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를 위하여
백승종의 '역사칼럼'
1.
어제(2021. 02. 12)도 수만 명의 미얀마 시민이 군부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2월 초부터 군사 정권에 대한 항의를 계속하며,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내셔널리그(NLD) 정치가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시위는 수도 양곤뿐만 아니라, 지방으로도 퍼졌다. 연전에 방글라데시로 피난한 로힝야 난민들도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주의 회복을 응원하고 있다.
2.
알다시피 미얀마는 오랫동안 군사 정권의 압제 아래 신음하였다. 2008년에야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어 권력의 민간 이양이 가능해졌는데,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민간인이 권좌에 오른 것은 2010년대의 일이었다. 지난 수년 동안 미얀마에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미얀마의 과거와 현재를 7가지로 간단히 정리해보면 어떨까 한다.
첫째, 미얀마는 국가 시스템이 미흡하다. 2011년, 군부 독재자 타트마다우가 권력에 물러날 때까지도 미얀마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국민의 42%가 극빈자였으며, 전기 보급률도 50% 미만이었던 데다, 상수도 보급률도 3분의 2가 되지 않았다.
둘째, 미얀마에 사회경제적으로 변화가 시작된 것은 극히 최근이었다. 2015년 NLD가 의회를 장악한 이후 근대적인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때까지도 노동 전반의 문제와 토지의 취득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은 영국이 식민지로 통치하던 시기, 즉 20세기 초반 수준에 머물렀었다. 아직도 미얀마의 국가 조직과 공무원의 역량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
셋째, 2008년에 제정된 새로운 헌법 아래서도 군부의 영향력은 막강하였다. 군인들은 내무행정과 국방 및 국경선 관리를 직접 통제한다.
넷째, 민간 정치가의 활동 영역은 주로 사회 및 경제에 관한 것이다. 상업과 재정을 비롯해 교육, 천연자원, 토지, 농업 및 사회적 인프라를 담당하는데, 쿠데타 직전까지는 NLD가 의회의 다수당으로서 여러 가지 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다섯째, 민주화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 동안 국민복지가 크게 향상되었다. 극빈자는 인구의 25%로 감소했고, 2017년 현재 전기 보급률도 70%로 좋아졌다. 상수도 보급도 82%까지 개선되었다. 사회 간접자본도 늘어났고, 투명성도 높아졌으며, 지배구조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다.
여섯째, 사회가 전반적으로 활기를 띠는 가운데 민주주의에 대한 미얀마 국민의 지지도 높아졌다. 2020년 선거에서는 NLD가 의회의 과반을 얻었다. 2019년의 여론 조사 결과에 의하면, 권위주의 정부를 지지하는 시민은 9%에 불과하였다.
일곱째, 그런데 2019년 당시 응답자의 83%는 미얀마의 국가 체제에 아직도 상당한 결함이 있다고 대답했다.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민간 정부의 국정 운영에 관해서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서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킨 것으로 본다.
3.
미얀마에 관한 국내외의 여러 신문 기사를 읽어본 나의 소감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현재 미얀마의 시위자들은 민간 정권의 공적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군사 정권이 연출한 가난과 폭력의 시대로 되돌아갈까 봐 크게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고, 그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는 여러모로 미흡하다.
그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으나 인권의식이 부족하다. 연전에 그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무시하고, 소수민족인 로힝야에 대한 차별과 박해를 감행하였다. 그가 이끄는 NLD 지도부 역시 미얀마의 근본문제를 적극적으로 극복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빈곤의 퇴치와 인종 분쟁의 해소라는 중요한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였다.
그들이 집권한 다음에도 미얀마의 국가 조직은 여전히 부패하였고, 사회적 불평등은 뿌리 깊은 문제로 남아 있었다. 그런 점에서 NLD 정권의 복구가 미얀마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인지 확신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점도 없지 않다. 한 사회가 하루아침에 완전히 달라지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경험이기도 하다. 지난 5년간 미얀마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면, NLD가 상당한 업적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현재의 미얀마는 새 헌법이 제정되었던 2008년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이 자유롭고 열린 사회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나는 NLD를 비판하면서도 지지한다.
4.
오늘날 국제사회가 미얀마의 쿠데타 정권을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민간 정권의 회복을 주장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엊그제 미국의 바이든 정부도 그랬고, 유럽 연합과 국제연합도 나서서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였다. 미얀마 군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과 제재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그들의 노력이 실제로 미얀마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문제의 열쇠는 미얀마 시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투쟁하기를, 그리고 앞으로는 아웅산 수치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젊고 패기만만한 지도자가 미얀마의 장래를 결정하기를 바란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