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같지 않은 설, 달라진 ‘코로나 설’ 풍속도
뉴스 분석
민족 대명절인 설 풍속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설 차례와 밥상머리에 온 가족이 마주 않아 정담을 나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5인 이상 모이면 안 되다는 관념이 깊숙이 자리하면서 가족들 간에도 교대로 귀성을 하는가 하면, 차례도 각자 집에서 단출하게 올리는 모습이 불과 1-2년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그런데 코로나 설을 맞아 가장 답답한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정치인들이다. 표심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정치인들은 해마다 설 명절이면 재래시장과 사람들이 모이는 공원, 거리 등에서 손을 마주 마주잡으며 지지 호소와 함께 이미지를 알렸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내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를 준비하는 예비 후보들은 사이버 상에서 또는 거리의 현수막 등으로 대체하며 자신을 알리느라 분주한 모습들이 눈에 띈다.
그래서 곳곳에 불법 현수막이 늘고 있다. 내년에 동시에 치러지는 선거인 만큼 갈 길이 바쁜 예비 후보자들은 표심을 잡을 만한 곳이면 어디든 현수막을 내걸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언론과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전도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전북지역 방송사들의 영상 뉴스에 투영된 달라진 설 풍속도 5제를 톺아보았다.
#반가움보다는 '걱정'...한산한 귀성길, 서해안 ‘안개 주의’
방역 당국의 이동 자제 호소에 버스 터미널과 기차역은 예년과 달리 한산하다. 눈치를 살피며 고향을 찾은 귀성객들은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고, 고속도로 교통량도 크게 줄어들었다.
예년처럼 기대감에 들떠 마중을 나왔던 친구와 가족들의 모습도 온데 간 데 없고, 고민 끝에 집을 찾은 사람들의 표정은 마냥 조심스럽기만 하다. 지난 추석에도 못 만난 가족들이 그리워 가슴만 쓸어내리며 아쉬움을 달래는 홀로 사는 노인들은 또 다시 쓸쓸한 명절을 맞고 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5인 이상은 모이지 말라는 방역 지침에 고속버스터미널은 물론 기차역도 썰렁한 모습은 마찬가지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지난해 상황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연한 모습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부터 고속도로 소통도 원활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설 연휴 기간 전북권 교통량이 하루 평균 약 27만 대로 지난해에 비해 18% 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설 명절 연휴 첫날인 11일 오전 7시 기준,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서울에서 전주요금소까지 3시간 20분, 서해안고속도로 서서울에서 동군산요금소까지 3시간 50분이 걸리는 등 평소 주말보다는 소요 시간이 약간 늘었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 전북지역본부는 “11일 오후 8시 이후에는 정체가 완전히 해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전북지역은 대체로 맑은 날씨를 보이며 포근한 설 연휴가 되겠지만, 서해안을 중심으로 안개가 많아 ‘운전 주의’가 요구된다.
#특별 단속반에도 넘치는 불법 현수막, 교육감 입지자들 눈에 띄게 많아
설 연휴를 앞두고 역과 터미널을 중심으로 정치인들이 내건 현수막이 부쩍 늘고 있다. 이 현수막들, 정식 절차를 밟지 않은 불법 게시물일 뿐이란 점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전주시는 불과 일주일 전 불법 게시물을 단속하겠다며 특별단속반까지 구성했는데 현장 상황은 딴판”이라며 전주MBC가 10일 불법 현수막 실태를 자세히 짚어 보도했다.
"설 연휴를 맞아 야간에도, 공휴일에도 역과 터미널을 중심으로 불법 게시물을 단속하겠다"며 불법 게시물 제거를 위해 전주시 완산구청과 덕진구청은 특별단속반까지 편성했지만, 현장에서는 단속이 이뤄지 않고 있어 불법 현수막들이 나부끼고 있는 모습들이 조명됐다.
귀성·귀경객들이 몰리는 전주역과 주변 도로에는 명절 인사가 적힌 현수막들이 주변에 즐비했다. 전주MBC는 관련 기사에서 “대부분 국회의원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이 내걸었는데, 3선의 김승환 현 교육감의 불출마가 기정사실인 탓에 교육계 인사들의 현수막이 꽤 많이 걸려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 같은 현수막 게시는 일단 옥외 광고물법 위반”이라는 기사는 “지금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인정한 선거 기간이 아니고, 집회와 시위 목적으로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내걸린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며 “시민들은 갑자기 늘어난 현수막에 짜증마저 느낀다며 불만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전주시는 불법 게시물을 엄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기사는 “원래 오는 15일까지 불법 현수막을 조금씩 떼려 했다고 해명하지만, 정작 그날이면 연휴는 끝난다”며 “그 사이 정치인들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된다”고 비판했다.
#설 명절 가족 간에도 5인 이상 집합금지...“명절에도 긴장 늦추지 말아야”
코로나19 속에서 지난해 추석에 이어 맞는 두 번째 명절인 설 연휴가 시작됐지만 이번 설에는 추석과 달리 가족이라도 5명 이상 모일 수 없어 더욱 아쉬움이 크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5명 이상 모일 수 없어 이동 자체가 줄어든 데다 거리두기로 인해 친구들과 가족들의 모임을 자제하는 등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고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어느 때보다 가까이 느껴진다”는 시민들의 볼멘 소리가 어느 때보다 크게 들린다.
그러다보니 고향 가는 길, 휴게소 들르는 재미도 반으로 줄었다는 뉴스들이 나오고 있다. 이번 설 연휴엔 휴게소 안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고 포장만 가능하다. 고향 찾는 발길이 줄면서 전통시장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다. 설 대목이라는 말이 이젠 옛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분위가가 달라졌다.
전북지역은 이번 주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설 명절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나는 등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북에서는 최근 새로운 집단감염이 발생하지 않은 가운데 확진자를 돌보던 군산의료원의 간호조무사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주에서도 지난 주말 전남 여수를 다녀온 1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고, 경기도 부천에 사는 자녀들을 만나고 온 무주의 70대가 자녀들에 이어 확진 판정을 받는 등 소규모 감염이 이어지고 있다. 방역당국은 확진자들의 정확한 감염 경로를 파악하고, 추가 접촉자를 조사해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다른 지역 확진자로부터 연쇄 감염이 이어졌지만 이번 주 들어 확산세가 주춤하면서, 지난 일주일 간 감염재생산지수도 0.62로 소폭 감소했다. 하지만 전북도 방역당국은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연휴기간 조금의 방심이 새로운 집단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동과 만남을 되도록 자제하고 방역수칙을 지켜달라"고 방역당국은 당부했다. 전북도는 명절 연휴 기간에도 14개 시군, 28곳의 선별진료소는 정상 운영한다며, 코로나19 관련 문의사항이 있을 시 지역별 보건소나 보건지소에 전화해 줄 것을 당부했다.
#'집콕' 늘면서 식료품·배달 수요 증가...마트, 로컬 푸드 ‘불티’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외식과 외출이 크게 줄고 대신, 집 안에서 먹고 쓰는 게 늘면서 전반적인 소비 위축 속에서도 생필품과 식료품 소비는 증가하고 있다. 이 바람에 채소, 육류 할 것 없이 모두 가격이 올라 좀 더 저렴하고 신선한 제품을 눈으로 살피고 비교해 구입할 필요가 있다.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등교 수업이 중단되고, 재택 근무가 늘어나는 등 초유의 재난 상황이 시민들의 식생활 습관마저 바꿨다. 외식이 일상이었지만 이제는 반 강제적으로 집에서 직접 밥을 해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덩달아 식료품 수요도 급증했다.
JTV는 "전주시내 한 대형마트는 지난 12월 기준 신선식품과 가공식품 매출이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면서 "고기도 집에서 구워먹어 축산품은 40%나 늘었고, 완구, 일상용품 신장 폭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기사에서 "코로나19로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소비위축 속에서도 집에서 먹고 쓰는 것들이 증가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대형마트는 온라인 배송 서비스가 매출 증가를 함께 견인하고 있다. 식료품 시장도 새벽배송, 하루배송 등 온라인 배송이 치열해지고 온라인 쇼핑 거래도 역대 최고액을 달성하고 있지만, 전통시장과 동네마트는 배송 경쟁력이 떨어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설 연휴 대권주자 민심 향배 관심...임금체불 ‘한숨’
차기 대권 주자들의 본격적인 경쟁을 앞두고 설 연휴 도내 민심이 어디로 쏠릴지 주목 된다.
전북지역 언론들은 “전북의 경우 그동안 지지도가 높았던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상대적으로 주춤하고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세균 총리도 외곽 조직을 통해 보폭을 넓히고 있다”며 “그동안 이재명 지사와 이낙연 대표가 주도해온 여당내 경쟁 구도에 정세균 총리가 뛰어들 예정인 만큼, 이번 설 연휴가 도내 민심의 첫 번째 분수령이 될 전망”이라고 줄지어 보도했다.
이런 와중에 설 명절이지만 임금을 제때 못 받아 명절 쇠기가 힘든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는 코로나19까지 겹쳐 한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JTV는 “10년 넘게 남편과 맞벌이를 해오며 두 딸을 키워온 주부가 한 음식점에서 일한 돈 120만 원을 석 달 째 받지 못하고 있다“고 사례를 들면서 ”노동부 사무실에도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는 또 “지난해 기준, 전북도의 체불임금 현황은 527억 원으로 한 해 전의 545억 원보다 다소 줄어들었지만, 도내에서 사업장이 가장 많은 노동부 전주지청의 경우엔 이마저도 통하지 않았다”며 “지난해 전주지청 기준 체불액은 245억 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6.5% 증가한 것으로, 특히 제조업에서 전년대비 40% 이상 증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울하고 불안한 설 명절 풍속과 함께 언제 끝날지 모를 팬데믹 상황의 짙은 암운이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며 드리우고 있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