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순·박영철 부자의 대를 이은 친일 행각
[기획 특집] 미완의 친일 청산(15)
익산지역의 대표적 친일 잔재들 중 박기순과 박영철 부자 묘와 비석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익산군수, 전북지사, 함경북도지사 등을 지내며 친일을 했던 박영철과 그의 아버지 박기순은 대표적인 전북지역 친일 인물들이다. 조선 4대 재벌로 부와 권력을 동시에 가졌던 집안의 인물들이기도 하다.
익산지역 친일 잔재 두 번째 편으로 박기순·박영철 부자의 대를 이은 친일 행각과 두 사람의 묘와 비석을 차례로 소개한다.
박기순·박영철 부자의 대를 이은 친일 행각과 권력·부 축적
일제 강점기 박기순은 전주와 익산 일대에 광범위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각종 개발 과정에서 전북경편철도 기성회 회장을 맡았던 박기순과 그의 아들 익산군수 박영철, 전주면장 이성규가 역세권 개발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런데 당시 지역 개발이 조선인 자본가 박기순의 토지 자본 축적과 밀접하게 연관돼 이루어졌다. 이를 기반으로 박기순은 지역 유력자로 성장하게 됐다.
전북에서 성장한 박기순ㆍ박영철 일가의 자본축적 유형은 일제의 총독부에 밀착된 권력형, 지역형 자본 축적 구조가 복합적으로 연관됐다. 특히 삼남은행의 최대 주주와 최고 경영자를 맡았던 박기순과 그의 장남 박영철을 비롯하여 그 일족들이 대주주가 되어 경영권을 장악하고 세습적 가족 경영체제를 이었다.
박기순의 아들 박영철이 전북지역에서 중앙 재계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북도장관을 지낸 친일 관료라는 점과 아버지 박기순의 축적된 토지자본, 금융자본 덕분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총독부의 지방 통폐합 정책에 힘입어 정권과 결탁하여 조선상업은행의 사장을 맡으면서 부의 선두 그룹으로 급속하게 성장했다. 그 대신 각종 정치 사회단체를 만들어 일제의 총동원 체제를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요컨대 박기순ㆍ박영철은 일제의 식민도시 개발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표적인 조선인 자본가로 성장한 인물들이다. 이들의 친일 행각으로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전북자성회'를 조직하는 등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 많은 힘을 보탰다.
당시 3.1운동을 방해하고 저지할 목적으로 조직된 전북자성회 규약에는 ‘경거망동하지 말고,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하는 자를 배척하며, 그러한 자가 있다면 곧 본부장이나 지부장에게 밀고할 의무’를 명시했다. 박기순은 이 단체의 조직에 앞장섰고, 전주지부의 지부장을 맡았다.
당시 박영철은 신도시 개발과 주변지역을 잇는 도로 및 철도 개설에 조선총독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실행하는 위치에 있었다. 식민 권력을 등에 업은 부자는 일약 전북을 대표하는 갑부로 성장했다.
그러나 제국과 식민지라는 관계 속에서 총독부의 금융 통폐합 정책의 포섭 등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일제의 패전으로 그들을 지탱하고 있던 총독부 권력이 사라지고 가족 내부 문제 등으로 이들 일가의 세력과 재력은 쇠퇴했다.
박기순, 박영철은 이두황, 백남신, 백인기 등과 함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된 전북지역의 대표적 5인에 포함된다. 이들은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동시대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살면서 친일에 앞장섰던 인물들이라는 점이 공통점을 이룬다.
박기순 묘와 비석
박기순(朴基順, 1857~1935년)은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친일파이다. 그는 전주평야의 미곡을 군산과 인천에 내다 팔아 큰 이득을 얻었고 그 돈을 기반으로 삼남의 비옥한 토지를 사들여 지역에서 유명한 ‘토지왕’이 되었다.
그는 환갑을 기념하기 위해 전주 덕진공원에 취향정을 세워 공원을 사유화하기도 했다. 1919년 3ㆍ1운동 저지를 위해 전북자성회를 조직하고 전주지부 지부장을 역임했다. 또한 그는 30만평의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
익산시 마동에 있는 묘비석에는 박기순과 부인 김씨, 이씨의 묘임을 나타낸다.
박영철의 묘와 비석
박영철(朴榮喆, 1879~1939년)은 조선 4대 재벌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12년부터 1918년까지 익산군수를 거쳐 전북지사, 함경북도지사를 역임했다. 신도시 이리 개발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를 계기로 조선총독부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어 전북을 대표하는 갑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군부대신 관방 부관,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한 관료이자, 친일파이다. 박영철의 묘는 아버지 박기순의 묘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조선 4대 재벌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박영철의 묘비석에는 “다산거사 충주박영철지묘 부인전주최씨부좌(多山居士忠州朴榮喆之墓 夫人全州崔氏附左)”라고 새겨져 있으며, 그와 부인 최씨의 묘임을 알리고 있다.
※참고 자료 :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2020.12)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