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 용인하는 부끄러운 사회

Edward Lee가 본 '한국 사회'

2021-03-04     Edward Lee 객원기자

윤석열이 대구를 택해 방문한 의도는 무엇일까? 그리고 마치 대통령 후보처럼 유세를 하고, 받들어 모시는(?) 그쪽 사람들은 또 무엇일까?

윤가나 그쪽 사람들이나 참 가관이다. 이런 걸 보면 윤가는 지적 수준이 매우 낮다고 밖에 볼 수 없겠다. 자신이 정말 대권주자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그 스스로도 대권이 대단히 탐이 나는 모양이다.

상상이나 망상은 자유지만, 작금의 그의 돌출 행동은 급락한 지지율로부터 기인한 조급함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정말 그는 대권 꿈에 취해있는 것이다. 건희가 ‘영부인 감’이라는 점괘마저 있다지 않은가?

이렇게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 우매한 자가 또 한 사람 있었다. 박근혜다. 그리고 그의 말로는 ‘비참’의 현재 진행형이다. 사회라는 인간의 공동체에서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결과는 그런 것이다.

윤가 역시 그 전철을 밟고 있다. 어쩌겠는가? 그 개인의 영역이고 무엇을 하든, 망상마저도 그의 자유인 것을. 문제는 이런 자를 이용해 권력을 위한 악을 기획하고 작당하는 무리가 더 무서운 게다. 국회나 검찰 내의 매우 사특한 또 다른 좀비와 같은 자들 말이다.

윤가는 차치하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또 어떤가? 이런 자로 하여금 1년 반이 넘도록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이성과 상식은 땅바닥에 떨어지다 못해 지하에 묻혀버렸다. 온 나라에 화가 가득하고 자조와 한숨이 또 그렇다. 그 자조와 한숨은 윤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당청정을 향한 것이고, 우리 스스로의 무력함을 탓하는 것이다.

윤가 검찰이 모든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를 능멸하는 이면에서 우리 사회를 한번 바라보자. 검찰이라는, 물론 이전 정권에서 무작위, 전방위 ‘사찰’을 감행한 국정원이 있었고, 또 조중동 같은 특정 목적으로 정권을 유린하고 있는 악랄한 매체들 역시 마찬가지지만, 검찰의 파일에 집적된 사람들, 당당하게 나설 수 없는 사람들로 인해서 악이 더 광광 거리는 것은 아닐까? 얼마나 구리길래, 정말 이 정도로 밖에 살 수 없었을까?

대부분의 시민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이 단지 직감일지라도 틀리지 않는 법이다. 그게 곧 우리 사회의 부인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 시대, ‘윤석열’이라는 광인으로 대표되는 검찰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조국과 추미애, 임은정, 그리고 진혜원 등 결국 이런 사람들뿐인가?

우리 공동체가 좀 더 바른 것을 추구하고, 옳고 그름에 더 단호해야 옳다. 한번 어그러지면 바로잡기가 매우 힘들다. 그런 역사의 시간이 수 백 년이요, 수 십 년이다.

시민 집단지성으로서 삶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런 자가 마치 대통령 유세를 하는 것처럼 광광 거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선한 시민들의 삶을 비웃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닌가? 

/에드워드 리(재미(在美)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