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의는 무엇인가 '제미니 맨'

김명주의 영화 속으로

2020-04-23     사람과언론

왜 이렇게 영화를 많이 찍어요?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영화 리뷰에서 사심을 종종 드러내곤 하는데, 알라딘에서 ‘윌 스미스’에 대한 사랑을 토로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에도 또 그의 작품을 들고 왔다. ‘아이, 로봇’과 ‘나는 전설이다’를 좋아하는 작품으로 주로 손꼽긴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존재감과 연기력은 빛을 발했다. 정말이지, 좋아하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는 배우다.

헨리는 요원 생활을 청산하고 은퇴하려 하는데, 마지막으로 맡았던 임무에 의혹이 생기면서 그와 동시에 자신과 완벽하게 닮은 요원에게 쫓기게 된다. 헨리의 전성기와 너무나도 닮은 그를 만나 충격에 빠진 헨리와 그의 동료들은 ‘제미니 프로젝트’를 알게 되고, 그를 파괴하기 위한 작전을 개시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Gemini는 쌍둥이자리를 의미하는 단어로, 이 영화에선 복제인간 프로젝트를 지칭하는 데 쓰인다. 헨리의 클론인 주니어가 윌 스미스와 닮았으면서도 뭔가 미묘하게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윌 스미스가 50세의 헨리와 23세의 주니어 둘 다 연기한 것이었다.

그랬구나, 1인2역이었구나,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을 쓴 건지 궁금했는데, ‘100퍼센트 퍼포먼스 캡처’라고 한다. 글만 봤을 때보다는 사진을 같이 보니 이해가 빨랐다. 세상에 없는 공룡이나 우주선도 만들어 내는 영화 세계라지만, 오히려 현실에 존재하는 유명한 스타이기에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훨씬 어려운 작업일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은 어색한 표정이나 움직임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매우 훌륭하게 어린 헨리를 표현해냈다. 물론 그것은 기술을 넘어선 윌 스미스의 뛰어난 연기와 몰입이 있었기에 더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주니어가 자신이 클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라 믿었던 클레이를 찾아가 눈물을 흘릴 때, 윌 스미스라는 배우의 진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브로크백 마운틴’, ‘색, 계’, ‘라이프 오브 파이’ 등의 영화로 유명한 이안 감독과 함께 한 것도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어찌 보면 흔한 소재일지라도 어떻게 그려나가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에. 어쨌든 성공적인 만남인 걸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다

시작은 전설이라 불리는 요원의 모함, 도망으로 이어지는 흔한 액션 같지만(초반 추격 장면, 특히 오토바이 액션 신은 죽이고 지리고 오지고 렛잇고!), 추격자가 클론임이 밝혀지면서 SF가 얹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 메시지는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전쟁터의 군인, 클론의 인간성 등 어느 하나 쉽게 답변하기 어려운 철학적 논제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이게 정답이지!’하고 내세울 수는 없지만,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해볼 가치가 있는 문제들. 생각할 거리를 관객에게 던져주는 것으로 큰 의미가 있는 영화라고 느꼈다. 헨리와 주니어의 대화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네가 나와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길 바라서 하는 말이야.” “그 실수도 해 보고 싶어요. 이건 내 삶이니까요.”라든지, 농담처럼 건넨 “나 정도면 괜찮은 거지. 매일 아침 운동장도 한 바퀴씩 돈다고. 너 나랑 저기까지 누가 빨리 가는지 해 볼래?” 아버지라고 믿었던 클레이에게 자기가 그저 제일 유용한 소모품이나 무기 정도의 존재였다는 것을 알고 주니어가 총을 겨눌 때 헨리가 그의 손을 막던 것. 헨리와 친구가 건배할 때마다 외치던 “다음 전쟁은 일어나지 않길!”

어떤 사람으로 나이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려보는 고민일 것이다. 구체적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아, 저렇게 늙지는 말아야지.’라고 탄식하거나, ‘아, 멋있다. 나도 저렇게 늙고 싶어.’라며 그를 롤 모델로 삼을지 정도는 정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는 소위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령대에 상관없이(학생들 중에서도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라는 말을 쓴다면 꼰대 아니냐는 방송을 본 적이 있기에)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뒤따라오는 후발대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선배가 되어줄 수 있을지 고민해 볼만한 일이다.

인간의 정의, 인간성의 근원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인간’과 ‘인간성’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종종 던지지만, SF물에서는 구성물질, 기억, 감정 등의 차이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제시한다. ‘아이, 로봇’에서는 자유의지와 판단, 공감 능력에 대해 나왔었다. 죽어가는 아이와 성인 남자 중 누구를 살릴 것인가.(과학적 확률과 수치냐, 감정이냐.) 정해진 규칙과 주인의 명령(혹은 의사) 중 어느 것을 따를 것인가. 인질을 잡지만, 같은 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예전에 봤던 윙크를 따라하는 장면은 귀엽지만, 그런 동지애적 표현이 아니라 인류를 위협하는 ‘터미네이터’ 같은 살인병기적 행동을 표출한다면?

혹은 ‘아일랜드’처럼 복제됐지만 완전한 인간의 신체와 감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푸줏간 고기처럼 본체가 필요할 때 썰려 나가는 클론이라면, 그런 행위를 하는 이와 당하는 이 중 누가 더 ‘인간성’을 가진 ‘인간’인가. ‘레플리카’처럼 가족의 기억(정신, 영혼)을 그대로 이식했다면, 그건 정말 이전의 내 가족과 동일한가. 복제인간이나 평행이론을 다룬 영화를 볼 때, 난 오리지널이 아니면 그들을 완전히 동일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주 쓰는 볼펜만 하더라도 공장에서 똑같이 찍혀 나오겠지만, 이 볼펜이 저 볼펜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군다나 시간이 흐르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이 볼펜이 어디에 존재하고 있었느냐에 따라서 이 볼펜의 상태는 완전히 달라질 텐데 말이다.

‘제미니 맨’에서 주니어 외에도 또 다른 헨리의 클론이 존재한다. 모든 게 밝혀졌을 때 클레이는 이렇게 주장한다. 매년 전쟁터로 젊은 청년들이 얼마나 동원되는지, 그들의 남겨진 가족들은 또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그런데 그 문제는 이 ‘제미니 맨’들을 이용하면 단번에 해결되지 않느냐고. 유명한 사극짤방 “이게 뭔 개소리야!”가 떠오르다가도 완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는 논리다. 하지만 복제인간은 분명 폭탄이나 장거리 미사일과 같은 무기와는 다른 존재다.

클레이의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전쟁을 금지한다는 생각은 아예 현실 불가능한 이상 혹은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라는 것. 전쟁은 정말 없앨 수 없는 불가피한 차악인 것일까. 그로 인한 피해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이 늘어나고, 고통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헨리와 친구들이 농담인 듯 건배할 때마다 수없이 전쟁이 없는 세상을 외치더라도?

전쟁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그렇다고 해서 복제인간의 투입이 타당하고 정당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클론은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

주니어가 전성기 때 헨리의 신체와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헨리를 쉽사리 이길 수 없었던 것일까. 인간이 가진 감정, 판단, 기억, 의식, 영혼을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클론에게 구현할 수 있을지 기술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여전히 윤리적인 측면은 실제 성과와 별개로 고려되어야만 한다.

예전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제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강의가 매우 재밌고 유익해서 교육을 진행한 교수님께 따로 장문의 메일을 드려 답변을 받기도 했는데, 확실히 우리가 미처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로봇에 대한 학대’라는 부분에서 윤리성 확립에 의문을 제기했을 때, 교수님께서도 확실히 그 부분에서 법적∙상식적인 면이 같이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답변해주셨다. 아직까지는 로봇을 지적인 생명체로 보지 않는 분위기지만, 시간이 갈수록 바뀌게 될 것이고, 로봇 윤리 헌장이라는 것도 있다고. 앞으로 로봇과 인간이 상호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는 답변에서 조금은 안심하기도 했다.

복제인간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로봇의 개발이 보다 현실적이기에, 기술만이 아니라 그에 따른 윤리의식이 함께 자라나기를 소망해본다. 그리고 부디 내가 인간성을 잃지 않은 인간으로, 사람 냄새 나는 멋진 중년, 노년의 명주로 나이 들어가기를 바란다. /<사람과 언론> 제7호(2019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