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진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백승종의 '역사칼럼'
디아스포라
아침에 출근하는 차에서 나타샤 아틀라스의 <디아스포라 Diaspora>를 들었다. 이게 화근이었다. 끈적끈적하면서도 슬픈 이 노래는 내 몸을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내 왼손이 없어졌다. 지우개로 지우듯 손가락 끝부터 흐릿한 자국만 남기고 사라져갔다. 나는 망연히 그 끔찍한 장면을 공포에 싸인 채 바라보았다.
이어 두 다리가 발끝부터 물처럼 녹아버리고, 헐렁한 바짓가랑이가 늘어졌다. 차 안에는 나타샤의 음악 소리만 파도처럼 일렁였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목소리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주차장에 겨우 차를 대고, 허둥거리며 나는, 소리의 흔적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출처: 정한용, <디아스포라>(문학동네 시인선 78, 정한용 시집, <<거짓말의 탄생>>, 문학동네, 2015년, 13쪽)
사족:
"디아스포라"가 문제지요. 다들 아시는대로 고대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본래는 파종(播種)을 뜻하지요, 유대인이 고국을 떠나 여거 곳에 흩어져 사는 것을 뜻했답니다. 지금이야 본고장을 떠나 멀리 다른 나라에서 사는 이주자들을 부르는 말이지만요. 저도 그렇지만 벗님들도 대개는 디아스포라가 아닐는지요. 디아스포라에게는 애수도 미련도 아픔도 있기 마련일 것입니다.
나타샤 아틀라스도 잘 아실 것입니다. 1964년 생이지요. 이집트 계통의 영국/벨기에 가수니까요, 그 자신도 디아스포라였군요. 본래 그룹에서 활동하다가, 1995 년에 <디아스포라>를 발표한 다음에는 솔로로 활동하였어요. 그 노래는 6분 47초로 제법 길어요. 나타샤 말고도 여러 사람이 제작에 참여했다죠. (그들의 이름을 적어보면, Atlas, Dubulah, ManTu, Ahlan, Neil Sparkes이랍니다.)
기쁨과 보람이 없는 삶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늘 그럴 수가 없어요. 그 반대편에 있을 슬픔과 회한과 우울이, 어쩌면 더욱 더 강하게 우리를 짓누르는 것은 아닐지요. "끈적끈적하면서도 슬픈" 이 노래가 "내 몸을 하나씩 지우기 시작"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몸이 지워진다고 했습니다. 의식은 살아 있으나 사지가 사라져 가버린 것 같은 느낌을, 정한용 시인은 정말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왼손이 가 버리고, 두 다리가 녹아내리는 장면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소리 또는 음악의 힘인가 봅니다.
겨우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서 시인은 아니 우리는, "소리"를 따라서 고작 "사무실"로 들어갑니다. 하멜른에서 피릿소리를 따라서 쥐가 강물에 빠져 죽는 장면이 연상됩니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신기한 소리를 쫓아서 흐느적거리며 아침마다 사무실로 향하는지요.
그런데요. 문제의 소리의 정체를 생각하면서 저는 "세월호"에 두고온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우리 아이들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들으며 사지가 하나씩 사라져가는 느낌이었을까요.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했지요. 그 소리를 잘 들어야 모두가 살 수 있다고, 구원의 손길이 이제 곧 올거라고요.
권력이 쏟아내는 "소리"는 대개가 거짓말이지요. "움직이지 말라"도 거짓말, "나라의 발전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는 말도 거짓말. 우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는 말도 거짓말. 대동강변에서 "이제 세상의 어떤 강대국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없다"고 한 그말도 거짓말이 아니었던가요.
"세월호"의 진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우리 아이들은 차가운 바다에서 별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별들은 지금 어느 하늘에 반짝이고 있는지요. 한 사람의 디아스포라가 또 다른 디아스포라와 하나가 되는, 고요하지만 산란한 아침입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