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생각하며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1-04-12     백승종 객원기자

시대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리더십이 다르다. 평시에는 세종의 리더십이 빛나지만 풍운이 짙어지면 이순신과 백범 김구의 리더십이 그립다.

조선왕조는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한 덕분에 500년의 장수를 누렸다. 내부적 안정성이 탁월했던 반면 외부 충격에 몹시 취약했다.

조선의 이러한 약점이 가장 두드러졌을 때 백범은 동학의 한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평민이 운동의 주체였던 동학에서 잔뼈가 굵었던 까닭인지 그의 지도력 역시 평민 중심의 사고에서 나왔다. ‘쟁족’(爭足)의 리더십이었다.

그것은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권모술수를 쓰는 ‘쟁두’, 곧 감투싸움이 아니었다. 쟁족은 힘들고 천한 일은 저마다 먼저 하려 들고 높은 자리 쉬운 일은 서로 사양하는 실천운동이다. 백범의 리더십은 솔선수범으로 부하들을 감복시킨 점에서 이순신과 통한다.

난세의 영웅이 되기를 꿈꾼 박정희는 이순신의 화신인 양 행세했지만 분명히 가짜였다. 그는 국론을 분열시킨다며 소통과 타협을 금지했다.

박정희가 제거되자 세종이 부활했다. 우습게도 전두환 정권이 대왕을 제 편으로 끌어당겼다. 이런 억지가 없었다. 그들의 군홧발 소리가 멀어지고 한국사회는 점차 민주화되었다.

그러자 세종이나 정조 같은 명군의 리더십이 다시 각광을 받았다. 백범의 쟁족운동도 관심을 끌었다. 그는 높은 자리를 굳이 사양하고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자원했기에 다들 백범의 진정성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백범의 유산을 완강히 거부했다. 백범의 초상이 든 십만 원짜리 화폐의 발행을 흐지부지 뒤로 미루고, 백범이 주석으로 있던 임시정부의 정통성마저 부정하였다.

백범은 쟁족의 정신으로 구국에 나섰지만 이명박 정권은 쟁두만 일삼았다. 그 정부는 비상경제상황실까지 차려놓았다지만 실제로는 온갖 악법을 무더기로 몰아붙이고 말았다.

국회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났고 언론노조 파업도 있었다. 지금은 우리가 다 잊었지만 말이다. 21세기 초반에 일어난 비극적인 여러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은 이명박 정부에 있다.

지금은 2021년, 나는 우리가 험한 이명박 시대를 넘어 절망의 박근혜 시대를 헤쳐나온 줄 알고 있었다. 10년간 터널을 헤맨 끝에 드디어 찬란한 광명을 찾은 줄로만 생각하였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다시 부를 향한 욕망이 꿈틀거리고,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줄 아시죠? 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라고 하던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여러분, 부자되세요~" 익숙한 구호가 한발짝씩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부우자 되자고" 출범하였든가. 백범 김구가 압구정동 아파트를 두 채, 세 채 가지고 싶어서 상해 임시정부로 조르르 달려갔던가.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