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고, 부서지고, 지워지는 만추의 서정 '송시월'
시평-양병호(시인, 전북대 국문과 교수)
11월 엷은 햇살이 미끄러진다.
미끄러진 것들 내 손등을 툭 치며 금빛을 쏟아낸다.
눈을 감자 나비들 날다가 이내 사라진다.
백병원 영안실 주위를 서성이는
햇빛 속으로 영락교회와 명동성당이
비스듬히 기울고.
그 중간의 메타세콰이어 기침을 하며
눈부시게 부서지고.
남산 3호 터널을 빠져나온 자동차들 을지로로 청계천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워져가고.
체크무늬 바바리를 입은 내가 가로수 사이로
바삭바삭 스며들고.
11월이 흔들흔들 가라앉고.
송시월, 「11월」
11월. 일 년 열두 달 중의 마지막 12월을 앞에 둔 꼬랑지 11월. 유년의 11월은 어서 빨리 첫눈이 내리기만을 고대하던 설렘의 계절이었지요. 매급시 가난한 마을에 눈이 내리면 풍성하기만 한 것 같았지요. 어른들의 쌀이며 연탄 걱정 같은 건 귓등에도 닫지 않았지요. 팽이치기며 연날리기며 썰매타기며 쥐불놀이며 눈 내린 언덕에서 비료푸대 타기며 오로지 겨울놀이의 흥겨움만을 기대하던 순수 이상 공간의 삶이 전부였지요.
놀이만이 존재하던 유년 시절. 공부도 집안일도 심지어 체벌도 놀이로 뒤바꿔버리던 낭만주의 시절. 손등이 갈라터지고, 구멍 난 양말 사이로 동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먹을 것이 없어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하던 허기들도 도대체 아무런 걱정이 되지 못하였지요. 그 때 누런 콧물은 봄이 올 때까지 왜 그리 끈질기게 흘러내려 쌓던지.
그런 낭만주의 유년 시절을 통과하여 맞는 성년의 11월. 어떠신지요. 시속 200Km로 달리는 세월의 과속을 단속하는 교통경찰은 왜 모두들 연말에만 휴가 중인지. 억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신지요. 아니 엊그제 신년을 맞아 올해는 이러쿵저러쿵 야심차고 환한 인생 기획을 세운 것 같은데. 금연이며 건강 달리기며 진급이며 저축이며 글쓰기며 눈부시던 프로젝트들이 뉘엿뉘엿 석양빛으로 물드는군요. 이런 아쉬움과 미련의 11월을 습관처럼 맞이해야하는 성년의 연말에 모두들 갑자기 모든 일이 부산스러워지면서 을씨년스럽겠지요. 그러나 희미하게 남은 자투리 시간이나마 자알 마무리하고 추스르면서 정리해야 할 만추의 계절입니다.
이 작품의 시인 역시 11월에 맞는 만추의 서정을 형상화하고 있군요. 그런데 시인은 11월의 사그라지는 삽상한 계절감각을 물리적 감각을 통해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각 시행의 서술어를 통해 입증이 되는군요. 예컨대 ‘미끄러지고, 쏟아내고, 사라지고, 서성이고, 기울고, 부서지고, 스며들고, 가라앉고’의 서술어들은 조금씩 소멸되어가는 가을의 계절 속성을 반복하여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가을은 모든 존재들이 소멸의 하향 곡선을 그리며 위태롭게 존재합니다. 시인의 이러한 상상력은 외부 세계의 인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존재 속성이라는 내면세계와의 조화를 통해 의미 공간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계와 존재의 상호 조응을 통해 인식하는 가을의 소멸과 그로 인해 생성되는 허무의 감각을 노래하는 것이지요.
특히 시인은 햇빛이라는 시적 대상에 주목합니다. 사계절 내내 우리에게 따뜻함이라는 위안을 주는 햇빛. 그러나 계절마다 감각하는 햇빛의 성분은 모두 다르지요. 봄 햇살은 나른함과 설렘과 혼몽의 화장품 냄새를 피웁니다. 여름 햇살은 금속성 창끝을 겨누며 살아 견뎌내야 한다는 열망과 광휘의 명분을 펄럭입니다. 겨울 햇살은 투명한 인식의 휘장을 나부끼며 고뇌와 침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열기가 삭제된 가을 햇살은 추억과 그리움과 쓸쓸함의 분위기를 한껏 부추깁니다. 시인 역시 11월의 만추를 맞아 그러한 가을 분위기에 스스럼없이 동화됩니다.
하여 시인이 접촉하는 사물들인 ‘햇살은 미끄러지고, 서성이는 햇빛 속으로 건물들은 비스듬히 기울고, 메타세콰이어 나무는 눈부시게 부서지고, 자동차들은 지워져가고’, 화자 역시 ‘바삭바삭 스며들고’ 있습니다. 11월에 말이지요.
그래요. 11월에 할 일은 묵묵히 스러지고 지워지고 희미해지고 가라앉고 서성이는 방법을 연마하는 것이지요. 휘황한 욕망을 탈색하는 방법. 거침없이 고개 드는 욕심을 소멸시키는 방법. 끈질기게 자기복제를 감행하는 탐욕을 다스리는 방법. 욕정이 제 스스로 죽어가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하는 방법. 뭐 그런 것들이나 뇌작거리며 슬며시 지워지는 수밖에요.
표표히 사라지고 지워지는 것의 아름다움이나 궁리하면서.
<사람과 언론> 제7호(2019 겨울).