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연애하듯...

신정일의 '길 위에서'

2021-01-18     신정일 객원기자

여행이라는 것이 그렇다. 떠난다는 사실은 집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제도나 규칙으로부터 잠시나마 떠나 있고 싶은 그것 때문에 떠날 때가 많다. 물론 그곳에 가면 눈 앞에 펼쳐질 , 유물이나 역사, 문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우선 마음으로부터 느끼는 자유, 그것을 찾아 시간과 돈을 지출해 가면서 떠난다.

그런데, 안내자보다 한 발짝이라도 먼저 가서는 안 되고,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되고, 나뭇가지나 열매를 따서는 안 되고, 먼저 가거나 나뭇가지나 꽃을 꺾으면 벌금을 물리겠다는그런 곳을 몇 시간이나 하루 탐방하다가 보면, 마치 감옥살이를 한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온몸과 마음에 가득 채워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통제하는 모든 것이 보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자기들이 만든 완장에서부터 비롯되는데, 생성했으면 점차로 소멸되는 것이 당연한 우주의 흐름이자 세상의 이치인 것을 모르다 보니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예가 여기저기에 많이 있다. 그중 앞서 말한 그것보다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규교육 과정이다.

“무엇이 어떻든 나는 아이를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아이를 혹독한 학교 선생의 우울한 기분에 맡겨 두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를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짐꾼들같이 하루에 열너댓 시간이나 고역과 노동에 매어 두어서, 그 아이의 정신을 퇴락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외롭고 우울한 기분에 잠겨서 서적 공부에 철없이 열중하게 하고, 이런 기분을 가꾸어 주는 것도 좋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는 사람과의 교제에 서투르고, 더 좋은 직무를 회피하게 됩니다. 우리시대에 분에 넘치게 학문을 탐하다가 천치가 된 사람을 얼마나 많이 보고 있습니까?(......)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아이들의 방에서나 정원에서나, 식탁에서나 잠자리에서나, 혼자 있을 때나, 친구와 함께나, 아침이나 저녁이나, 모든 시간이 한가지이며, 어디 있어도 공부가 될 것입니다.(....)

교육은 늘 있는 식이 아니고, 엄격한 온정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어린애들이 글을 배우게 유도하는 대신에, 징그럽고 잔혹한 심술로 남을 해롭게 하는 행위밖에 내놓지 않습니다. 폭력과 강제는 그만두십시오. 내 의견으로는 이보다 더 심하게 점잖은 집 아이를 둔하고 어리석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그가 수치와 징벌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싶더라도 거기에 굳어지게는 하지 마십시오. 땀과 추위, 바람, 태양, 위험들을 가소롭게 보도록 길들이십시오. 예쁘장한 멋쟁이를 만들지 말고 발랄하고 억센 사내가 되게 하세요. (...)

학교란 정말로 어린애를 가두어 두는 감옥(監獄)입니다. 그들이 방탕아가 되기 전에 처벌하여 방탕아를 만듭니다. 그들이 공부할 때에 학교에 한 번 가보세요. 들리는 것은 고초 받는 어린애들의 울음소리와, 화가 치밀어 정신을 잃은 선생들의 고함소리뿐입니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실린 글이다. 몽테뉴가 마무리 글에서 제시한 것 같은 그런 교육을 시키고 받아야 하는데, 오직 좋은 대학에 많이 보내기 위해서, 아이들의 취미, 재능, 그리고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똑 같은 교육을 시키고 받고 하다니, 그래서 몇 사람의 성공한 사람과 많은 사람의 실패자를 만드는 교육, 이 얼마나 살벌하고 무서운 일인가,

거듭 거듭 말하지만 공부는 연애하듯 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내 의지에 의해서 할 때 한 번 들어온 지식이나 지혜는 잊혀 지지가 않고 내 기억 속에 내재되는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좀 더 자유롭기 위해서 온 여행객들을, 보이지 않게 통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통제라는 것을 모르고, 유치원 아이 다루듯, 다룬다면 누가 그곳을 다시 가겠는가?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그러한 것들이 시정되어야 좋은 세상이라고 할 것이다.

자유, 자율이 살아 있는 교육, 그것이 가장 필요한 시기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요원한 일이다. 그것이 슬프다.

/사진ㆍ글=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