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어디로 가는가?
김상수의 '세평'
1.
한겨레 현장 기자들 41명이 26일 성명을 통해 “‘성역’ 없이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한겨레는 조국 사태 이후 ‘권력’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데 점점 무뎌지고 있다”며 “국장단의 어설픈 감싸기와 모호한 판단으로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고 41명이 발표했다.
지금 한겨레신문 41명이 말하는 ‘권력’의 소재가 어디에 있나? 청와대? 윤석열과 정치 검사들? 법원의 정치 판사들? 대체 어디에 있나?
조선일보와 1야당이 한겨레 기자 41명을 칭찬하고 나섰다. 조선일보와 '이명박근혜 잔당'이 나서서 고무 격려를 하는 상태란? 한겨레신문 창간의 정체성과 전혀 맞지 않는다.
아래 기사가 한겨레신문의 정신과 맞나? 양비론이고 뭐고 이런 기사가 30년 이상 한겨레신문을 본 독자들에게 납득이 되겠나? 이게 온전한 기사인가?
2.
한겨레신문을 저대로 둘 것인가? 창간 독자들이 다시 모여야 하는가? 아니면? 시장주의자들이 말하는 ‘시장’에 맡기고 말 것인가? 비판을 하면서도 창간 때부터 읽어온 한 사람으로 한 ‘언론’의 추락과 기이한 ‘변이 바이러스’가 신문을 병들게 하는 것을 보는 현실은 ...
41명의 “현장 기자들”이 발표한 성명서에서 “국장단의 어설픈 감싸기와 모호한 판단으로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라는 41명 발표 문장에서 선배들에 대한 존중이란 아예 없다.
사안은 잠시 접어두고 저런 모욕과 폭력 언사가 외부에 공개될 만큼 ‘언론사 기율’이 파괴된 상태인가?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르몽드, 가디언, 인디펜던트, 리베라시옹, 하다못해 아사히신문이 저런 망동을 허용할까? 의외로 기자 기율이 엄격한 사실은 잘 모르는 거 같다. “좋은 저널리즘”은 41명의 전유물인가? 어떤 기준인가? 41명의 기자들은 어떤 기사를 썼는가? 하나하나 추적해볼까? 병들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전경련 산하 경제신문과 별로 변별력이 없는 신문으로 가고 있는 원인은 뭘까? 이쯤에서 역할을 다했다고 보고 미련을 끊는 것이 차라리 내 건강을 위해 나은 건가?
/김상수(작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