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나발니의 모스크바 귀환 의미
백승종의 '역사칼럼'
1.
어제(2021년 1월 17일) 모스크바 공항에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신병 치료를 마친 알렉세이 나발니가 주위 사람들의 염려와 만류를 물리치고, 소신에 따라 모스크바로 귀환한 것입니다.
나발니는 지금 현재 러시아의 황제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맞설 의지와 능력을 갖춘 유일한 정적입니다.
나발니의 귀환이 임박하자 많은 시민이 꽃다발을 들고 모스크바 공항으로 몰려들었지요. 그들은 나발니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응원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이로써 위기에 빠진 나발니의 생명을 지키고 싶다는 것인데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발니는 비행기에서 내려 여권 심사대를 통과하는 순간 그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던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었지요. 현재 나발니가 어디에 억류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나발니가 원하였더라면 그는 베를린에서 평안하게 머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허락된 자유와 안정을 단호히 거부하고, 모스크바로 돌아가기를 원했어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러시아에서 투쟁할 것!”이라며 드디어는 지인과 지지자들의 걱정을 뒤로 한 채 조국으로 귀환을 결행한 것입니다.
나발니는 푸틴 대통령의 대항마라고 하지요. 그는 비판적 언론인이자 러시아 제일의 재야 정치인입니다. 수년 전부터 푸틴 정권의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데 앞장섰고요. 대중적 인기가 대단합니다. 그의 용감한 귀환이 부정부패의 늪에 빠진 러시아 사회에 한 가닥 희망의 빛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2.
지난해 여름, 정확히 말해 2020년 8월 24일, 나발니를 태운 비행기가 독일 베를린에 착륙하였을 때만 하여도 상황은 절망적이었지요. 그는 공항에 도착한 직후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그 병원은 제가 지난해 1월 베를린 체류 시절 아침저녁으로 오가던 산책로에 있습니다마는, 나발니가 과연 건강을 회복할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나발니는 러시아 국내 여행 중에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거든요. 며칠 앞선 2020년 8월 20일, 그는 비행기 편으로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의식불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푸틴 정권의 정치적 테러일 것으로 의심하였고, 러시아 당국은 이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를 시베리아 옴스크의 구급병원으로 이송하였지요. 아니나 다를까, 병원 측은 나발니의 몸에서 의심스러운 화학 약품을 조금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발표했어요. 사람들은 믿지 않았지요.
그때 독일의 시민단체 시네마가 개입하였습니다. 그들은 나발니를 독일로 이송하여 치료하고 싶다고 청원하였습니다. 정치적 협상을 거쳐 혼수상태에 빠진 나발니가 베를린으로 옮겨졌고요. 샤리테 병원 측은 그의 몸에서 콜린에스트라아제 억제제라는 독극물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것은 신경작용제 및 농약에 독극물입니다. 이후 독일 의료진의 치료는 효과를 보아서 나발디는 차츰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기울여 러시아 정보당국이 그에게 독극물 테러를 한 것이 사실이라는 정보당국자의 증언을 확보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를 세게 언론에 공개하여 러시아 정보당국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아시듯, 푸틴 정권은 정적을 제거하는데 자주 독극물을 사용해 왔지요. 베를린과 런던에서 그들의 독극물 테러로 숨진 사람들이 이미 여럿이었습니다.
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알렉세이 나발니의 악연은 이미 여러 해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2017년 12월 26일로 잠시 거슬러올라가 보지요. 그날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나발디가 차후에 진행될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말하자면 입후보 신청을 거부한 거였어요. 그때 러시아에서는 다음 해, 즉 2018년 3월 18일에 대통령 선거를 치를 예정이었고, 장기집권에 나선 푸틴을 가로막을 사람은 나발니 밖에 없다는 여론이 높았습니다.
본래 나발니는 지방정부에서 활동한 젊은 엘리트입니다. 지금도 나이가 40대 초반에 불과하거든요. 그런데 나발니의 도전을 두려워한 푸틴 측은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키로프주 주정부의 고문일 때, 나발니가 목재 사업을 하는 어느 국영기업체로부터 50만 달러 이상의 공금을 착복하였다는 것입니다.
많은 러시아 시민은 이것이 근거 없는 죄목이라고 봅니다만, 법원은 나발니에게 5년 징역형에 5년의 집행유예를 선고했어요. 이 판결을 근거로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나발니의 대통령 출마를 저지한 것이고요.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가 사실 여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이라 정치적 박해로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4.
오늘날 전 세계에는 알렉세이 나발니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세계의 주요 언론사는 물론이고 러시아 내부에도 용감한 나발니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약삭빠른 푸틴이 그를 당장에 함부로 건들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라는 나라는 참으로 알 수 없는 나라이기도 하지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저는 용감한 나발니를 지지하고 성원의 목소리를 보냅니다. 그가 푸틴의 철옹성을 무너뜨리고 러시아 시민들과 함께 새길을 열어가기 바랍니다. 그 옛날 독일 정부가 제공한 밀봉 열차를 타고 깜짝 귀환한 레닌이 러시아의 역사를 바꾸었듯이 말입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