지였던 정읍지역에도 친일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농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지도자 전봉준 장군 동상이 친일 조각가에 의해 세워져 최근까지 논란이 일고 있다.
다행이 정읍시는 역사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전봉준 장군 동상 재건립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역사적 가치의 중요성에 비하면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다.
전봉준 장군 동상을 비롯해 정읍 신태인 (구)도정공장 창고, 구마모토농장 화호지장(정읍 화호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 정읍 화호리 일본인 미곡 창고 등 정읍지역에 현재 남아 있는 친일 잔재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정읍 황토현 전봉준 장군 동상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이 관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황토현 전적지(黃土峴 戰蹟地)에 세워진 동상이다.
동학농민운동을 기리는 차원에서 이곳에 1983년에 황토현 전적지 기념관 등 여러 시설물이 설치되었고 1987년 전적지 내에 전봉준 장군 동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동상과 부조물은 친일 조각가 김경승(1915~1992)이 만든 것이다.
김경승은 1942년 6월 3일자 매일신보에 "'일본인의 의기와 신념'을 표현하는 데 새 생명을 개척하는 대동아전쟁 하에 조각계의 새 길을 개척하는 것에 미력이나마 다하여 보겠습니다"라는 친일 내용을 기고한 친일 작가이다. 친일파의 작품으로 친일 잔재로 분류돼 왔다.
다행히 정읍시는 친일 작가가 제작했던 황토현 전적지 내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 장군 동상을 다시 세우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지난 1987년 군사정권 시절 제작된 전봉준 장군 동상은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조각가가 김경승이 제작해 철거 논란이 이어져 왔다"며 "역사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전봉준 장군 동상 재건립 사업을 추진한다"고올 4월 19일에야 밝혔다.
정읍시는 이와 관련, 올해 12억원의 예산을 확보하는 등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전봉군 장군 동상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가치의 중요성에 비하면 너무 늦은 감이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정읍 신태인 (구)도정공장 창고
1924년에 세워진 도정 공장으로 일제의 전북 지방 농업 수탈 현장을 보여주는 시설물이다. 정읍 일대의 일본인 대지주가 수확한 벼를 이곳으로 모아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이곳에서 쌀을 가공하였다.
가공한 쌀은 익산을 거쳐 군산항으로 보내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왕겨나 쌀겨가 쇠를 부식시키기에 내부는 목조로 구성되었다. 현재 정읍시 생활문화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구마모토 농장 화호지장(정읍 화호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
일본인 구마모토 리헤이가 화호리 지역에 세운 농장 사무실이다. 농장을 개설했던 초기에는 구마모토 리헤이가 이곳에서 머물렀으나 이후에는 지배인에게 농장을 맡기면 농장장이 거주했던 곳이다.
구마모토 리헤이(1880~1968)는 나가사키 현 출신으로 1902년 농장 지배인의 자격으로 조선에 들어왔다.
1903년부터 전라북도 옥구군 박면 내사리와 태인군 화호리 일대의 토지를 매입해 농장을 개설하였고 이후 ‘주식회사 구마모토 농장(株式會社熊本農場)’을 1937년에 창설했다.
곡물생산이 풍부하고 정읍, 김제, 부안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였던 화호리 지역에 농장 사무실, 대형 쌀 창고 5동, 관리인 사택, 합숙소, 화호 진료소 등을 세웠다.
이 농장 가옥은 정면에 응접 및 사무실 건물이 있고 오른편에 일본인 거주 건물이 배치되어 있어 당대 농장 가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정읍 화호리 일본인 미곡창고
1920년대에 정읍 화호리에 안착한 구마모토 리헤이의 쌀 창고다. 그는 이곳에 다섯 채가 넘은 쌀 창고를 세웠는데 현재 구마모토 농장의 쌀 창고는 한 채만 남아있다.
광복 후 병원과 마을 학교, 공연장 등으로 쓰였다. 약 30평 내외의 큰 면적과 높게 설치된 계단, 두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삼각 아치형 지붕을 가져는데 이는 일본인 농장의 미곡창고 모습을 잘 보여준다.
※참고 자료 :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2020.12)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