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간다"

이화구의 '생각 줍기'

2021-03-02     이화구 객원기자

화엄경 이야기(1)

사찰에 정기적으로 다니는 불자는 아니나 불교와 관련된 책들을 접하기 시작한 게 40대 초반이니 어언 20여 년이 된 것 같다.

그동안 수많은 경전들 중에 가장 읽기 어려웠던 게 화엄경이었던 거 같다. 그러다 보니 화엄경을 좀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해서 화엄학과 관련된 책들을 이 책 저 책 사서 보게 되었다.

화엄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직후 그 깨달음의 내용을 우주와 혼연일체가 되어 빛으로 설하신 내용이라 대중들은 이해를 못하고 보살들이 아나운서가 되어 중계방송을 한 경전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다른 경전들은 부처님이 법을 설한 불설경(佛說經)인 반면 화엄경은 보살들이 부처에 대하여 설하는 설불경(說佛經)이다.

따라서 화엄경은 수많은 보살과 신중(불법을 지키는 신장)이 그 깨달음의 세계를 찬탄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불교 사상을 담고 있기 때문에 화엄경은 대승경전의 꽃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화엄경은 어려운 내용, 그리고 방대한 분량 때문에 오랫동안 불교에 대해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읽어 보고자 하는 마음을 내기란 쉽지 않다. 화엄경이 읽기 어려운 것은 일단 방대한 양 때문이다. 실차난타가 번역한 중국의 80권 화엄경은 한자 글자 숫자만 56만 7,261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존하는 최고의 학승이신 무비스님이 한글로 번역한 화엄경 81권의 글자 수가 10조에 달한다고 한다. 10조라는 무량수에 가까운 숫자를 어떻게 세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경전의 양이 방대하다 보니 요약본이 생기게 되었다. 실차난타가 번역한 80권본 화엄경의 골수만을 골라 용수보살이 간략히 줄여 놓은 게송 (화엄경약찬게)이 756자로 행으로는 108행이다.

그리고 772자로 줄인 왕복서도 있다. 왕복서(往復序)는 화엄경을 풀이한 짧은 글이라는 뜻이다. 화엄경을 깊이 연구한 중국 화엄종의 제4조 청량징관(淸凉澄觀) 스님의 저서다. 그리고 화엄경의 이치를 30게송 210자로 설명한 게 그 유명한 의상대사의 법성게이다.

법성게는 화엄경의 핵심을 7언 30구 총 210자로 요약한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의 게송(偈頌)으로 의상대사께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불교의 최고봉인 원효(元曉) 대사께서는 56만 7,261자의 화엄경을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라는 단 10자 로 줄였다.

좋고 싫음, 부귀와 가난, 깨끗함과 더러움, 권위와 비루 이 모든 것들이 내 생각(아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이런 헛된 상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고 하여 '일체무애인'이라 하고, 일체무애하면 생사를 벗어난다 하여 '일도출생사'라 하였다.

의상대사께서는 80권이나 되는 화엄경을 210자로 압축하여 아름다운 한 편의 시로 탄생시켰다. 그게 유명한 법성게(法性偈)였는데 210자의 법성게를 다시 8자로 줄인게 “行行到處(행행도처)요, 至至發處(지지발처)"다.

결국 우리의 인생이란 것도 ”걷고 걸어도 그 자리, 가도 가도 떠난 그 자리“가 아닌가 싶다. ♪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 ♪♬ 이란 가사의 " 나그네 설움"의 노랫말처럼 인생이란 정처가 없는 것 같다.

간다간다 했지만 가서 보니 본래 그 자리요(行行本處), 왔다왔다 했지만 와서 보니 바로 떠난 그 자리다(至至發處). 처음 이 땅에 '빈손''으로 왔듯, 우리는 다시 '빈손'으로 떠난다.

이를 두고 하버드 출신 파란 눈의 현각 스님은 "Coming Empty-Handed, Going Empty-Handed"라 했다. 팔만대장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으니 모두 다 좋은 말씀일 거라고는 생각된다.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경들 중에 어느 경이 나에게 적합한가를 찾아봐야 하지 않나 싶다. 어느 스님은 천수경은 비타민A 같은 존재이고, 금강경은 비타민C 같은 존재이라고 한다.

그리고 법화경은 비타민D 같은 존재고, 반면 화엄경은 종합비타민과 같은 경전이라고 말씀하신다.

시족 : 사진들은 점심 먹고 사무실 인근 봉은사에 들렸더니 홍매화가 붉은 꽃을 피웠길래 담았고, 봉은사 판전 전각에는 화엄경 판각도 보관되어 있습니다. 

/사진·글=이화구(금융인ㆍCPA 국제공인회계사ㆍ임실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