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독특한 한국문학 수업
백승종의 '서평'
1.
'로쟈'라는 필명으로 이름난 이현우 선생의 책 두 권을 소개할까 합니다. 한 권은 <남성작가 편>이고, 또 하나는 <여성작가 편>인데요. 현대의 주요 작가 22명을 다루었어요(여성 작가는 10명).
여성작가로는 강신재, 박경리, 박완서, 오정희, 강석경, 공지영, 은희경, 신경숙, 황정은을 거론했어요. 남성은 최인훈, 이병주, 김승옥, 황석영, 이청준, 조세희, 이문구, 김원일, 이문열, 이인성, 이승우 및 김훈이 저자의 주목을 받았지요. 아마 누구나 다 아는 작가들이 아닐까 해요.
로쟈가 글을 쓰는 방법은 독특하지요. 세 가지 점이 제 눈에 띄는데요, 첫째는 로쟈의 독특한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거지요. 보통 문학평론가들이 작품을 논의할 때는 잰체하면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복잡한 문장으로 현란한 수사를 동원하지요. 로쟈의 글은 달라요. 로쟈의 음성이 들리는 평이하면서도 냉정한, 그만의 독특한 문투가 매력적입니다.
둘째, 로쟈는 늘 근대성과 현대성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비평가이거든요. 어떤 작가를 만나든 그가 얼마나 근대/현대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는지를 점검하고 있지요. 작품 속에서 문학과 세상이 어떤 식으로 만나는지를 물어보고 있는 거죠. 로쟈가 러시아를 비롯한 서구의 문학을 공부한 이라서 이런 문제의식이 매우 도드라져 보여요.
셋째, 로쟈는 독립성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이지요. 다른 사람이 무어라고 하든지 오직 자신의 눈으로 작가를 이야기합니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제목 그대로 이현우 선생과 함께 하는 한국문학 강의가 맞아요. 그가 남을 함부로 칭찬하거나 비판하지는 않으니까요, 그의 음성에 귀 기울이면서 지난 1960년대부터 우리 문학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왔는지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2.
이 책의 여성 편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고요. 남성작가 편은 작년 이맘때 나왔던 같은 제목의 책을 고친 것이지요. 먼젓번에는 들어갔으나 이번에는 빠진 이는 손창섭 한 명이고, 새로 추가된 이는 이문구, 김원일 그리고 김훈이 있어요. 지난번 책도 제가 페이스북에서 소개한 적이 있었지요.
새 책을 읽어보았어요. 김훈에 관한 로쟈의 분석이 참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김훈의 소설이 버티는 힘이 문장력에서 나온다고 보았어요. 여러분도 아마 동의하실 것입니다. 작가 김훈의 세계관을 허무주의라고 진단하고, 그것이 그의 간명한 문체와 표리를 이룬다고 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건조하고 남성 중심적인 사고의 김훈 작가, 그는 힘의 논리가 관철되는 세계를 반복해서 보여준다고도 보았는데요. 탁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작가의 대역 이순신을 “발명”하였다고 분석한 것도 정곡을 찌른 것이라고 하겠어요. <칼의 노래>도 <남한산성>도 모두 역사소설로 읽히지만, 실은 현대 또는 근대의 소설이잖아요. 김훈의 이순신은 역사적 인물이라기보다는 작가가 구성한 대역이란 말씀이지요. 아마 김훈 작가는 동의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어요.
김훈이 역사를 무대로 빌려다가 현대소설을 썼다는 평가, 로쟈의 이 말씀이 참으로 좋습니다. 어쩌면 김훈은 현대를 배경으로 서사를 구성하기에는 힘이 조금 부족할 것도 같아요. 그래서 그는 역사를 배경으로 자신의 탁월한 문체와 자신이 구성한 주인공의 “내면성”을 무기로 내세우는 것도 같아요.
<칼의 노래>에 가장 절절하게 형상화된 김훈의 허무주의, 이것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김훈 세대가 경험한 일상의 괴로움에서 나왔다고 봐야 하겠지요. 로쟈가 그 점을 날카롭게 짚었어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이 읽을만한 것입니다.
3.
여성작가 편도 흥미진진하지요. 예를 들어보겠어요. 신경숙의 밀리언셀러 <엄마를 부탁해>를 다룬 글이 참 좋아요. 로쟈는 신 작가의 소설적 특징을 한 마디로, “잔잔하고 밋밋하고 무언가 중언부언하는 듯”하다고 정의했어요.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신 작가는 구성력이 부족해, “이야기를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부족해서” 중언부언한다고 진단했어요. 동의하지 않으세요.
<엄마를 부탁해>가 신 작가에게 큰 영예를 안겨주었다는 점은 누구나 잘 알지요. 이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이도 제 친구인 여러분 중에는 거의 없을 듯해요. 그러나 바로 말해서 이것이 무슨 탁월한 문학작품이던가요.
로쟈는 이 작가가 근대와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는다면서, “여성작가들의 경우 대부분 그렇다”라고 말하지요. <엄마를 부탁해>도 인간의 사회적인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사회가 작동하는 원리가 몽땅 빠졌다고 지적합니다. 맞아요, 정말 그런 느낌이 들지 않던가요. 로쟈는 문제의 소설이 구성도 긴밀하지 못하고, 너무 판에 박은 듯한 상투적인 서사로 가득하다며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죠.
소설은 인생의 본질을 캐묻는 것이고, 실존의 비밀에 다가서게 하는 것이지요(쿤데라). 그러나 신작가의 소설은, “이미 아는 것을 다시 확인해 줄지는 몰라도 더 알게 해주는 것은 없어 보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로쟈는 참으로 냉정한 비평가지요. 로쟈의 말에 의하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부도덕하다”는 이야기입니다.
4.
로쟈의 말이면 다 옳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지요. 그가 진지하게 되묻고 있는 “근대성” 또는 “현대성”이란 것도, 원점에서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개체성”에 관한 서구 학계의 논의만 해도 그것이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주장이 과연 옳은지, 저는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의 차이는 언제 어디서나 당연히 존재하는 거지요. 분명하고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이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매우 유익하다는 점이지요. 로쟈는 시세의 흐름에 아부하는 법도 없고, 늘 자신이 마련한 내적 기준에 따라서 엄정하고도 분명한 어조로 우리 현대사회의 대표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해부하거든요. 세계문학에 깊은 조예가 있는 중견 학자인 그가, 진솔한 문체로 자신의 문학적 평가와 판단을 들려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요.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