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현실이 된다 '양자물리학'

김명주의 영화 속으로

2020-04-23     사람과언론

알쏭달쏭 → 무릎을 탁

처음에 제목만 들었을 땐 영화에 대한 갈피를 전혀 잡지 못했다. 장르는 뭐지? SF? 미스터리 스릴러? 서바이벌 방탈출? 그런데 검색해 보니 ‘범죄’란다. 예고편과 함께 먼저 영화를 본 이들의 리뷰를 보니, ‘양자물리학이 메인 요리라기보다는 그저 가미된 소스 정도인가 보군. 딱히 별 기대는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런데 웬 걸? 이 영화 재밌다! 웃기면서 진지하고, 사회도 열심히 꼬집고, 배우들의 연기력과 각본도 모두 굿굿!! 나와 영화를 같이 본 지인은 자신의 베스트 영화 순위가 바뀔 정도로 재밌었다는 말과 더불어 영화 제목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엔 다소 낯선 감이 있다고 했다. 그 의견에 공감은 하면서도, 곳곳에 배어 있는 양자물리학의 법칙들이 확실히 영화의 맛을 살려줬기에 다른 제목이었다면 글쎄, 라는 회의도 동시에 들었다.

사면초가 속 이빨액션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라는 양자물리학적 신념을 인생의 모토로 삼은 유흥계의 화타 ‘이찬우’가 유명 연예인이 연루된 마약 파티 사건을 눈치 채고 오래된 지인인 범죄정보과 계장 ‘박기헌’에게 정보를 흘렸으나, 이것은 단순 사건이 아닌 연예계∙검찰∙정치계까지 연루된 거대 스캔들로써 결국 그가 살기 위해 거대권력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솔직히 말해 이게 현실이었다면, 찬우는 영화가 시작하고 10분 정도 지났을 쯤에 이미 행방불명(이라 쓰고 사망이라 읽는다)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니까 찬우는 주인공 버프를 듬뿍 받고, 지렁이 꿈틀과 계란으로 바위치기 스킬을 시전한다. 이찬우를 연기한 배우 박해수 님의 피지컬은 물론 훌륭합니다만, 이찬우는 몸보단 이빨 액션이 뛰어난 무인(?)이다.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에너지가 어쩌고 파동이 어쩌고, 그래서 우리가 같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론이다.’라는 답정너를 주문처럼 외우는 찬우. 듣다 보면 정신이 혼미해져, 초반엔 무슨 이런 미친 놈이! 했다가도 점점 빠져들고 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만드는 주둥이 파이터를 미천한 소인이 어찌 이기리오. 죽음만을 앞두고 승합차에 실려 갈 때, “마주 오는 덤프 트럭과 부딪친다. 트럭과 부딪친다.”를 반복하며 찬우가 운전석에 몸통을 들이받던 장면에서는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초반 ‘양자물리학이라더니 웬 물장사? 뽕짝 뭥미?’ 하고 심드렁했던 초반의 소인을 매우 치십시오!

현실 같은 영화, 영화 같은 현실

보통 영화가 현실을 반영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것이 동시대를 표현한 영화이든, 아니면 아직 도래하지 않은 먼 미래를 상상해 만든 영화이든 간에(후자의 경우엔 반영이라기보다도, 현실을 앞서 구현한 것에 가깝겠지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보는 내내 뉴스에 나오는 작금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위 ‘버닝썬 사건’으로 불리는 일련의 사태들, 연예인 마약, 검∙경 및 정치권 유착이 영화에서 그대로 재연된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쥐고, 없으면 안 되지만 한편으로 없애야 뒤탈이 없는 관계.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은 역시 진리였다는 걸 깨닫게 해줄 만큼 열심히 뒤통수치기가 나오다 보니, 괜히 내 뒤통수가 같이 띵한 것 같은 상황 전개. 숨 쉴 틈도 없이 빠르게 동시다발적으로 사건이 터지지만, 마냥 산만하지 않고 무너짐 없이 탄탄하게 영화가 진행되기에, 각본 쓴 감독님께 엄지 척을 바칩니다요.(-_-)乃

양자물리학, 생각이 현실이 된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찬우의 대사에 피식 웃으면서도 매우 찔렸다. 흔히 말하는 오만가지 생각하기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나이기에. 난 원래도 고민이 많은 사람이지만, 30대엔 유독 ‘삶의 기로에 놓여 있다’라고 느낄 만큼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꽤 자주 맞이했다.

예전 리뷰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사춘기+질풍노도의 시기를 30대에 겪고 있다. 선택의 순간 결정 장애가 오는 것은 어느 한쪽을 포기할 수 없는 욕심 때문일까, 혹은 그만큼 내 앞에 놓인 선택지가 균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까. 어쨌든 올 초에도 그런 고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내 정신을 후려쳐 준 글귀가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내린 정의. ‘미친 짓(Insanity)’=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일. 그래, 명주야. 현시점 현 상황에서 네가 할 수 있는 노력은 해 봤어. 하지만 여기서 갈팡질팡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지금을 지속한다면, 그거야말로 미친 짓인 거야!

어릴 때 즐겨봤던 ‘이휘재의 인생극장’ 속 장면처럼, “그래 결심했어.” 두 주먹 불끈 쥐고 상황 자체를 바꿔 봐야겠다는 명확한 다짐을 했더랬다. 지금 그 때의 선택을 돌아봤을 때, 잘한 결정이라고 느낀다면 성공한 거겠지. 유흥업계에 종사하지만 자신만의 신념과 꿈을 가지고 앞을 향해 나가는 영화 속 찬우가 참 반짝거려보였다. 환경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든 가슴에 꿈을 품고 정진하는 이들은 별과 같이 빛난다.

앞에서 지렁이 꿈틀과 계란으로 바위치기 스킬 시전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 속담들의 주 내용은 약자가 강자에 대해 어떻게든 저항한다는 것이지만, ‘양자물리학’적으로 보자면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먹고 행동에 옮긴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화나고 억울하긴 해도 실질적으로 그에 저항하자고 마음먹기는 쉽지 않다. 애초에 그럴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떠올리지도 못할 수도 있고. 하지만 예전에 ‘히든 피겨스’ 영화를 봤을 때 생각한 게 있다.

아무리 허무맹랑하다고 해도 ‘달에 가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러기 위한 시도와 노력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라고 주변에서 말한다 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무조건 이뤄진다 장담하진 못하더라도(사실 이런 의심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이행해야 효과가 높을 것 같지만) 성공확률은 0보다 훨씬 높은 숫자로 나오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파동이지만, 그것은 분명 영향력을 가지고 존재한다. 양자물리학을 검색해 봐도 사실 그 학문의 발전이나 세세한 이론은 무슨 말인지 구체적으로 이해는 안 되지만, 일반인인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단 하나만 일상에 꾸준히 잘 적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관람료 뽕을 뽑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현실이 된다. 이미 성공담이 나오고 있으니, 한 번 시도해 보시게요 독자님!

/<사람과 언론> 제7호(2019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