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전문의가 추천하는 재미있는 책

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2021-04-12     강병철 객원기자

<치킨에는 진화의 역사가 있다>  

무지 무지 재미있는 책. 일본에서는 저자를 '조류학계의 빌 브라이슨'이라고 한다는 말에 낚일 각오를 하고 집어들었다. 일본책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과학책은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아주 강력한 예외다.

치킨 한 마리를 뜯어 먹으며 부분부분마다 해부학, 생리학, 무엇보다 진화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어찌나 웃긴지 혼자 낄낄거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가벼운 책은 아니다. 생물학과 진화에 대해 상당히 깊이 있는 지식이 담겨 있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니 대단한 재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작용으로는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치킨과 맥주 생각이 난다는 것. 일본식 아재 개그도 많은데 묘하게 페친인 Rhie HyoGn 선생이 자주 떠올랐다. 이효근 선생님, 꼭 읽어 보시길.

<코로나시대, 식품 미신과 과학의 투쟁>

2-3년전 영어책으로 읽고 출간할까 말까 망설였던 책이다. 한글로 읽으니 내용이 죽 정리되어 좋았다. 쓸데없이 먹을 걸 가지고 부산 떠는 사람이 많은 시대다. 대부분은 장삿속이거나 전체적인 구도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환자혁명> 같은 사이비 건강서나 언론의 책임이 크지만, 정작 피해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상한 불안감이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대중에게 돌아간다. 이 책을 읽고 음식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간혹 고기에 술 한잔을 걸치더라도 암이나 고지혈증 걱정을 떨어버리고 즐겁게 먹을 수 있다면, 유기농이니 non-GMO니 글루텐 프리 같은 식품을 사느라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면, 책값의 수백 배를 뽑고도 남을 것이다.

역자이신 김홍표 교수님은 유려한 번역 외에도 장마다 따로 해설을 덧붙여 보다 깊은 이해를 돕는다. 음식에 히스테리를 부리는 사회에 대한 과학적 에세이라고 할 역자 서문만으로도 가치있는 책.

<감염의 전장에서>  

미생물과 감염에 관해 명저로 꼽히는 책이다. 역시 번역 출간을 계속 생각하던 타이틀인데 코로나 사태의 와중에 감염병이 주목받으면서 출간되었다. 이쪽 전공자라면 몇 군데 실수를 잡아낼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노승영 선생의 번역이 아주 수려하여 읽는 재미가 있었다.

최초의 항생제인 프론토질에 대한 이야기인데 구태의연하게 과학자의 초인적인 노력 따위를 언급하지 않고, 그 시대의 역사를 의학의 관점에서 자세히 파고들며 흥미로운 사실들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내가 출간을 망설인 이유는 대중에게 어필할 만한 내용이 있을지 걱정했기 때문인데, 다시 읽어봐도 비슷한 생각이다. 의료인에게는 아주 흥미로울 것이 확실하며, 몇 번을 다시 읽더라도 새롭게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앨런 튜링 - 컴퓨터와 정보 시대의 개척자>

방대하고 자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튜링 전기. 신비화, 우상화가 없어서 좋았다. 수학이나 컴퓨터에 관해 지견이 없는지라 어려운 부분도 군데군데 있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번역은 최악이다. 전문 지식이 있는 분이 성실하고 정확하게 옮기기는 한 것 같은데, 너무 거칠어서 읽기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출판사에서 윤문에 신경을 좀 썼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번역은 그 자체로 전문적인 기술이다. 그 사실을 잊으면 좋은 책이 나오기 어렵다. 전문지식을 갖춘 전업 번역가가 많으면 좋은데, 보상은 적고 출판시장은 어렵다. 항상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이야기... 

/강병철(소아과 전문의·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