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부모의 마음을 지니고 살기란
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마음 속에서 뭔가 툭, 끊어졌다. 찬 바람이 부는 거리로 나서는데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비가 왔던가? 초여름치고 이상한 날씨였다. 밴쿠버 시내를 헤매는 동안에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보니 미술관 앞이었다. 차분한 공간에서 그림들을 보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영사관에 들러 존경하던 분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재배를 올리고 나온 참이었다.
공황이 찾아왔다. 거리에서 다른 사람의 그림자만 봐도 식은 땀이 흐르고, 두렵고, 가슴이 뛰었다. 못 먹고 못 자고, 꼭 죽겠다 싶었다. 이민 초기였다. 세상은 낯설고, 돈에 쪼들렸으며, 존재감은 바닥이었다. 무엇보다 아이의 상태가 너무 불안정했다. 약을 몇 번 바꾸었는지 모를 정도였는데 호전의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나로 환생하지 않도록"이란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 떠올렸다. 나와 아이와 세상과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기까지, 그래서 공황에서 빠져나오기까지 3년이 걸렸다.
원고를 정리 중인 <In a Different Key>는 자폐의 역사를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그려낸 책이다. 자폐인 아들을 총으로 쏴 죽인, 아니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아비의 얘기가 나온다. 23년간 조현병을 앓아온 딸을 살해한, 아니 살해할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기사로 마음의 성벽 한 구석이 무너져 있던 참이었다.
마음 속에서 뭔가 툭, 끊어졌다. 기시감. 원고를 덮었다. 한 달 간 쳐다보지도 않았다. 12월 중순부터 다시 붙잡았다. 이번에는 별일 없었다. 한 군데서 잠깐 울긴 했지만. 10년 전에 비해 상황도 나아졌고, 나도 강해진 덕이리라.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의 출간 비용을 지원해주신 찬수군의 아버님께서 "책은 겨우겨우 다 읽었어요 ...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참 힘들더군요"란 소식을 전해오셨다. 한동안 눈시울을 눌러야했다.
언제 어디서 심리적 상처를 입을지 모르는 장애 부모의 마음을 지니고 살기란 얼마나 힘들고 아름다운가. 저마다 자기가 제일 아프다며 아우성인 세상에서.
/강병철(소아과 전문의·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