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제국은 없다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1-04-10     백승종 객원기자

역사상 영원한 제국은 없다. 흥망과 성쇠는 마치 자연현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간과 공간을 두 개의 축으로 삼아 끊임없이 일어난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았을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 교양시민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역사 앞에 서면 이런 의문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세력 교체의 두 가지 유형

제국의 몰락에는 적어도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나는 영국식이다. 19세기에 전 세계를 지배한 것은 대영제국이었으나 20세기가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영국은 그 많던 식민지를 모두 잃었다.

자타가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으로 인정하던 영국이지만,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국력을 과도하게 소모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전후 영국은 과거의 영광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추락을 거듭했다. 그 대신에 19세기에는 신흥 강대국의 하나였던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오늘날 영국은 유럽의 강국의 하나라고는 하나, 그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또 다른 예도 있는데 러시아 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20세기 전반의 소련(현 러시아)도 막강한 실력자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는 미국과 대립하며, 지구상에 양대 블록을 형성하였다. 소련은 동유럽에서 정치군사적으로 절대적인 지위를 누렸다.

그밖의 여러 대륙에서도 맹위를 떨쳤으나, 1970년대부터는 영향력이 눈에 띄게 줄었다. 경제는 계속해서 침체하였고, 군사적으로는 미국의 맞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국제무대에서도 소련의 발언권은 위축되었다.

오래 침체를 겪고 나서, 소련은 1991년에 갑자기 붕괴하였다. 그가 지배하던 동유럽 전체가 비슷한 변화를 겪었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갑자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들은 외부로부터 물리적인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도 저절로 명이 다했다. 

영국과 독일 그리고 미국과 소련 

앞에서 말한 소련과 영국의 몰락을 멀리서 바라보며, 우리는 멸망의 두 가지 유형을 보는 듯하다. 대영제국은 경쟁국가의 도전을 효율적으로 이겨내지 못하였다. 영국이 독일의 거듭된 침략을 받아서 국력이 약해진 틈에, 미국은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계기로 역사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그와는 달리, 소련은 외부로부터 이렇다 할 도전이 없었는데도 내부 모순으로 붕괴하였다. 소련을 약화시키려는 미국과 독일의 공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쇠망의 주된 원인은 아니었다. 소련이 쇠하자 미국은 또 다시 이 사건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참으로 흥미로운 역사적 변화였다고 생각한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