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바다에서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이화구의 '생각 줍기'
화엄경은 어느 분이 저술했을까? 화엄경이란 책자는 순수문학으로 보면 세계 최고의 걸작품이요, 인문학적으로 봐도 세계 최고의 철학서이며, 또한 종교적으로는 불가에서 최고의 경전으로 꼽히는 서적이다.
그러니 누군가 최초로 쓴 분이 있을 것이다. 물론 범어(산스크리트어)로 썼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범어본은 완벽하게 다 남아있지 않고 일부만 남아 전해오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성서에 보면 마태오 복음서, 요한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등 많은 복음서들이 있다. 이런 사도 분들의 복음 말씀도 누군가 인간의 언어로 쓴 작가가 있을 것이다.
화엄경도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 부처가 비로자나불(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광명(光明)의 부처)과 일체가 되면서 문수, 보현, 미륵 등 많은 보살들이 차례로 불타를 찬양하는 노래를 읊은 경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들의 말씀을 최초로 누군가 글로 쓴 작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불가에서는 경전이라고 부처님의 말씀으로만 믿고 있을 뿐 저자를 찾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휼륭한 작품을 저술한 분들은 하나같이 화엄경의 내용은 인류의 스승인 부처의 말씀이지 내 얘기가 아니라며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요즘 정치판 청문회에서 보면 남의 것을 표절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자신이 전문가라고 떠벌이는 인사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 같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는 나 같이 절에 다니는 불자도 아니고 불교를 전공한 학자도 아닌 무식한 者가 떠벌려야 욕하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우리가 화엄경을 쓴 작가로 추정해 볼 수 있는 인물은 두 분이 계신 거 같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아난과 같은 초기 제자들은 부처님 말씀을 암송으로 전한 분이기 때문에 경전의 말씀을 전한 분이지 경전을 저술한 분으로 볼 수 없고, 부처님 사후 몇 백년이 지난 후에 경전으로 편찬됐으니 당시 불교의 교리나 가르침에 정통한 선사께서 쓰셨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인물로 거론되는 분들 중 한 분은 서기 150년 ~ 250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인도 승려로 대승불교의 교리(공空사상 및 중론中論)를 체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용수보살(인도 명으로 나가르주나라고 부르며, 어려서부터 총명해서 재능이 많았는데 천문, 지리, 예언 등 여러 가지 비술을 체득) 이라는 분이 있다.
용수보살은 불가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환생한 분이시라고 하니 많은 불경을 충분히 쓸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분이다. 용수보살은 신비로운 인물로 신라의 유학승 혜초가 남긴 '왕오천축국전'을 보면 용수보살은 7백년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경전인 성서에도 보면 몇 백년을 사신 분들의 얘기가 나오니 특별할 건 없는 것 같다. 불교가 발생한 곳은 인도 북부 지방이다. 그런데 중국을 출발하여 화엄경을 구하러 간 중국의 스님들이 범어본 화엄경을 가져온 곳은 인도 북부가 아니고 지금의 신강 위구르 지역이다.
당시 화엄경이 꽃을 피운 나라는 지금의 신강이 아니고 당시에는 '우전국(우기국. 화전현. 코탄) 이었다. 물론 당시에 이 지역에 거주하던 민족은 위그르족도 아니었고 종교도 회교가 아니었다.
당시 구법승으로 인도로 가던 길에 우전국을 들렸던 현장스님은 당시 우전국에 살던 민족은 온순하고 중국 한족과 비슷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전국에 대한 정보는 신라의 유학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도 나오고, 당나라 현장 법사가 쓴 '대당서역기'에는 아주 상세하게 나온다.
당시 기록을 더 들여다 보면 우전국은 부유한 나라로서 국민들은 불법을 신봉하고 수만명의 승려들이 있으며, 집 앞에는 높이가 6미터 정도 되는 작은 탑이 세워져 있었으며, 여행하는 승려들을 위해 승방도 마련되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우전에는 14개의 대사찰을 비롯한 수백개의 사찰이 있었으며 그중 하나인 왕신사(王新寺)에는 높이가 75미터나 되는 탑이 세워져 있었다고 하니 사찰의 규모와 웅대함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리고 건물은 금.은으로 칠해져 있고 여러가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법당의 기둥과 창문은 모두 금으로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당시 우전국의 사찰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장관이었나를 알 수 있다. 우전국은 현재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타림분지 서남쪽에 있는 화전현으로 곤륜산맥의 북쪽과 접해 있는 마을이다. 일찍이 우전현이라 불렸지만 1959년에 화전현으로 개칭된 이 사막의 오아시스가 옛날 우전국의 땅이었다.
화전현은 곤륜산맥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백옥강과 흑옥강 유역에 있는 큰 오아시스의 땅으로 옛부터 우전국의 특산물로서 서쪽으로는 이란 이라크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중국에 무역품으로 보내졌으며, 이 무역으로 인해 우전은 부를 축적 할 수 있었다.
그 외에 비단이나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깔개 등도 주요 무역품이었다. 우전은 실크로드 동서무역의 중개시장으로 번영했기 때문에 동서 양쪽 문화를 받아들여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불교 뿐만 아니라 이란 계통의 조로아스트교도 수입되어 있었다.
중국의 역사서 북사(北史)의 서역전에 보면, 우전에서는 모든 백성이 불법을 소중히 여겼으며, 사찰과 탑과 승려들이 대단히 많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왕은 불교를 신봉하여 육재일(六齋日)을 지키고 불단에 올리는 곡물이나 과일을 손수 씼었다고 한다. 이처럼 불교가 번창했던 옛날 중앙 아시아 일대는 모두 불국토였다는 사실과 국가마다 불교가 얼마나 융성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은 비록 거의 모든 유적들이 모래에 묻혀 그 옛날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불교의 모습을 찾기 어렵지만 인도에서 시작된 대승불교가 꽃피운 중앙 아시아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따라서 60화엄경이나 80화엄경 모두가 사막의 오아시스 국가였던 우전에서 발견되어 중국으로 왔다는 것은 이 화엄경들이 우전에서 편찬 또는 집대성 되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해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자들이 연구할 걸 보면 비로자나불이 처음 등장한 게 5세기 경에 편찬된(한역) 잡아함경에서 모든 어둠을 없애기 위해서 광명을 비치는 존재로 처음 등장한 후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대방광불화엄경에 이르러 불경의 주인으로 나타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 후 420년 불타발타라가 한역한 34품 60권 화엄경에서는 노사나불품에서 주존을 노사나라 칭했으며, 699년 당의 실차난타가 한역한 39품 80권의 화엄경 이후에서야 비로자나라는 명칭이 등장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게 다 우리나라 학자들이 불경만 봤지 범어를 배우지 않아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고대사를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인문학자 중의 한 분이신 정수일 선생이 쓰신 '고대문명교류사'에 보면 기원전 1세기경 카슈미르에서 우기국(우전. 호탄)으로 와서 불법을 전파한 "비로절나(毗盧折那)" 같은 승려의 이야기가 나오고,
또한 인도의 학자 '고빈드 찬드라 판데'가 쓴 '불교의 기원'이란 책자를 보면 한역본은 5세기경에 발간되었으나 빠알리본은 2세기경에 발견된 것으로 기술하고 있는 사실들을 보면 확실히 우리의 연구가 미흡했던 게 아닌가 싶다.
여기서 말하는 "비로절나"라는 법명은 비로자나불의 다른 이름이다. 이때 이미 비로자나불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도 보면 쿠사타나국(우기. 우전. 호탄)의 불교도래 전설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비로차나(毗盧折那: 당나라에서는 편조(遍照)라 함) 아라한이 우전국에 불교가 없었을 때 카슈미르에서 와서 숲에서 선정에 들어 이적(숲에서 광명을 비춤) 을 보이면서 불교를 전한 이야기가 아주 자세하게 나온다.
그렇다면 비로자나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는 화엄경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카슈미르에서 우전국으로 와서 이적을 행하며 불교를 전한 '비로절나 아라한'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파견되어 불경을 구하러 간 중국(동진)의 구법승 지법령(支法領)이나 당나라의 지엄 모두 우전국 국왕에서 사정하여 우전국 보물창고에 보관해 놓았던 화엄경을 구해서 중국으로 돌아와 번역한 것이다.
사족: 사진으로 올린 금장을 입힌 5권의 책자는 대한민국 최고의 교학승이셨던 탄허스님이 현토를 달고 한글을 병기한 화엄경으로 금액이 좀 비싸(40만원)지만 제 남은 생의 지침서로 삼고자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처음 책장을 넘기자 또 다시 화엄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말았습니다. 화엄의 바다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으로 가려고 지혜의 반야용선에 올라탔으나 뱃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혜의 반야바라밀 세계를 가기 위해 항해 전에 미리 화엄경과 관련된 10여 권의 책자와 다른 불교 관련 책자를 읽은 숫자가 족히 3백여권은 될 것 같은데도 그동안 책으로 배운 항해술과 선(禪)의 나침반(Compass)은 제가 지혜가 부족해서 그런지 저에게 화엄의 바다는 아직도 깊고도 험난했습니다.
그래도 화엄의 바다를 허욱적거다 보면 태양의 부처님인 비로자나부처님이 광명을 비춰주리시라 믿고 그 빛을 따라 장엄한 화엄의 바다를 건너보겠습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사바하" "갑시다. 갑시다. 피안으로 갑시다. 피안으로 모두 갑시다. 깨달음의 세계로 속히 갑시다."
/사진·글=이화구(금융인ㆍCPA 국제공인회계사ㆍ임실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