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ED를 이끌 의료정보 표준화의 길', 올해 마지막...

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2020-12-26     강병철 객원기자

12월 후반에는 팔짝 뛸 정도로 일이 많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일이라도 없었다면 속에 열불이 나서 애꿎은 술이나 죽였으리라. 속이 속이 아닌데 술을 들이부었다면 속병이나 났겠지.

50평생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는데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다. 미욱한 나야 그렇다 치고 세상 천지가 다 알게 되었으니 저놈들 망하는 꼴을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리라.

'꿈꿀자유/서울의학서적'의 올해 마지막 책은 서울아산병원 표준화위원회의 <K-MED를 이끌 의료정보 표준화의 길>이다. 의료정보 표준화는 현재 의료계에서 초미의 관심사인데, 아산병원은 만 4년을 꼬박 투자해서 독창적인 방법으로 표준화를 이루어냈다.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어렴풋이 아는데, 영광스럽게도 그 전말을 자세히 기록한 책을 내게 되었다.

이 정도로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도 상당히 통큰 결단이라고 본다. 다른 병원 경영진에서 이 책을 읽고 많이 벤치마킹하여 선진의료와의 격차를 크게 줄이길 기대한다.

올해 출간된 마지막 번역서는 김영사에서 나온 <DK 인간의 뇌>다. 3판이 새로 나와 추가된 내용만 번역했다. 하지만 이전 판과의 용어 통일 문제 때문에 결국 통독할 수 밖에 없었다. DK의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꼈다. 뇌과학 책은 많지만, 중구난방이다. 막상 고르려고 하면 마땅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권할 만하다. 구조와 기능면에서 뭐랄까, 기초부터 고급까지 커버한달까. 번역하면서 많이 배웠다. 유전자-세포-기능(의식, 감정, 행동)으로 이어지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에 기획해볼 생각이다.

<코비드-19 시대의 육아서>는 번역과 교정 교열을 마치고 제작 중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왔는데 솔직히 말해서 마음에 드는 책은 하나도 없다. 궁금증을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이리저리 짜깁기한 책들이 많고, 최근 화제가 된 책들도 '글쎄, 그런 지식이 당장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이 책을 교정하면서 새삼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당장 생활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길 수 있었다. 가장 감명깊은 내용은 세 가지다.

1. 우리는 감염과 죽음만 떠올리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어린이든 어른이든 감정을 돌보는 일이다. 2. 우리는 특유의 사고방식대로 이기느냐, 지느냐를 생각한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도 삶은 계속되야 하기에 더 중요한 생각의 틀은 위험/이익의 비율을 따져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3. 소외층과 약자를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 감성팔이 구호에 그친다.

꿈꿀자유의 육아서는 안 팔리기로 유명하지만, 이 책이 많이 팔린다면 우리 사회의 담론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달 중 <코로나 시대에 아이 키우기>란 제목으로 출간 예정이다.

오늘 교정을 마친 책은 지난 번에도 얘기한 도로시 크로포드의 <치명적 동반자>다. 의학과 과학을 바탕으로 진정한 지성이 만들어진다면 이런 모습이리라. 감염병에 관한 책을 한 권만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이다. 과거를 보여주는데, 미래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책이 그리 흔하랴.

코비드와 <치명적 동반자> 원고를 정리하며 번역이 조금 향상된 느낌을 받았다. 우매한 사람도 한 길만 줄창 파면 조금씩 나아지는 모양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내년에 정말 중요한 책을 앞두고 나쁜 조짐은 아닐 것인즉, 그 핑계로 맥주 한 깡 딴다. 

/강병철(소아과 전문의·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