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경제에 휘둘리면?
백승종의 '역사칼럼'
성호 이익은 ‘정의’를 원했다!
조선후기 사회는 짙은 어둠에 갇혀 있었다. 실학자 성호 이익은 당시의 안타까운 사정을 <생재(生財)>라는 글로 표현하였다(<성호사설>, 제8권).
가장 큰 문제는 놀고먹는 양반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는 ‘벌열’(閥閱)을 숭상하는 사회분위기와 관계가 깊었다.
“높은 벼슬을 한 이가 나오면, 그의 친척들은 농기구를 모두 내버린다.” 조금 과장된 말일 테지만, 출세한 일가붙이에게 얹혀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그 당시 기득권층은 노비들의 노동력에 의존해 살았다. “자신은 문관도 무관도 아니며, 가까운 조상들도 벼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노비들 덕분에 여유롭게 산다.” 노비의 ‘세전’(世傳)은 이웃나라에 없는 폐습이었다.
양반들의 노동혐오는 도를 넘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비방하며 혼인도 기피한다.” 이런 사회라면, 산업이 위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조선후기에 농업이 발달하고 상공업도 활기를 띠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대의 실학자 이익은 전혀 다른 주장을 폈다. 누구의 말이 옳을까? 사회현상이란 대단히 복잡다단한 것이라서, 어느 한쪽만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쨌거나 여기서는 이익의 주장에 경청해보자. 그의 전언에 따르면, 17-18세기의 조선사회는 부정부패가 매우 심했다.
“국가로부터 녹봉을 받는 사람도 그것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아전들에게는 아예 녹봉 자체가 없다. 따라서 관리는 누구나 뇌물을 먹고 산다. 이것은 결국 백성들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이리하여 백성들의 힘은 고갈되고 말았다.”
이익의 눈에 비친 조선의 백성들은 가련한 존재였다. “백성들은 살 의욕마저 잃어버렸다. 그들은 이제 농사일에 힘쓰지 않는다.” 이익의 판단에 따르면, 당시 조선은 “천하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민생을 구제하고자 이익은 고뇌하였다. 궁여지책으로, 그는 화폐를 폐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돈은 탐관오리들에게나 편리한 수단이다. (부자들이) 사치를 부리는데 편리한 것이다. 화폐는 도둑들에게나 편리할 뿐, 농민들에게는 불편하다.”
상업의 발전과 유통의 증가가 민생을 해친다는 것. 이것이 이익의 생각이었다. “요즘 시골에 시장의 숫자가 자꾸만 늘어난다. 사방 수십 리에 장이 서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그러나 시장은 놀고먹는 이들에게만 이익이 된다.”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 이익, 그는 시장의 규모를 축소하는 편이 민생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천만 뜻밖의 일이 아닌가? 이익은 시장의 기능을 국한해, 최소한의 생활필수품만 거래하는 장소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는 경제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럼, 도탄에 빠진 민생을 살리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백성을 해치거나 겁탈하지 말라. 그들이 죽음의 길에서 벗어나 살길을 찾게 하자.” 이익은 사회정의의 구현이 시급한 과제라고 단언했다.
“모든 농토를 권력자들이 차지했다. 그들이 농토를 강제로 빼앗아버렸기 때문에, 백성들은 죽어라 일해도 살 수가 없다. 소작료를 내고 나면 소득이 반으로 줄고, 거기다 각종 세금을 제하고 나면, 농민의 몫은 수확량의 4분의 1뿐이다.”
결국 백성들은 땀 흘려 거둔 곡식을 “원수들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호 이익은 ‘분배의 정의’를 주장했다. 그는 영국의 J. 로크나 J. 밀과 유사한 ‘고전적 자유주의자’였다고 할까.
※출처: 백승종, <선비와 함께 춤을>(사우, 2018)
사족:
“모든 농토를 권력자들이 차지했다!”라는 한탄이 낯설지 않게 다가옵니다. 2021년 4월, 이 나라의 시민들은 뿔이 났다고 합니다. 돈이 될만한 아파트를 극소수의 부자가 다 차지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쓸만한 직장은 ‘내 아들’이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높은 사람의 자식들이 다 가져갔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내’가 사는 우리 동네는 나날이 황량해지는데, ‘그들’이 사는 곳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번쩍거리기 때문이라고도 하는군요.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지방이 죽고, 지방 대학교가 하나둘씩 쓰러지고, 그 좋다는 서울에서도 강남만 살고 ‘비강남’이 손가락을 빨게 하는 데요. 여기서 빠져나올 무슨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경제는 본래가 돈의 논리로 돌아가지요. 그럼 정치는요? 정치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려는 시도여야 할 것인데요, 언젠가부터 돈에 흔들리는 정치가뿐인가 봐요. 사람다운 사람이 너무 귀합니다.
만약 정치가 경제에 휘둘리면 좋은 답이 나올 리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주인이 모르면, 객이 무슨 답을 줄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세월이 너무 오랫동안 참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답답합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