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국가 배신하는 '부동산 타령'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1-03-10     백승종 객원기자

중국 북송 때는 재상들도 셋집에 살았다. 현직 재상의 자제들에게는 과거 응시조차 금지되었다. 인사부정을 막기 위해서였다. 낙하산 인사가 상식처럼 되어버린 이상한 세상(이명박근혜 시절 이야기입니다!)을 사는 우리로서는 좀체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북송 때 사정을 자세히 기술한 다음, “재상의 유능한 자제들이 등용되지 못한 것은 애석한 일이나, 천하의 허다한 인재를 썩히는 것보다는 잘한 일이었다”고 평했다.

실학자 정약용 역시 고위층의 절제와 청빈을 강조했다. 그는 강진의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릇 선비는 관직에 등용되는 즉시 높은 언덕에 셋집을 마련해 처사(處士)처럼 검박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에도 청빈한 선비들이 있었다. 선조 때 영의정까지 지낸 이산해는 그 표본이었다. 그는 평생 벼슬에 종사했지만, 집 한칸 밭 한뙈기도 없었다. 손님이 오면 말 잔등에 깔던 언치에 나앉을 정도로 살림이 옹색했지만 늘 태연자약했다.

인물평에 유난히 까다롭던 율곡 이이도 이산해에 대해서는 두 손을 들었다. 그는 선조에게 이산해를 극찬한 적이 있다. “이산해가 이조판서를 맡자 모든 청탁이 사라졌습니다. 이대로 몇 년만 더 지난다면 세상이 달라질 것입니다.”(<연려실기술>) 셋집만 전전하다 칠순에 접어든 이산해는 결국 서울 장통방의 셋집에서 눈을 감았다.

백사 이항복도 벼슬이 좌의정까지 올랐지만 셋집살이를 했다. 남인의 영수 우의정 허목도 구리개의 셋집에 살았다. 좌부승지 백유함도 개성의 셋집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권력과 부와 명예가 대대로 세습되던 조선시대에도 이처럼 청빈한 선비들이 적지 않았다. 가난을 자랑하자는 말은 아니지만, 요새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장관감 하나 제대로 없다(지난 20년 동안 인사청문회에서 칭찬 받은 이가 누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민들은 전셋값 폭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지도층 인사란 사람들은 평소 저지른 부동산투기 따위의 범법행위 때문에 눈앞에 떡을 두고도 못 먹는다(고위직 낙마의 주된 이유가 부동산 문제였던 이명박근혜 시절을 말한 것입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을지 모르겠습니다).

LH 본사(자료사진)

사족: 요즘 LH공사의 부동산 투기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지요. 참으로 한심한 작태입니다만, 박정희 시대부터 늘 있었던 비리지요. 지금 서울 강남에 가서 호구 조사를 해보십시오.

비싼 아파트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이 지난 50년 동안 공무원, 공사 근무자 그리고 정가를 어슬렁거리던 사람들과 그 자손들이지요. 그들은 국고를 축내고, 시민과 국가를 배신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한푼 두푼 봉급에서 덜어낸 돈 모아서 고가 아파트 장만한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야 말로 제발 유야무야하지 말고 제대로 가려내어 추상같이 처벌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조사할 사람이나 조사 받을 사람이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인데요, 결국 선거판에나 써 먹고 말겠지요. 정말 철저히 썩었습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