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읽은 책들을 간단하게나마 적어두니 참 좋다. 당분간 계속해보기로 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평생 읽은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다. 나는 생사관이 초연한 편인데, 항상 삶의 완성은 좋은 죽음에 있다고 믿었다. 그조차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고 옮긴 책이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이다.
이 책은 달리 말한다. "의학이 해야 할 일은 좋은 죽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최후의 순간까지 좋은 삶을 누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하지만 어떻게? 가완디의 미덕은 프로이트나 마이클 센델처럼 중요한 질문을 대충 건너뛰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는 데 있다.
내가 가완디를 프로이트나 센델보다 좋아하는 이유는 항상 실제적인 해답을 내놓기 때문이다. 삶의 완성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위해 널리 읽혀야 할 책이다. 번역과 편집이 아쉽다. 작은 출판사도 아닌데 가완디 정도 되는 작가라면 좀더 정성을 기울였어야 했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김훈)
소설을 읽다보면 '문학에 빠졌던 젊은 날부터 열심히 노력했다면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대부분 긍정적이다. 많은 것에 관심을 갖고, 깊이 생각하고, 성실하게 썼다면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었을 것이라 믿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터무니없는 믿음이지만 혼자 생각인데 뭐 어때? 잔인하게도 김훈의 글은 터무니없는 생각조차 막아버린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이 아니라 에베레스트쯤을 쳐다보는 느낌이랄까. 항상 그렇듯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답다. 군더더기가 많아 보이지만 작은 돌 하나라도 빼면 와르르 무너질 구조. 천의무봉이다.
야생 속으로(존 크라카우어)
이상주의적인 생각으로 알래스카의 숲속에서 혼자 살아가려다 안타깝게 목숨을 읽은 젊은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던 <희박한 공기 속으로>에서 여실히 드러난 산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경험을 버무려 넣고, <미줄라>에서 보여주었던 집요한 끈질김으로 그저 가십거리로 묻혀버렸을 한 사람의 죽음을 치밀하게 재구성하여 일견 무모해 보이는 젊은 열정을 변호한다. 누구나 자신의 길이 있다.
그 길이 좁고 험해도 가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성공하면 영웅이요, 실패하면 역적이 되기 십상이지만, 그건 세상의 평가일 뿐이다.
노멀 피플(샐리 루니)
불행하게도 중년이 되어서야 제인 오스틴을 읽었다. 딸 아이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만큼이나 짜릿짜릿하고 가슴 설레인다고 하는데, 제법 감성적이라 자부하는 나는 도통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이 소설도 그런 축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사소한 소통의 문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인생행로는 몇 번씩 엇갈린다. 닿을 듯 닿을 듯 안타까우리라 짐작할 뿐 안타깝지는 않았다. 내 젊음은 지나간 것이다. 청춘을 돌려다오!
인간의 품격(데이비드 브룩스)
에고라는 적(라이언 홀리데이)을 좋게 읽었다. 비슷한 책이다. 자기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난 세상,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풍조를 돌아보고 겸양지덕을 상기시킨다. 스토익하다기보다는 기독교적인 서술이 거슬리지만, 이런 책은 균형을 잡기 위해서라도 가끔 읽을 필요가 있다.
가족의 두 얼굴(최광현)
절반을 못 읽고 덮었다. 기본적으로 어린시절의 경험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으려는 심리학적 접근을 불신한다. 누군가는 이런 접근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문제를 찾을 사람이라면 좋은 책을 한두 권 읽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개인병원 의사들은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자기가 본 환자들은 모두 잘 낫는다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실력 없는 의사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모든 문제는 가족에 근원을 둔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분들이 그런 오류에 빠진 것은 아닐까?
인간이 좀더 현명해져서 모든 일에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많은 일이 그저 우연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을 이해하는 날이 온다면 대부분의 가짜 과학이 없어질 것이다. 그때도 이런 설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강병철(소아과 전문의·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