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 얼굴 기억강요 '봉안전', 버젓이 초등학교에 남아
[기획 특집] 미완의 친일 청산(3)
반민족행위자인 친일파와 관련된 유적을 친일 잔재라고 부른다. 이러한 친일 잔재들이 우리 주변에 아직도 산재해 있다. 이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친일 잔재라고 해서 철거·폐기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일제의 만행이나 친일 부역자를 기억하고 상기시키는데 교육·활용해 민족의식을 고취할 목적으로 보존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전시관이나 교육관 등으로 이전하여 그대로 전시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따라서 친일파와 관련한 잔재들 가운데 대체할 필요가 없는 경우는 전시관 및 교육관으로 이전하여 전시하는 경우가 많다.
친일·독립운동 한 곳에 전시·교육·연구 공간 마련 필요
그러나 전라북도의 경우 친일과 독립운동을 한곳에서 전시·교육·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가령, '전라북도 식민지 역사교육관'이라든지 '전라북도 식민지 역사공원' 등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실행이 안 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역 곳곳에 친일 잔재 비석이나 탑들이 많다. 공원과 학교 교정 뿐만 아니라 시내 중심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전주시내에 산재해 있는 친일 잔재들 중 대표적인 사례로 '덕진공원 인근 최영희 장군 공덕비', '군경묘지 충혼불멸탑', '전주고 충혼비', '가련산 정상의 순국학도 현충비', '풍남초등학교 주변의 봉안전 기단 양식'을 차례로 소개한다.
최영희 장군 공덕비
최영희 장군 공덕비는 최영희 장군 공덕비 건립 추진위원회의 발족으로 1958년 전주 덕진공원 내 건립되었다.
최영희(崔榮喜)는 1922년생으로, 해방 이후 국군 창설에 참여하였고, 국군 제1사단장과 제8사단장을 역임하였다. 제8사단장으로 전주에 주둔하면서 삼남지구사령관을 겸하면서 빨치산을 토벌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그런데 최영희 장군 공덕비의 외관은 상단에 뾰족한 사각형 뿔 형태를 띠고 있다. 사각형 뿔 모양은 전사자를 추모하는 일본식 충혼비를 상징하는 특징이다. 기단부와 상단을 비롯한 공덕비의 외형에서 일제의 식민 잔재를 확인 가능하다.
군경묘지 충혼불멸탑
한국전쟁 당시 전사하였던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으로 1949년 군경묘지가 설치되었다. 이후 1955년 당시 묘역에 충혼불멸탑이 건립되었다. 충혼불멸탑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군인과 경찰의 유해를 안장하여 추모하려는 의미에서 건립되었다.
한국에서는 1930년대 이후 일제에 의해 ‘내선일체’의 일환에서 각종 전쟁기념물이 전국적으로 설치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해방 직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제에게서 해방된 지 5년이 지나지 않아 전사자를 기리는 각종 전쟁 기념물이 전국적으로 건립되었다.
이때 대체로 일제 강점기 당시 세워진 충혼비와 충령탑의 형식을 모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군경묘지 내 충혼불멸탑은 유해를 안장하기 위한 공간으로 입방체의 공간을 조성하고 그 위에 높은 탑신을 세운 구조의 형식으로써, 일제 강점기 당시 체화되었던 식민 잔재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전주시가 관리하고 있다.
전주고 충혼비
전주고 충혼비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하였던 전주고 학생 및 교직원을 기리는 의미에서 건립되었다. 충혼비 전면에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 친필로 ‘충혼비(忠魂碑)’가 쓰였다.
충혼비 뒷면에는 신익희 친필로 이들의 애국을 칭송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충혼비 우측 하단에는 전쟁 당시 사망하였던 학도병 38명, 좌측 하단에는 순직 교직원 1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전주고 충혼비의 외형에서 식민 잔재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충혼비의 상단을 보면 뾰족한 사각형 뿔 형태이다. 사각형 뿔 모양은 일본식 충혼비의 특징이다. 해방 이후 전사자를 기리는 의미에서 제작된 충혼비에 남아 있는 친일적 요소이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전주고등학교가 관리하고 있다.
전주 순국학도현충비
전주 가련산 정상에 위치한 순국학도현충비는 6.25전쟁에 학도병으로 출정한 이들을 기리는 현충탑이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출전하여 순국한 509위(位)의 명복을 빌고,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 전라북도민의 성금으로 세워졌다.
이 현충비가 친일 잔재로 제정된 원인은 탑의 형식이 일본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탑의 기단부 양식이 일본식 현충탑의 형태를 띠고 있어 식민지 잔재임을 알 수 있다. (사)전라북도학도의용군 사회복지지원회가 관리자(단체)로 지정돼 있다.
전주 봉안전 기단 양식 1
일제 강점기에 내내 한국인들은 일본 천황의 사진을 보관하던 ‘봉안전’ 앞을 지날 때마다 경례를 하도록 강요받았다. ‘어진영’이라고도 하는 ‘봉안전’ 은 학교마다 배치돼 학생들이 일본 천황의 얼굴을 기억하게 하고 일본 식민주의 정신을 교육하는 데 이용됐다.
봉안전에 경례하는 것을 게을리 하거나 이를 해하게 되면 형법상 불경죄로 처벌 받았다. 전주풍남초등학교 구정문에 세워져 있는 조형물의 기단은 일제 강점기 봉안전의 기단 양식으로 제작되어 있다. 전주풍남초등학교가 관리자(단체)로 지정돼 있다.
이처럼 학교와 공원 주변의 현충비와 추모비, 공덕비들 중 상당수가 친일 잔재들이다. 심지어 일본 천황의 얼굴을 기억하게 하는 조형물이 초등학교에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참고 자료 :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2020.12)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