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메마른 이 시대에...

신정일의 '길 위에서'

2020-12-26     신정일 객원기자

키르케고르의 <유혹자의 일기>를 천천히 다시 읽습니다. 철학자이기 이전에 문학가로 감성이 철철 흘러넘치는 그의 글을 읽다가 보면, 시공을 뛰어넘는 교감과 함께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나의 코데리아! 비록 나는 가난하지만 당신은 나의 보물입니다. 비록 나의 마음은 어둡지만 당신은 나의 빛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지만, 나는 아무 것도 원치 않습니다. 또 실상 내가 어떻게 무엇을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는 인간이 무엇을 소유한다고 하는 그 자체가 벌써 모순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소유할 수가 없고, 또 소유할 필요도 없는 어린애처럼,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오로지 당신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것이 되기 위하여 다른 무엇으로 존재하기를 그만두었습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나 여타의 시들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다른 그의 글에서 한용운 시인의 <당신을 보았습니다>의 첫 부분을 연상하게 됩니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 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랑이 다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위하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함이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역시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의 코데리아! ‘나의 것’",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나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에 속하고 있는 것, 나의 존재 전체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것에 속하고 있는 한에 있어서, 그것은 ‘나의 것‘입니다. ’나의 하느님‘은 결코 나에게 속하고 있는 신이 아니라, 내가 속하고 있는 ’신‘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사랑,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 아무리 절절하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절절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어떤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밤새워 눈이 내려 세상을 온통 흰빛으로 물들이기를 바라지만 눈이 내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눈이 내리고, 코로나 19로 힘든 이 세상이 온통 사랑으로 물들기를 기원합니다.

사랑이 메마른 시대. 지금의 시대에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신뢰하고, 서로를 섬기는 세상을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보면 그러한 세상이 문득 찾아오지 않을까요?  

/사진ㆍ글=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